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김여진, <통하면 아프지 않다> / 한 달하고 보름동안 하루 두 번씩 같은 연극을 보다

참참. 2013. 5. 15. 11:08



통하면 아프지 않다

저자
김남훈 지음
출판사
북스코프 | 2012-04-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려는 9명의 소통...
가격비교

이 책은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이 글에는 그 가운데 김여진 선생님 이야기만 담았다.
책 전체의 이야기는 2013/05/15 - [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 <통하면 아프지 않다>, 김창남 엮음, 김남훈, 김규항, 김여진, 오연호, 강풀, 하종강, 김조광수, 김영경, 김제동


김여진 선생님이 연기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처음 접했는데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극을 보고, 공연이 끝났는데도 일어나지 못했던 이야기. 다음날 오라고 했더니 다음날 진짜 찾아간 이야기. 그렇게 '뜬금없이' 극단에 들어가 오전에는 포스터를 붙이고, 오후에는 전단지를 나눠주며 한달하고 보름동안 한번도 빼놓지 않고, 하루 두 번씩 그 연극을 계속 본 이야기. 충격적이었다. 그 극단의 관계자도 이야기했지만, '내일 다시 오란다고 진짜로 다시 오는 사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건 아마도, 아무리 그 연극을 보고 감동을 받고 연극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도, 집에 돌아가면 그동안의 일상이라는 관성과 습관이 다시 나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사실 매일을, 습관적으로 살아간다. 따지고 보면,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오늘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우리가 느끼기엔 그렇지 않다. 매일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여태까지 해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우린 그러지 못한다. 계속해서 뭔가 연속되게 살아야할 것만 같고,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크게 다른 일을 갑자기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려고 하면 정말 너무 불안하고, 계속해서 익숙한 것을 찾아 돌아오게 된다. 언제나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어제까지 하던 일로 돌아간다. 영어 공부라든지, 적당한 회사에 이력서를 넣는 일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

그는 연극에 열정을 느꼈고, 그 뜬금없는 열정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런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찾는 건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열정을 느끼고도 무시해버리는 일을 자주 한다. 굉장히 하고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머리로 생각을 한다. '에이, 근데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저거 지금부터 시작해서 성공할 수 있겠어? 어릴 때부터 저거만 해온 무시무시하게 잘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지, 내가 저거 하려고 지금까지 그 고생을 했어? 저거 하려면 완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잖아.' 뭐 그런 대단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통해, 머리로 가슴을 억누른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으로 곧바로 가는 길을 외면한다. '지금 내가 하고싶은 걸 참으며 쌓은 이 현실적인 것들이 '나중에'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으며,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저버린다. 멀리 돌아가서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나중의' 행복을 위해 참고 또 참는다. 그렇게 우리는 고등학생 때도 명문대를 위해 참고, 대학생 때는 취직을 위해 참고, 취직을 하면 결혼을 위해, 승진을 위해, 집을 위해, 아이를 위해 참고 또 참는다. 하고 싶은 일은 대체 언제 하고, 행복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결국 그 모든 일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일 텐데, 바로 앞에 있는 행복은 왜 거부하는 걸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니 답은 하나다. 불안, 불안해서. 남들이 다 가는 길은, 대충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가 보이는데, 이 길은 앞은 꽃밭인데, 뒤에는 안개가 자욱해서 안 보이거든,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거든. 분명 그 안개 뒤에도 화려하게 포장은 안 되어있어도 꽃이 가득한 예쁜 오솔길이 계속될 것 같긴 한데, 일단 안 보이니까, 갑자기 가시밭길이 나타나면 어떡해? 그 뒤가 절벽이면 어떡하지? 그런 상상을 계속 해대며, 우리 속의 불안을 점점 증폭시킨다. 결국 그 공포를 이겨내지 못해 우리는 가고 있던 번듯한 도로로, 사람이 다니라고 만들어놓은 길은 아닌, 재미도 없고 계속 똑같으며, 발도 아픈 그 길로, 그냥 계속 가는 거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그런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그 열정에 저항하지 않고 삶을 내맡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열정이 마음 속에 일어날 때, 그것을 놓치지 말고, 또 억누르고 저항하지 말고 따라가는 것. 과연 어떤 것이 내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이고 열정인지, 어떤 것이 그냥 단순한 '충동'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물론 어렵긴 하다. 이것들은 평생동안 연습해야하는 과제라고들 한다. <마음, 그것 하나만 봐라>라는 책에 보면 아령 한두 번 든다고 근육이 생기는 것이 아니듯, 마음도 끊임없이 훈련을 하고 연습을 해야만 한다고 하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튼, 그러다 김여진 선생님은 갑자기 빠진 주인공 자리에 '대사를 외운다는' 이유로 들어가 공연을 하게 된다. 정 아니면 불을 꺼버리겠으니 잘할 생각도 하지 말라는 대표님의 말을 듣고, 두근거리며 첫 무대에 섭니다. '첫 무대는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요.'(79쪽) 그렇게 그는 연기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게, 뭐 어디 영화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긴데, 이 사람이 진짜 이렇게 살았단다. 그래서 요즘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새로운 일을 하니까 실패할 수 있다. 또는 백 퍼센트 실패한다.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래도 해본다'(81쪽) 그렇게 생각하면 떨려도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한다. 꼭 잊지 말고 실천하고 싶은, 삶의 태도이며, 마음가짐이다. 나도 늘 도전하는 것이 두렵다. 당연히 안 될 수도 있는 건데, '실패할 것 같아서' 두려워서 지레짐작하고 도전하지 않기도 하고, 처음이니 당연히 어려운 건데 '아, 역시 난 이쪽과 안 맞나봐'라며 가벼운 실패를 바로 포기로 이어가기도 한다. 그렇게해서 삶에서 놓치게 되는 아름다움들이, 아쉽다.

