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김민식, <공짜로 즐기는 세상> / 진짜 하고싶은 일들 하다보니 TV도 안 보는 사람이 피디가 되다

참참. 2013. 5. 10. 14:48



공짜로 즐기는 세상

저자
김민식 지음
출판사
행간 | 2012-10-2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MBC 김민식PD가 공개하는 인생을 즐기는 비법!낭만덕후 김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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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는, 불과 사흘 전까지 운영하던 네이버블로그가 아닌 티스토리 블로그다. 지난 사흘동안 티스토리 초대장을 구하고 네이버 블로그에 잡다하게 그동안 써놓았던 글들을 옮긴답시고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었다. 어휴- 이제야 조금 정리가 되어, 드디어! 날 티스토리 블로그로 이끈 이 책(혹은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굳이 네이버 블로그에서 티스토리 블로그로 옮겨오게 된 것은, 책에서 티스토리를 추천해주시는 이야기의 매력에 더해, '블로그를 한다는 것'에 다시 각오를 다지면서 '시작'해보고 싶어서다.
이 책을 쓰신 분은 MBC에서 나도 어릴 때 재밌게 보았던 '뉴논스톱 시리즈'와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하신 김민식PD님이다. 사실 나도 요즈음 TV를 거의 보지 않아서, 피디라는 직업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책을 읽게 된 건, 월간 작은책 발행인이신 안건모 선생님과 보리 출판사의 유이분 선생님께서 이 책을 굉장히 추천해주신 덕분이다. 두 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다. 와아- 책을 보니, 이 분, 정말 최고다!
우선, 공대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무지하게 읽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 역시 이과계열 학과들이 잔뜩 모여있는 캠퍼스에 있으며, 물리학과이기 때문에 공대생들은 무지하게 많이 본다. 도서관에서 전공과 관련 없는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은 몹시 소수다. 특히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이런 추세는 더욱 심해져서, 수업에서 쓰는 책 이외의 책은 전혀 손도 대지 않고 살아가는 듯한 사람들도 꽤 보인다. 그렇다고 내가 뭐 여기서 그런 독서 세태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보는 그들이 그렇기에 이분이 그랬었다는 이야기가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친구들은 전공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점을 받고, 취직을 준비하고 그럴텐데, 불안하지도 않았을까? 어쨌든, 이분은 자신이 즐겁다고 느꼈던 독서와, 영어만 열심히 했다. 아마 둘레에서 걱정해주는 사람도 많았을 거다. 졸업하고 영어를 잘하니까 무역회사에 가볼까하고 열심히 지원을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역시 죄 떨어진다. 그 가운데도 삼성물산에 직접 찾아가보는 일까지 저지른다. 물론, 그렇게 해서 취직을 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도 몹시 멋지다! 그렇게 삼성물산에서 나오면서 '삼성이 천하의 인재를 잃는구나'라고 생각했다니. 하하하. 그러고선 당시 유일하게 토익점수를 봤다던 3M에 수석으로 합격해 영업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다. 영어를 잘하니 우리나라 제품을 해외에 팔고 싶었는데, 다른 나라 제품을 수입하는 회사에 들어간 것이 아이러니하다면서.
그는 첫 직장에 목 메며 끝까지 다니지 않았다. 1등으로 입사했고, 재미난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책을 열심히 읽다보니 인생 전환을 마음먹게 되었다. 결국 말리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1년 반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내고, 통역대학원에 들어가 동시통역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거기 다니는 가운데에도 책을 읽다가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통역사의 꿈을 접고 피디가 되었단다.
피디에 지원하면서도 그는 참 당돌하고 뻔뻔하다. TV도 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피디를 지원했냐는 질문에 나같이 TV를 보지 않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와하하, 분명 그건 진심이다. 그가 말하는 연애의 비법도 그렇다. 들이대고, 또 들이대고, 다시 한번 더 들이대면서 상처는 받지 마라. 들이대는 건 내 자유이고, 거절하는 건 상대의 자유이니 존중해줘야지, 상처받을 이유야 없지 않느냐고. 통쾌하기 그지없다.
팟캐스트 딴지 라디오에서 강신주 선생님이 상담하는 프로그램을 잠깐 들어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뻔뻔해져야 한다'는 거였다. 이혼한 게 부끄러운 일이냐, 부모님 집에 돌아가서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냐, 전혀 그렇지 않다. 뻔뻔하게 밖으로 나가서 모임에도 나가고 하고싶은 거 다 하라고. 사람이 뻔뻔해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때 강신주 선생님이 말하는 그 뻔뻔함이 여기서 김민식 피디님이 말하는 인생비법과도 통한다. 하고싶다면 닥치는 대로 저지르며 살기. 들이대고 상처받지 말기. 
정말 인상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자전거 전국일주 이야기다. 당시 지은이는 한양대생이었는데, 우연히 자전거 전국일주를 할 '건국대' 사이클부 모집 대자보를 보게 된다. 연합 동아리도 아닌 이상, 상식적으로 한양대생이 건국대 동아리에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아마 백이면 백, '아, 아쉽다. 나도 자전거 전국일주 정말 하고 싶은데, 우리 학교엔 왜 없는거야!'하고 말았을 거다. 좀 더 진취적인 사람이라면 다른 사회인 자전거 동호회같은 곳이라도 찾아보지 않았을까. 이 정도까지가 우리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의 진행인데, 김민식 피디님은 우리의 손바닥 밖에 있었다. 그 길로 건국대 사이클부에 입회하러 찾아간 것이다. '자격 조건? 그게 무슨 문제야?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왜 안 되는데?'(32쪽) 동아리방에서 한양대생임을 밝혔을 때 어떤 정적이 흘렀을지, 상상이 간다. 나도 대학교 다니면서 작은 동아리에서 신입생도 받아보았지만, 타대학교 학생이 와서 들어오고 싶다고 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으악!
