일상/2013~2019

[연극] '푸르른 날에' - 5.18 광주, 그 죽음과, 처절한 생존에 대한 웃기는 비극.

참참. 2013. 5. 23. 09:19



푸르른 날에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출연
박윤희, 김영노, 최광희, 김학선, 남슬기
기간
2012.04.21(토) ~ 2012.05.20(일)
가격
전석 25,000원

마지막으로 연극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바로 어제, 그렇게 오랜만에 연극을 보게 되었다. 어떤 연극인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출판편집자 입문 수업을 같이 들은 분의 소개로 인연이 닿아 보게 되었다. 인연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렇게 좋은 연극을 볼 수 있게 되어서 몹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 공연정보는 어째서인지, 아직 2013년 것은 나오지 않아서 2012년 것으로 올려둔다.)

지금까지 연극을 많이 보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연극이었다. 출연 배우만 스무 명은 되는 것 같다. 또, 잊고 있었는데, 영화와는 다른 코앞에서 벌어지는 그 생동감과 그 에너지, 연극의 맛은 이런 것이었지. 진짜 오랜만에 느꼈다.

공연하는 사진은 못 찍고, 공연을 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입구 사진만이라도.


극은 시작부터 거의 끝부분까지도, 무척 웃기는 요소가 많아서 재밌었다. 하지만, 마냥 마음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관객들을 웃다가 마음 졸이게 하고, 또 웃다가 울게 만드는 그런 공연이었다. 5.18 민주화 항쟁에 관해서 영화 '화려한 휴가'도 보았고, 이래저래 몇 번은 접해본 것들이 많은데, 대체로 그 처절한 죽임과 죽음까지였다. 그 다음의 이야기들은 책이나 역사적 사실로는 보았으되, 예술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연극에선, 그 이후까지를 다룬다. 거기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드러낸다. 정말로 배우의 머리채를 잡고 무대에 준비된 진짜 물 속에 고개를 박는다. 그런 사실적인 물고문 연기와 함께, 겁에 질려 그 도청에서 함께 싸웠던 동료들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그들은 나쁜 놈들이고 나는 단지 그들에게 속았을 뿐이라고 진술하는 주인공.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 고통을 계속 당하느니 차라리 죽고만 싶어질 것 같은 모진 고문 속에서, 그것이 온전한 정신으로 한 말이겠는가. 그런 걸 배신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본인은, 그 속에서 살아나온 자신을, 그 고문 속에서 그들을 배반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끝도 없이 눈앞에 나타나는 죽은 동료들의 망령, 자신에게 배신자라며 손가락질하는 듯 노려보는 이미 죽은 이들의 시선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살아남았으되, 살아있는 것이 아닌 상태로, 점점 더 미쳐간다.

그는 결국 남은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자, 출가하여 중이 되고, 그의 아이를 가진 여인은 결국 의지할 데 없이 계속 고통받는다. 중이 된 그 역시 완전히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랴. 그렇게 5.18은 그 수많은 피를 뿌리고도,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더 지독한 상처를, 죽음보다 더 처절한 생존을, 남겼다. 내가 보았을 때, 이 연극은 바로 그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웠을 그 생존의 이야기다. 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에 피를 흘리며 죽어간 그 극적이고, 상징적인 큰 고통의 사건들 뒤에 숨은 이야기들. 바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잡혀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죽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고문들을 견디고도, 행복해지기는 커녕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조차 힘겨운, 지금까지도 '살아서' 고통받고 있는 그 분들의 이야기들인 것이다. 그 아픈 이야기들을 이렇게 재미있게 개그 요소를 넣어가며, 그렇지만 그 아픔이 다 느껴지도록 잘 표현해냈다는 것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