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아들과 길을 걷다 제주올레>, 임후남

참참. 2013. 5. 13. 23:12



아들과 길을 걷다 제주올레

저자
임후남 지음
출판사
생각을담는집 | 2010-07-12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엄마는 글을 쓰고, 아들은 사진 찍고, 길 위에 선 두 사람의 ...
가격비교

지난 5월 9일 목요일, <세상의 스무 살을 만나다>의 지은이와 출판사 대표님을 만났다. 그 출판사 생각을담는집의 대표이자 편집자이신 임후남 선생님께서 쓰신 책, 그 날 선물받았다고 책과 책에 받은 싸인 사진까지 자랑으로 올렸던 책이다.

2013/05/10 - [내가 바라는 만남] - <세상의 스무 살을 만나다> 지은이와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다.

이 책은, 엄마와 아들이 제주에서 올레길을 걸은 이야기다. 엄마가 글을 쓰고,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이 사진을 찍었다. 초등학교 6학년 짜리의 사진이 굉장히 느낌이 좋다. 제주의 바람이 느껴지는 듯한 들판 사진이 특히 인상깊었다. 엄마의 글은 몹시 솔직하다. 여행의 좋았던 일들, 행복했던 일들만 적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아들과 벌인 온갖 실랑이와 여행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소한 고민들까지 다 담았다. 그래서 더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고, 마치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아들과 이렇게 훌쩍 여행을 떠나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시대다. 엄마도 일을 하다보니 시간도, 여유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학원에 보내며 공부시키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더더욱이 이 걷기여행은, 말 그대로 올레길 걷기 여행일 뿐, 무슨무슨 박물관, 무슨무슨 체험행사에 참가해 아이에게 뭘 많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여행을 아이를 데리고 떠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런 한편으로는 또 현실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한, 평범한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주까지 가서도 일기를 쓰지 않고 자려는 아이를 잔뜩 혼내키기도 하고, 아이 공부에 대한 걱정도 한다. 아이가 여행지에서도 숙제같은 것으로 혼나야하고 하는 모습들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아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도 잘 해가면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엄마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터이다. 참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여행기다.

'늘 새로운 것들에 대해 흥분하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과의 대면이다.'(44쪽)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니고, 분명히 새로운 날이다. 하지만 많은 반복되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움을 잊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궁금해하지 않는 많은 것들이 품고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우린 늘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

올레길을 표시하는 화살표가 반듯한 화살표가 아닌 시옷자와 삐뚤빼뚤한 선으로 이루어진 것도, 그 안엔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을 아이 때문에 비로소 궁금해하고 답을 얻는다. 아이처럼 늘 의문을 갖고 그것의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러나 살다 보면 궁금한 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일들만 늘어난다.'(57쪽)

나도 그런 경험이 많다. 강연을 듣거나 할 때, 질문하라고 하면 딱히 질문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가 누가 질문하면 '와- 정말 그렇네? 듣고보니 그거 정말 궁금하다!'하는 때가 많다. 왜 그런 질문거리가 생각나지 않을까하고 혼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아직 20대인데 벌써 이렇다. 어릴 때도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질문을 잘 못했다. 분명 그땐 이래저래 궁금한 것도 많았는데, 질문하기를 어려워했던 것 같다. 갈수록 궁금한 것이 적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불과 30분 거리. 아침 10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무려 9시간이나 걸어온 거리가 버스를 타니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아이는 기가 막혀했다. 나도 처음 올레길을 걸을 때 그랬었다.'

'올레길을 걷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 허무의 순간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닐까.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가득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109쪽)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빨리 가고자하는 것일까. 우리는 버스 타면 30분이면 갈 거리를 그렇게 걸으면, 시간을 '낭비했다', '아깝다'고 생각하는 데 너무나도 익숙하다. 올레길을 구경하자고 여행을 떠난 사람들조차 이런 기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데, 평상시 우리가 느끼는 건 얼마나 더하겠는가. 그렇지만, 여행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산책이란 걸 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보는 세상은 우리가 삶에서 경험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하고,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몸도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 시간들이 모여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오늘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끔은, 우리가 바라는 삶은 도대체 무엇이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굉장히 헷갈리곤 한다.

도종환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김소연 시인이 <마음사전>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흔들림이란 '가장 부드럽고 진솔한 상태. 견딜 만한 혼란.'이고, 희망이란 그렇게 '흔들리고 흔들리다 보면 닿게 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들과 천천히 제주를 걸은 이야기. 빼어난 제주 풍경 이야기. 반갑게, 행복하게, 혹은 뜻밖에, 때로는 눈살 찌푸리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올레에서 만나고 온 제주와, 사람들과, 아이와, '나'의 이야기. 이 책은 그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