신기한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건, 그가 건국대 사이클 부에 진짜로 들어간 거다! 이쯤 되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드라마 피디의 인생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33쪽)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머리가 아닌 가슴에 대고 물었다고 한다. 그 결과로 때로는 바보같은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괜찮았다고, 그게 청춘은 모르는 '청춘의 특권'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멋있다. 진짜 멋있다. 이게 소설이 아니라 진짜 그의 이야기라서 막 가슴이 떨리고 행복하다. 그렇게 그는 건국대 사람들과 자전거 전국 일주를 떠났고, 스무 명 정도가 출발하는 전국 일주에서 풀코스를 완주하는 마지막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약골에다 책만 읽던 책벌레가 그걸 완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한양대생인데 전국 일주를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건국대 사이클 부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쯤 되면 오히려 전국 일주를 중간에 포기하는 걸 상상하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건 진짜로 '내'가 선택한 거니까.
그 자전거 전국 일주에서 타교생인 그의 입회를 도와준 선배가 했다는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누가 돈 주고 이 짓을 하라고 시켜서 하면 그게 즐거울까? 다리 밑 개천에서 세수하고, 삶은 감자로 끼니 때우고, 넘어지고 다쳐도 억지로 페달을 밟아 산을 오르는 게 순전히 돈 때문이라면, 노예도 그런 노예가 없을걸? 완전 노동의 지옥 아니냐.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즐거운 이유는 어쩌면 돈 한 푼 안 받기 때문일 거야."(34쪽) 
<우리는 크리스탈 아이들>이라는 책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온다. 6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60억 개의 자리가, 60억 개의 다양한 일이 있다는 뜻이라고. 또 아래와 같은 말도 나온다.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것, 바로 그게 우리의 일이에요.
우리를 재미있게 해주는 것, 우리를 기쁨으로 채워주는 것, 우리 안에 평화를 만들어주는 것, 하루에 14시간도 할 수 있는 것, 우리에게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일이고, 바로 그곳이 우리의 자리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의 과제예요.'
(레나 기거가 쓰고 윤혜정이 옮긴 <우리는 크리스탈 아이들> 중에서)
우리도 돈을 안 받고도 하는 일이 꽤 많다. 글쓴이가 자기를 지칭하는 말로 많이 쓰는 '덕후'라는 말, 그게 바로 돈도 받지 않고 무언가에 굉장히 열중하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하지 않는가. 바로 그런 일로 돈까지 벌 수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취미로 할 때와 돈을 받으며 할 때의 일은 분명히 같을 수 없고, 마음가짐도 달라지기가 쉽지만, 적어도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뭔지, 돈을 안 받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조차 못 해보고 그저 남들 따라 졸업하고 직장가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물론, 자기가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지금 그게 굉장히 고민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아, 도대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뭘까'하는 고민을 가만히 앉아 머릿속으로만 한다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는 거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 역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오랜 세월 많이 방황했다. 내게 적성을 찾는 과정은 '시계추의 진자 운동'처럼 양극단을 오가는 삶이었다. 아주 단순한 고민을 하면서 시계추처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왔다 갔다 했다. 두 극단을 오가는 사이 내 직업은 영업사원에서 통역사 그리고 예능PD에서 드라마PD로 변화무쌍해졌다. '(115쪽) '적성을 찾아 헤맬 때는 막연하게 생각만 하지 말고, 시계추처럼 양극단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시계추가 그리는 타원의 궤적 어딘가에 유난히 편안하게 느껴지는 자리가 있다면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닐까.'(117쪽) 그러면서 길잡이로써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을 제일 첫번째로 권하고 있다. 그가 특히 권하는 책은 부키 출판사에서 나온 전문직리포트 시리즈란다.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 <의사가 말하는 의사>와 같은 시리즈가 있다고 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만 맺으려고 해도 자꾸만 할 이야기가 떠올라서 맺을 수가 없다. 이번엔 책에 쓰인 그의 여동생 이야기다. 그의 여동생은 착실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대로 회계일을 하는 직장에 들어갔는데, 평생 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잘 안 맞아 힘들어했단다. 그때 그는 여동생에게 200만원을 쥐어주며 회사 그만두고 유럽 배낭여행이나 다녀오라고 한다. 우와! 이게 진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말인가, 정말로? 드라마가 아니고? 불안해하는 동생을 등 떠밀어 보냈는데, 돌아온 동생은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단다. 그 뒤 무역회사에 새로 입사했고, 거기서 만난 사람과 캐나다 밴쿠버에 가서 살고 있단다.
나도 여동생이 하나 있다. 능력이 좋아 나보다 일찍, 벌써부터 돈을 벌고 있다. 그것도 나름 꽤 잘 번다. 내 여동생도 나중에 이 일이 힘들어져서 고민하게 된다면 나도 김민식 피디님처럼 멋지게 동생의 인생에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사람 참, 여러모로 본받고 싶은 사람이다. 멋있다. 진짜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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