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마음사전>, 김소연

참참. 2013. 5. 14. 18:26


마음사전

저자
김소연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08-01-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마음의 뉘앙스를 담아 표현한『마음사전』. 이 책은 시인인 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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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4월에, 부대 안에서 읽었던 책이다. 집에 있던 책을 부대에 가져가서 읽었는데, 이젠 이 책을 어떻게 해서 사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부대에서 이 책을 읽으며, 수도 없이 메모를 하게 되었던 기억이, 그 메모들과 함께 남아있을 뿐이다.

김소연 작가는, 그 작은 낱말들에 우리 마음의 결을 가만히 담아내고 있다. 마음을 오래도록 들여다본 걸까.

'어둠 전등불을 갑자기 끄면 사방은 칠흑이지만, 이내 그곳에도 빛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물들의 실루엣이 보이다가 사물들이 온전히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마음이 칠흑일 때, 차라리 마음의 눈을 감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길 차분하게 기다린다면, 그리고 점자책을 읽듯 손끝으로 따라간다면, 이내 사물을 읽을 수 있고,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밝음 속에서 읽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 온 마음으로 잘 읽힌다.'(31쪽)

이런 마음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 이런 낱말들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걸까.

'뒷모습 뒷모습은 절대 가장할 수 없다. 정면은 아름답다는 감탄을 이끌어내지만,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한숨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뒷모습은, 돌아선 이후를 오래도록 지켜보았을 때에만 각인되기 때문에, 어쩔 도리없이 아련하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바라보는 뒷모습이기에, 눈꺼풀 안쪽에다 우리는 그 형상을 찍어서 넣어둔다. 그래서 꺼내지지 않는다.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다.'(136쪽)

겪어본 일들에 대해서는, 더 가슴 아프게, 읽을 수 있다. 어쩌면 겪어보지 않은 일은, 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진심으로 알 수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또, 일견 비슷해보이는 낱말의 그 미묘한 틈을 찾는다. 실은, 그 둘이 얼마나 다른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 낱말인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물론, 그 의미들은 작가의 주관이다, 어디까지나. 작가가 이야기해주는 그 틈들은 왜 이다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무엇이 그리도 나를 마음 속 깊이 내려가보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순진함과 순수함 순진함은 때가 묻지 않은 상태다. 순진함은 미숙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지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잘 속고 어리석고 자기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래서 순진함은, 순진한 스스로에게도 연루된 사람에게도 독이 될 때가 더러 있다. 반면, 순수함은 묻은 때를 털어낸 상태다. 순수함은 순수한 스스로에게도, 연루된 사람에게도 약이 될 때가 많다. 물론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 순수함의 약을 받아먹었을 때에 독이 되는 순간이 있긴 하다. 명현 증상처럼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무언가 뒤집힌 듯한 알 수 없는 부작용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긴 이후부터는 약으로 작용한다. 순수함은 성숙함의 한 속성이며, 현명함에 대한 하나의 근거다. 순진한 사람은 속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속지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조종하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조종할 수 없다.'(199쪽)

작가에 따르면 순수함이란, 거의 일종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다. 하긴, 이 세상의 온갖 모습들을 보고, 겪고도 순수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뭔가 있다. 순수하게 바라는 일들을 해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들은 순수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기에, 큰 돈에도 시련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정말로 순수한 사람들을 보면, 순간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몹시 닮고 싶어지곤 한다.

그 외에도 깊은 울림을 주었던, 어떤 낱말들에 대한 문장들이 많았다.

'근심 의논하고 나면 해결 가능해지는 것. 의논하지 않는다면 죽음에도 이를 수 있는 병.'
'기적 소리도 없이 조용히 도착한다, 믿고 있는 한. 요란한 기적은 대개 착각의 일부.'
'미안함 호감의 가장 불편한 궁극. 잘 살고 싶어지는 근거.'
'배려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장 은은하게 나타내는 자세.'
'슬픔 생의 속옷.'

더 많이 소개하고 싶지만, 책 내용을 너무 많이 누설하는 것 같아서 자제해야겠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보니,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도 책이 소개되었나보다.

마음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고 싶을 때, 펼쳐들기에 더할 나위없이 적절한,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