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출판 이야기

[출판사 이야기] 샨티, 나, 그리고 99일. - 1 -

참참. 2013. 5. 17. 22:41

샨티에 다니는 동안 내가 앉았던 자리.

지난, 1월 28일 월요일부터 샨티 출판사(http://blog.naver.com/shantibooks)에 놀러 다니는 출근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99일이 흘러 5월 6일 월요일, 이제 샨티에 그만 나가기로 한 나를 위해, 샨티 식구분들께서 송별회를 해주셨다. 그렇게 군 전역 후 한동안 내 일상을 가득 채웠던 샨티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샨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고등학생이던 때였다. 당시, 어떤 계기로 추천을 받아 샨티에서 펴낸 김종휘 선생님의 <너 행복하니?>와 <내 안의 열일곱>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들은,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 그 아이들과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성장해가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몹시 좋았다. 그 책들에 깊은 감명을 받은 상태로, 회원제도 안내를 보았다. 이렇게 좋은 책들을, 출판사에서 펴내는 족족, 공짜로 한권씩 평생을 받아볼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50만원이란 돈은 분명히 큰 돈이었으나, 다른 용돈 전혀 받지 않고 책을 사는 데만 한달에 20만원을 쓴 적도 있던 때였으므로, 불가능할 정도로 큰 돈은 아니었다. 어머니께 이 돈은 나중에 꼭 갚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처음으로 빚을 져서, 평생회원으로 가입했다.(그 돈은 24살이 된 지금까지도 못 갚고 있다.) 

군대 가기 전부터,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여차저차해서 물리학과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고등학생 때는 그럭저럭 재밌던 물리가, 이제는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 물리 선생님 정도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직이수도 신청해놓기는 했는데, 다른 쪽으로 자꾸만 관심이 갔다. 그러던 가운데, 김예슬이라는 고대생이 학교를 그만두는 사건도 일어났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벌사회>를 읽고, 내 삶 속에서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느꼈던 교육의 문제 역시 심각하다고 느꼈다. 대학 교육도 역시 굉장히 왜곡되어 있는 현실을 계속 느끼던 터였다. 대학을 나올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잘 사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어야만,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바꿀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군대에 갔다. 군대는,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그 잃음을 통해 나름대로 성숙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철은 들지 않았다. 전역할 때가 가까워지자,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어졌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며, 젊음과 열정을 제대로 불태워보지도 못하며 20대라는 이 소중한 시간을, 내 삶들을 흘려보내는 것이 몹시 억울하고 아깝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뭔가를 해보자. 그럼 물리 말고, 학과 공부, 스펙 쌓기 말고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은 뭐지? 뭘 하면 즐겁고 어떤 것에 의미를 느끼지? 그동안 경험해본 것이 많지 않아서 생각나는 것은 책밖에 없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했다.

그렇다고 작가가 되고자 하니, 굉장히 막막했다. 어디 가서 뭘 배워야할지도 모르겠고, 글 쓰는 걸 좋아는 하지만 작가 정도 수준의 글을 내가 쓸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고민의 끝에서 닿게 된 직업이 '출판편집자'라는 직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 좋은 글을 받아서 그 글을 읽고 고쳐서, 책으로 만들어내는 직업이라, 재미있어 보였다. 출판사라는 회사는 인턴제도 같은 것도 잘 없고, 있다해도 잠시 휴학 중인 학부생을 받아줄 리도 만무했다. 그렇다면 어디 가서 강좌를 듣거나 해야하는데, 강좌를 듣더라도 진짜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편집자의 가장 잡다한 업무는 어떤 것들까지인지를 알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알려면 진짜 출판사에서 보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어디 문을 두드려볼까. 아무래도 가장 친근한 곳이 샨티였다. 최연소 회원이고, 행사에 한번, 회사에 한번 이렇게 두번 찾아간 적이 있어, 최소한 얼굴이라도 아는 곳이었던 거다.

남들이 학점과 스펙을 위해 쏟아붓는 '군 전역자의 패기'를 나는 샨티를 찾아가는 데 썼다. 무턱대고 이메일을 보냈다. 아주 패기 넘치게, 돈같은 건 안 받아도 좋으니 출판사에서 잡일 도우며 일을 배우고 싶다고. 내가 한 일이지만 참 대단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그렇게 해서 샨티의 두 대표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당연한 일이지만, 대표님들께서도 당혹스러우셨을 터다. 나 역시, 막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냥 해보고 싶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건, 그 대화 끝에 결국 "그럼 우선 일주일 정도 나와보면서, 우리도 너에게 어떤 일을 시킬 수 있을지, 너도 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말로, 월요일부터 회사에 나가기로 되었다. 바로 그날, 평화님께서 이메일로 그때 이제 막 진행하기 시작하던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의 원고를 보내주셨다. 한번 읽어보고 느낌도 말해주고, 거기에 대해 요즘 어떤 교육관련 책들이 나가는지, 그 책들의 표지 중에 마음에 느낌은 또 어떤 건지도 살펴보면 도움이 될거라 하셨다. 글쓴이가 미국에 사는데 만약 한국에 온다면 어떤 일을 함께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 볼 거리로 던져주셨다. 아직 첫 출근도 하지 않았는데, 뭔가 본격적으로 출판사에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 받아본 원고는 몹시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