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영화 '가족의 나라' 씨네토크에 가다.

참참. 2013. 5. 19. 18:25



가족의 나라 (2013)

Our Homeland 
9.2
감독
양영희
출연
안도 사쿠라, 이우라 아라타, 양익준, 미야자키 요시코, 츠카야마 마사네
정보
드라마 | 일본 | 100 분 | 20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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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인 5월 18일 토요일 아침 9시, 필름포럼에서 진행된 한반도평화연구원(KPI) 주최 평화 씨네토크 첫번째, 영화 '가족의 나라' 씨네토크에 갔다.

영화는 상당히 인상깊었다. 약간은 다큐멘터리같은 사실적인 묘사들이 가득한 영화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재일동포 북송사업(1959년부터 1962년까지, 북한과 일본의 협상 아래 8만 명에 가까운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보내진 일)으로 북한에 갔던 '성호'가, 25년만에 뇌종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온다. 여동생 리애와 어머니, 아버지, 삼촌, 일본에서 다니던 학교 친구들까지 모두 그를 열렬히 환영한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항상 감시자가 붙어 있고, 그의 행동은 자유롭지 못하다. 의사는 그가 3개월 뒤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에 수술 경과를 제대로 지켜볼 수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절한다. 모두 그가 수술받을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알아보지만, 북한에서 연락이 온다. 치료를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있는 모든 인민들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오라고. 누구도 치료를 위해 3개월을 머물기로 한 이들을 왜 갑자기 부르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야만 한다. 일본에서도 계속 북한을 위해 일해온 성호의 아버지도,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여동생 리애도, 모두 다 어찌하지 못하고 아파한다. 헤어지기 전 성호는, 여동생 리애에게 너는 세계를 돌아보고, 생각을 많이 하며, 너의 인생이니까 너 자신을 위해, 살라는 말을 전한다.

참 아프고, 슬픈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대사와 감정을 상당히 절제해서 표현한 것 같다. 가족들이 통곡을 하고 울거나, 이런 강렬한 감정들은 거의 나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일부러 관객들이 슬픈 감정에 몰입되도록 장치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적으로, 그저 담담하게, 그들의 '일상'으로써 이 사건을 그려낸다. 그 절제된 감정 속에서도 여동생 리애가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무릎을 굽혔다가 폈다가 하며, 그 이해할 수도 없고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 계속해서 오빠를 감시하는 '양 동지'에게 한바탕 쏘아붙였으나, 그가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나라가 당신의 오빠와 내가 평생 살아갈 나라다'라고 하고 떠나버리자, 그 길에 홀로 남아 제자리를 맴돌며 양손으로 자기 무릎을 쳐대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마지막에 떠나려는 오빠의 팔을 잡고 놔주지 않으려다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 참 가슴이 아팠다. 통곡을 하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지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모습들이다. 이 순간을 어떻게 견뎌내야할지 알 수 없을 때의 답답함이랄까, 그런 것들이 스크린 너머로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영화 마지막에 오빠가 떠나고나서 리애는, 오빠가 눈여겨보던 그 끄는 여행가방을 사서 그걸 끌며 거리를 걷는다. 그 여행가방을 가지고, 리애는 오빠가 원하던대로 세계를 여행하게 될까? 그건, 그의 삶에 변화를 주었을까? 알 수 없지만, 그 여행가방이 왠지 모르게 계속 여운으로 남았다. 문득 내게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자유가 있다는 것이, 몹시 소중하게 느껴진다.

씨네토크에서는 영화평론가 오동진 교수(동의대학교 영화학과 초빙교수)와 CBS의 대기자이신 변상욱 기자님께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오동진 교수님은 영화에 대해서, 변상욱 기자님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셔서, 영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그 당시에는 남한보다는 북한이 훨씬 민족적 정통성과, 생활, 경제적인 측면에서 우위에 있어서 재일동포들이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는 점이 참 인상깊었다. 무슨 북한을 위해서 일본에서까지 저렇게 협회를 운영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던 성호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북한 입장에서는 전쟁으로 죽은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채워줄 사람들이 필요했고, 일본의 입장에서는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고 저소득층이라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골칫덩어리들을 내보내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재일동포 북송사업이라는 그 자체에 대해 지나가듯 한두 번 들어본 정도였기 때문에, 새로 알게된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일본 생활을 접고 북한으로 건너간 이들이, 북한 내에서도 점점 소외계층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대우해주던 정권도 이제 필요가 없어지니 내팽개치고, 북한 사람들도 처음 들어올 때 자신들을 밀어내며 들어온 일본 출신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고 한다. 영화 주인공 '성호'는 열여섯의 나이에 아버지의 의지로 북한에 가게 되었는데, 북한에서 그렇게 어려운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참, 슬펐다.

성호가 여동생에게 거기서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이상해지니까, 그냥 생각을 안 하고 무조건 따르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어떤 분께서 그 이야기에서 머리가 이상해진다고 하는 것이, 성호가 뇌종양에 걸린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보니, 그걸 연결지을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참 영화에 많은 은유들이 깔려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 영화는 한 가족이 겪는 며칠의 일상을 통해서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아픔들, 어떤 사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역사 속에서 개인들과 가족들이 처한 상황, 슬픔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 영화를 함께 보고난 뒤에 진행된 씨네토크에서 많은 분들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느낀 것들의 1/3도 다 못 느꼈을 것 같다. 영화만 보면, 나같이 역사적인 지식도 별로 없고, 통일 문제에도 아주 소극적인 관심밖에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냥 안타까운 사연, 북한 사회의 참 안좋은 것들, 성호와 가족들과 친구들의 슬픔들 정도밖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또 초대해주신 한반도평화연구원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도 이런 씨네토크를 세 번 더 하신다고 들었는데, 다음번 영화도 기대가 된다. 시간이 맞는다면 꼭 보러가고 싶다.

한반도평화연구원에 이메일이 등록되어 이 씨네토크에 초대받게 된 것은, 저번 새터민 대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때의 인연 덕분이다.

2013/05/10 - [내가 바라는 일상/2013~] - [130504] '새터민 대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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