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황안나, 《내 나이가 어때서》《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 모질고 모진 삶을 지나고, 수없이 걷고 또 걸으며, 지금 이 순간을 살다

참참. 2013. 6. 17. 14:16



삶을 사는 것을 흔히 길을 걷는 것에 비유하곤 한다. 여기 '걷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황안나. 그가 걸어온 길들은 큰 것만 요약해도 이렇다. 예순다섯에 땅끝마을부터 통일전망대까지 국토 종단, 예순일곱에 해안선 4천 킬로미터 일주, 예순여덟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킬로미터 걷기, 예순아홉에는 26시간동안 100킬로미터를 걷는 울트라 대회에 참가하여 46등으로 완주 등.

그렇다고 그가 단순한 걷기 매니아는 아니다. 길고 긴 길들만큼이나 모진 삶을 오래 살아오셨다, 아니 '걸어오셨다'. 남편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인한 빚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사였던 그의 월급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빚 갚느라 다 없어지곤 했다. 그런 상황이니 사는 집이든 뭐든 쉬운 것이 있었겠는가. 자그마치 20년을 빚을 갚으며 사셨단다. 살아온 날이 그 정도밖에 안 된 내가 보기에는 그저 까마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어렵던 시절에 그 없는 돈으로 시집을 사고, 떨이장미를 사기도 했단다. 돌아보면 그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지금껏 그를 지켜왔다고 한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그 삶 속에서 느껴온 있는 그대로의 비법들! 예순다섯의 나이에 국토 종단이라는 걸 떠나고자 결심했을 때의 이야기부터 간단히 들여다보자.

"누님이 삼사십대에만 종단을 떠나셨더라도 참 좋았겠어요."
내가 너무 늦은 나이에 국토 종단을 하게 되니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으리라. 내 나이 예순 다섯, 종단을 하기엔 좀 벅찰 수도 있긴 할거다. 그렇지만 나는 말했다.
"야, 난 지금이 적기다!"
그렇다. 내겐 바로 '지금'이 가장 적당한 때인 거다. '지금'을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일'이 있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늦었다고 생각하기엔 내 속에 들끓고 있는 열정이 너무 세고 벅차다.(황안나, 《내 나이가 어때서》, 23쪽)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하기에 '오늘'은 가장 적합한 때이다.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본단 말인가!(황안나, 《내 나이가 어때서》, 24~26쪽)

참, 이렇게 간단하고 명쾌할 수가. 사실 다른 데서도 들어보았을, 일상 속의 진리이다. 늘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오늘', '지금'뿐인 것이니 하고 싶다면 당장 시작하자.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을 따라서 사는 것을, 매일 연습하고 있다. 쉽지만은 않다. 실은,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하니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부터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그 마음에서 뭔가가 올라오면,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그건 말이 안된다는 둥,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둥, 그걸 하려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은지 아냐는 둥 그러지 말아야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말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쉬이 사라지지 않고 후배들에게,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이와 같은 살아있는 말들에는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해보지도 않고 "이젠 늦었어!" 하고 포기하는 일이 우리 인생엔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끝내 맛도 못 보고 자신의 삶을 박제된 인형처럼 만들어버리기 일쑤다.(황안나, 《내 나이가 어때서》, 90쪽)

예순다섯에 블로그를 시작하시고, 국토 종단을 하시고, 예순여섯에 책을 쓰시고, 예순여덟에 자전거를 배우기도 하시면서 즐겁게 사는 그가 하는 얘기니까, 도저히 '그냥 하는 소리'라고는 볼 수 없다. 우리 둘레에 뭔가를 하고 싶지만 너무 늦었다며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여전히 그러고 있고, 둘레에도 셀 수도 없이 많다. 새파랗게 어린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그런다. 그런 분야는 뭐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 친구들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무식한 엘리트주의 덕분에 체육이나 예술 분야에서 조금만 싹이 보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오직 그것만 하게 만드는 게 우리 풍토다. 좀 커서 그런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뭔가 한참 뒤처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엘리트주의는, 역으로 그렇게 어릴 때부터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그 스포츠, 그 예술 분야에만 매달리던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된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든 그 길에서 벗어날 때 특히 그렇다. 그것 이외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다는, 너무 늦었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분야에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재능도 적고 흥미도 잃어버린 그 분야에 애처롭게 매달리기도 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그 알량한 과학고 출신이 뭐라고, 그놈의 대학교와 전공이 다 뭐라고, 선뜻 놓아버리지 못한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부모님의 기대 등 많은 것들이 얽혀있기도 하다. 고작 스물넷,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 나이지만, 먹고살기 어렵다며, 취직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며 압박을 받기도 한다. 과학고를 나와 물리학과에 진학하고,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이제 와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아니 심지어 그 도전을 할 일을 찾아서 헤매고 다닌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더라. 지금은 순전히 재밌어서, 또 하다보면 용기를 얻게 되서, 이런 삶의 이야기들을 열심히 듣고, 읽고, 받아적고 있다.

