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영화] 서울인권영화제 '아무 데도 없는 아이들 Nowhere Home'

참참. 2013. 5. 25. 00:27


5월 23일 목요일 오전 11시, 서울인권영화제 첫 날, 첫 영화를 보러 갔다. 홍대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약속시간 전까지 서울인권영화제의 영화를 두 편은 보고 갈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시청역에서 내려서, 살짝 길을 헤매다보니 11시가 되었다. 도착해보니, 영화는 시작하는데 사람은 거의 없었다. 햇빛이 따가워 천막 안에만 사람이 있었는데, 나까지 합쳐도 열 명이 조금 넘을까말까한 수였다. 어쨌든, 앉아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의자마다 붙어있는 '사람은 누구나 VIP입니다'라는 문구가 인상깊다. 이 사회에서 어떤 이들이 VIP로 대우받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기에, 이 문구가 꼬집고자하는 것은 뚜렷하다.

 11시부터 시작한 첫 영화는, 노르웨이 다큐멘터리인 '아무 데도 없는 아이들(원제: Nowhere Home)' 이었다.


영화는 노르웨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피해 도망 온 아이들의 인권이 짓밟히는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대략 이 사건의 이야기는 이렇다.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서 살기가 어려워진 소년들이 살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그들이 도망쳐온 곳은 누구나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노르웨이. 하지만, 노르웨이는 아동인권헌장에 보장되는 18세까지 잠시 수용센터에서 이들을 보호해주다가, 18세 생일이 지나면, '본국'으로 돌려보낸다.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들이 돌아가서 어떻게 되든 관계없이.
사실상 대부분의 아이들은, 본국에 돌아가도 도망칠 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고, 부모도 없거나, 오히려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죽이려고까지 하는 부모이다. 그 나라는 여전히 전쟁 중이고, 18살이 되었다고 해서 그런 곳에 돌아가서 살 수 있는 방법이 갑자기 생겨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 정부는, 강제로 그들을 돌려보낸다. 생일 다음날, 그들은 노르웨이에서 '추방'된다.

노르웨이라고 하면 굉장한 문명국이고 복지국가라고 알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민지위를 신청해도 떨어지고, 웬만한 사정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아이들을 추방시켜버린다니. 게다가, 그렇게 들어온 아이들이 잠시 머무는 수용센터의 태도는 도저히 내가 알고 있는 노르웨이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다는 아이에게, 의사도 아닌 이가 약을 주고, 그 약의 부작용으로 아이는 다리의 감각을 잃는다. 이런 일이 노르웨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제작자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으로 직접 그 메시지를 말해주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모든 개인의 가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나의 자유는 남의 자유에 달려있다.' 내가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나도 자유롭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자유로우려면 결국 모든 이가 자유로워야한다라는 뜻이다. 마르틴 니묄러의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시가 떠오른다. 누군가를 잡으러왔을 때 내 일이 아니라서 침묵하다보니, 나중에 나를 잡으러왔을 때 함께 항의할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그 자기고백적인 시.

그냥, 죽어도 좋겠다고 말하던, 그 소년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노르웨이든, 어디든, 그들이 그저, 사춘기와, 실연의 고통과, 하고싶은 일을 찾으려는 방황을 겪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