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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나 낙태했어>, 한국여성민우회 - 모든 낙태에는 오직 그만의 사연이 있다.

참참. 2013. 5. 10. 09:22

낙태, 그 주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무감했던가. '낙태는 살인이다'를 외치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지 않나?' 그냥 그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낙태에는 오직 그만의 사정이 있고, 사연이 있다. 바로 그 스물 다섯 사연 이야기.




있잖아 나 낙태했어

저자
한국여성민우회 지음
출판사
다른 | 2013-02-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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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가지고 합법이니 불법이니 낙태에 찬성하느니 반대하느니, 그런 말을 많이 한다. 나도 거기에 어떤 문제의식도 없었다. 이 책의 끝에 마무리하는 글에서 여성민우회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래는 인용문입니다.)

언뜻 '낙태 찬반론'은 개인의 윤리적 판단만으로 낙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가능한 양 착시 효과를 냅니다. 일부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럼, 당신은 낙태를 찬성합니까?" 저희는 말합니다. 찬반론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도덕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활용되는 허울 좋은 주제탐구는 당신들끼리나 하라고. 이 질문의 배경에는 여성이 왜 낙태하게 되는지, 사회적으로 왜 낙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전제와 구체적인 현실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여성도 낙태하고 싶은 여성은 없습니다. (중략)

낙태는 성관계, 피임 교육, 피임을 제안할 수 있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 육아가 가능한 사회적 지원 체계,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한 인간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성에게 출산을 결정하는 것은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동등한 무게입니다.(181~182쪽)

 

서평을 쓰면서 이렇게 길게 인용문을 넣는 일은 잘 없는데, 그냥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세상에 낙태를 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은 없다는 이야기가 참 공감이 된다. 실제로 이 책에 나오는 사연 중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자신이 20대 초반에 대학교 선배들도 있는 술자리에서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건데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 아니냐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었다고. 그때는 낙태란 것이 이런 것인 줄 하나도 아무것도 몰랐다고, 부끄럽다고 말이다. 그렇다. 그게 그렇게 쉽게 살인이라는 둥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말하던 그 분도 낙태를 했다. 하고싶어서 했을까? 할 수 밖에 없어서 한거다.

가장 좋은 것은 당연히 피임을 잘하는 것이겠다. 참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부터 적나라하게 피임법을 성교육하는 것이 옳은가? 솔직히 확신은 안 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린 아이들이 이미 성적인 환경에 노출이 되어있다면 실질적으로 필요한 피임법을 확실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정말로 어릴 때부터 TV와 인터넷까지도 차단을 하고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고등학생 정도까지 교육을 시킨 후에 아름다운 방법으로 성교육을 시작하든가. 이미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연애, 스킨쉽, 섹스에 넘칠 정도로 노출이 되고 있다. 알 거 다 알고 할 거 다 한다. 그런 현실은 외면하고 언제까지 개인들의 문제로 치부하면서 불법이니 하지 말라고만 할 것인가. 애 낳으면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낙태도 불법이고, 영아를 버리는 사건이라도 터지면 달려들어서 무정한 엄마라며 엄청나게 사악한 인간이 나타났다는 식으로 기사를 쓴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동의하지 않는가? 최근 발표를 보면 애 하나를 대학졸업까지 키우는데 평균 3억원이 든단다. 그것도 어학연수, 재수, 휴학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어쩌라는 말인가? 이미 임신은 되었다. 절대 원하지는 않았다. 잘 몰라서 그랬을 수는 있지만 절대 원하지는 않았다. 이제 어쩌라는 말인가? 과연 낙태를 불법화하고 막으면 출산율이 올라갈까? 절대 아니다. 낙태 불법화 덕분에 이미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을 마주한 여성들은 불법이기에 몰래 하느라 더 비싸지는 가격에, 점점 더 안전하다고 믿기 어려워지는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중국으로 원정 낙태를 가기도 한다. 그러느라 몸도 마음도 더 상처를 입는다. 그런 여성들은 나중에 정말로 이제 아이를 원하고 키울 능력도 되는 때가 되었는데도 불법이라 제대로 받지 못한 낙태 수술 때문에 몸이 임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수조차 있다. 

스물 다섯 명의 이야기는 다 달랐다. 10대부터 40대 넘어서까지. 오히려 결혼을 한 상태에서 낙태하는 사람이 많고. 죄책감의 정도도 거의 없는 사람부터 아주 심한 정도까지 천차만별이다. 낙태 경험을 할 때 자신에게 이러한 것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것도 다 다르다. 남자친구나 남편의 따뜻한 위로와 함께 있어주는 것, 의사나 간호사의 친절하고 보살펴주는 말과 손길, 혹은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곳에서 어떤 도움을 좀 받아서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제공 등. 선진국에서는 낙태할 때 이혼을 할 때처럼 전문가와의 따뜻하고 전문적인 상담을 받으며 일주일 정도 고민하는 기간을 거친 뒤에 제대로된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낙태가 합법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여성 그 본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기에 가능한 서비스이고 제도이다.

낙태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한 생명을 죽이는 일이다? 그 말이 설령 옳다고 하더라도 그 말들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해야할 때이다. 그건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약하고 상처받은 그들에게 더 큰 상처와 죄책감만 심어줄 뿐이다. 더불어 낙태라는 단어 자체도 부정적인 느낌이 덜한 아주 적절한 낱말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도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나는 절대로 이 일들을 경험해볼 수 없는 남자다. 여성주의에 사실 그리 크게 관심도 없다. 그렇지만 이 사연들을 무시하고 머리로만 생각하고 감히 이래라 저래라 말해서야 될까. 그건 참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또한 무척이나 많은 사례들이 남자들의 무지와 거짓말과 대책없음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책, 책을 쓰신 분들은 낙태경험을 공유한 여성분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지만, 난 모든 남자들에게 절대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제발 손톱만큼이라도 느껴보자고 말이다.


* 이 글은 2013년 4월 11일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