물론, 그렇게 연기 인생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마구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그 뒤에 영화에도 출연하고 하면서, 오히려 돈도 거의 못 받고 연극을 할 때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단다. 계속해서 불만이 생겨났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법륜 스님에게서, JTS  활동에서 조금씩 마음에 안정을 찾아간다. 날라리 외부세력을 결성한 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바꾸고 싶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지 않은 기존의 시위보다는 하고싶은 활동을 하자는, 두 마음이 합쳐진 결과라고 한다. 멋지다.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내가 하고싶은 일들과 내가 하고싶은 방식들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행복하게 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운동이든, 투쟁이든, 그것이 나를 소모시키고 나를 희생시키면서 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의미와 가치가 물론 첫째이고, 그 의미와 가치가 그 일을 하는 계기가 되지만, 거기에 더해서 내가 재밌고,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같은 일도 재밌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끊임없이 샘솟아나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는 창의력 아닌가.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내가 즐기면서 하다보면 창의력이 절로 나오는 것 같다.

'저는 젊은이들이 행동하고 살아가는 기준이 오직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그건 바로 '행복'입니다.'(96쪽) 행복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남들 눈에 그럴 듯한 직업을 갖고 있다는 그런 것들에 집중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정말 행복하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나?'(97쪽)를 늘 따져보라고, 김여진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전체 대학 졸업생의 8%만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인이 된다고 한다. 8%만이 갈 수 있는 길을 위해 모두 함께 달려가는 꿈에서 깨어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또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아도 훨씬 승산이 있으리란 것을, 우리들이  깊이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끝에 가서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시는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물론 선생님도 그게 제일 어렵다고 바로 말씀을 하시더라. 그렇다, 어렵지만, 서로를 위해, 긍정적인 연애를 위해, 내가 좋은 건 내 마음이고, 상대가 날 싫어할 수도 있고 날 좋아하더라도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건 상대 마음이라는 걸 인정해야지, 라고 오늘도 한번 되새겨본다.

누구나 마찬가지로, 언제나 어떤 순간에나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행복들을 찾아낸 선생님이 참 부럽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열정을 가지고 해보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가를 또 느꼈다. 책을 읽을 때는 이런데, 책을 덮으면 또 현실의 불안이 나를 덮쳐오는 일상 속에서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