행복이란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이다. 아무리 많은 걸 지녔어도 그 행복을 누릴 줄 모르는 사람에겐 행복이 없다.(황안나, 《내 나이가 어때서》, 190쪽)

세상이 매겨놓은 값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나이 마흔에 과감히 선택한 아들이 그런 면에선 참 대견하다. 온전히 자기로 살 수 있는 자리에 자기를 놓아두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중략) 언제 하늘로 불려갈지 모르는 모래성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그 불완전함 위에 무엇을 쌓아올릴 수 있을까 하고 허무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도 나오는 것 같다. 자기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순간순간 하고 사는 것, 그것밖에 더 있을까?(황안나, 《내 나이가 어때서》, 234쪽)


참고로, 안나 할머니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책 끝에서 동해안에서부터 바다를 끼고 남해안을 돌아 서해안까지 올라오는, '해안 따라 걷기'를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시간이 지나서 책을 읽은 나는, 그 또 다른 꿈마저 이루시고 난 뒤에 쓰신 책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을 곧바로 보는 신기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해안선 일주에 대해 쓰신 책은 아니지만, 어떤 책의 끝에서 하고 싶다는 일을 또 해내셨다는 걸 아니까, 얼마나 멋지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을 읽으면서도 참 많은 걸 느꼈다. 진짜 주옥같은 인생 비법들이 잔뜩 들어 있다.

열이면 열 다 척척 맞으면 좋겠지만 한 배에서 난 쌍둥이도 그건 불가능하다. 아예 처음부터 열 가지 중 세 가지만 맞으면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머지 중 넷은 맞추어가고, 또 나머지 셋은 끝끝내 맞춰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해라.
모든 게 다 맞아야 하고 모든 걸 다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시작이다. 끝내 같아질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뒤집어보면 자기만의 개성을 상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황안나,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 150쪽)

연애할 때, 나는 이런데 왜 너는 안 이러니, 다른 여자애들은 이렇게 한다던데 넌 왜 그러지 않니, 라는 식으로 말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해서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다. 말은 참 쉬운데, 막상 또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나랑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내 말을 조금만 이해를 못해도 어찌나 답답한지. 나랑 안 맞는 것들, 나와 다른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한다는 거, 평생 노력해야하는 일이겠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들은 2013/06/17 - [내가 바라는 글쓰기/토토협 [사적인 책읽기]] - [사적인 책읽기] 두번째 책 편지, 《안나의 즐거운 인생 비법》이라는 글에 많이 썼기에, 이쯤 적어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꼭 들려주고픈 말을 저 글에도 썼지만 여기에 다시 한번 옮기면서 글을 맺는다.

어쩌면 젊은이들은 뭔가를 배우거나 시작할 때 투자한 것만큼 이득을 얻으려는 계산이나, 결실을 보고자 하는 결과 중심주의 때문에 오히려 더 잘 도전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고 말이다. 당장의 결과에 마음 두지 말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그러면 배우는 동안은 즐겁고, 그 즐거움이 쌓이면 결과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말만 하는 사람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시작하는 사람은 그들과 100퍼센트 다르다. "하고 싶었다"와 "했다"의 차이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것이다.
무언가 꼭 배워보고 싶다면,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다면 당장에 시작하고 당장이라도 떠나라고 등 떠밀고 싶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바람개비를 돌게 할 수 있냐고? 그렇다! 바람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달리면 바람개비는 돌 것이다.(황안나,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 171쪽)



내나이가어때서

저자
황안나 지음
출판사
샨티(도) | 2005-08-05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할머니, 인기 블로그(http://k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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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

저자
황안나 지음
출판사
샨티 | 2008-08-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69세 황안나 할머니가 자신의 블로그(http://kr.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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