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통하면 아프지 않다>, 김창남 엮음, 김남훈, 김규항, 김여진, 오연호, 강풀, 하종강, 김조광수, 김영경, 김제동

참참. 2013. 5. 15. 12:02



통하면 아프지 않다

저자
김남훈 지음
출판사
북스코프 | 2012-04-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려는 9명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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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 건, 김규항 선생님 덕이었다. 김규항 선생님을 좋아해서, 김규항 선생님 이름으로 검색하다가 이 책이 걸려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전혀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직접 추천해주신 건 아니지만,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선생님이 아니였다면 이 책을 못 읽어볼 뻔 했기에.

정작 책을 읽으면서는 김규항 선생님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다고 느꼈다. 왜냐면, 관심이 많다보니 이미 다른 책, 다른 강연, 선생님 블로그 등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종강 선생님 이야기도 재밌긴 했는데, 역시 그동안 강연을 직접 들어본 개인적인 기억이 있어서, 뭔가 새롭다라고 느낄 만한 점은 아무래도 적었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는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의 김여진 선생님 이야기였다. 그동안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이름은 여기저기서 가끔 주워듣긴 했다. 그냥 잠깐 정치에 관심 가지는 연예인인가보다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을 했다. 김진숙 선생님 강연에서 선생님께서 309일 크레인 고공농성하실 때, '어디서 날라리같은 애들이 와서 반짝하고 금방 갈 줄 알았더니, 끝까지 있더라.'고 언급하시는 걸 듣고, 좀 더 인식이 좋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잘 몰랐다. 이 책을 읽고야, 굉장히 멋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까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 후회될 정도다.

김여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따로 묶었다. 2013/05/15 - [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 김여진, <통하면 아프지 않다> / 한 달하고 보름동안 하루 두 번씩 같은 연극을 보다

또 인상깊었던 이야기가, 프로레슬러이신 김남훈 선생님 이야기와 너무나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강풀 선생님 이야기였다.

김남훈 선생님은 프로레슬러이고, UFC 해설자인데, 일본어 교재도 쓰고, PDA에 대한 책도 쓰셨단다. 처음에 봤을 때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읽으면서야 드디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일본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참 재밌다. 일본 오토바이 잡지를 보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단다. 그런 아주 순수한! 이유로 공부를 했으니, 열정이 있고 재미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만 보던 일본 오토바이 잡지에서 거기 쓰인 내용들이 의미있게 이해되어 들어올 때 느낀 희열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다.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일본어 공부하다가 나중에는 일본어로 술 주정을 하더라는 소리까지 들었단다. 그렇게 재밌게 열정적으로 했으니까, 프로레슬러가 일본어 교재까지 쓸 수 있었을 거다.

UFC해설자가 된 이야기는 더 재밌다. 5년이나 열심히 지원을 해도 서류에서 계속 떨어지니까, 이제 영상을 찍어서 올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로킥을 맞아가며, 기술에 대한 영상도 찍고, 그걸 계속 하다보니 영상이 화제가 된다. 결국 방송국에도 알려지고 서류에서 매번 떨어뜨리던 사람들이 먼저 면접 제의를 해와 면접을 보고, 바라던 UFC 해설자가 되었다. 참 대단하다.

이 부분에서, 강풀 선생님 이야기와 함께 떠올리면, 갑자기 캐논변주곡이 생각난다. 하나의 주제를 조금씩 변형해서 연주하는 변주곡. 두 분의 삶도 굉장히 비슷한 이야기가 격투기냐, 만화냐라는 차이만 놓고 비슷하게 전개된다. 

강풀 선생님의 이야기 보면, 일단 이 분은 만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대학에서 만화를 처음으로 그려본다. 전공은 국문학이었다. 그러다가 만화가 너무 좋아져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만화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게 서른이 다 되어갈 즈음이었단다. 취직할 데가 없었는데, 그 때 이 분은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서울경기 지역 전화번호부 업종편 두 권에 수록되어있는 모든 잡지사, 신문사, 출판사를 찾아낸다. 그렇게 해서 427군데에 이력서를 보냈단다.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없다가, 기독교신문사에서 돈 받지 말고 그려달라는 요청과, 사채회사 비슷한 곳에서 홍보 만화를 그려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둘 다 거절한다. 그 뒤엔 교보문고 지하 잡지 코너에 가서, 잡지 뒤에 출판사 전화번호와 편집장 이름을 모두 베껴온다. 그걸 가지고 하루에 네 군데씩 찾아다녔단다. 그렇게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6개월을 돌아다녔는데도 일자리가 생기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참 굉장한 이야기다. 그러다 이제 지쳐서 영원히 만화를 못 그리겠구나, 절망도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당시만 해도 전혀 없던 시도를 또 한다. 인터넷에 만화를 올리기 시작한 거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재밌다고 반응을 보이고, 그는 결국, 아마 대한민국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만화가가 된다. 참, 대단하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선생님은 어떤가, 감옥 갔다온 경력 때문에 유일하게 취직가능했던 <말>지에 취직을 한다. 도대체가 비주류 매체에서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읽는 사람이 별로 없다. 월급이 적은 것도 참을 수 있지만, 좋은 기사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건 참기 어려웠다. 누가 썼느냐, 어느 매체에 있는 기자가 썼느냐보다 오직 기사의 질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까,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되고 각각의 기사는 그 기사의 질로 평가받을 수는 없을까. 그는 오마이뉴스를 만들었다.

김영경 선생님의 이야기를 보자. 등록금을 대출 받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다 학원 강사로 몇 년을 일하고 있는데, 등록금 갚느라 돈 한푼 모으지 못했다. 알고보니 청년들의 노동현실은, 나만 그런게 아니라, 전체가 다 말도 안되게 팍팍하다. 조금만, 몇 명만 모여서 항의하니까 의외로 쉽게 바뀌는 것들도 많다. 말도 안되는 비인간적인 조건들을, 바꾸는 것이 당연한데 계속 참고 살았구나, 다 혼자서만 각개격파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혼자서는 바꾸기가 참 어려운데. 그는 한국 최초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을 만들었다.

동성애가 병이라, 이 병을 빨리 고쳐야하는데 고치지 못해서, 십 년을 넘게 우울하게 살았던 김조광수 선생님. 우리가 사회를 바꾸겠다고 하는 운동과, 이 동성애 문제가 다른 것이 아니구나. 같은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럼 내가 영화를 했으니까 영화와 동성애와 운동을 함께 해보자. 커밍아웃을 하고, 이 문제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감독이 없네? 내가 감독을 해보자. 그렇게 그는 영화 감독이 됐다.

이런 식으로 쉽게쉽게 말을 해버리면, 그냥 그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고, 우리와는 다른 인종이라는 식으로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게 자기가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무척이나 운이 좋아서, 그 열정을 갖고 한 일이 '우연히' 잘 풀린 것이지, 다 그렇게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정말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없을까? 이 사람들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주변에서 걱정과 충고도 많이 해주고, 부모님께 불효한다는 죄책감도 있고, 돈 한푼 제대로 못 버는 그런 찌질함들이 있었다. 다 그랬는데, 이 사람들이 거기서 그 생활들을, 재밌는 일을 놔두고, 그 겉으로 보이는 생활 조건만 더 '낫게' 하려고 아무 회사에나 들어갔다면, 지금의 이 모습들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설령 정말 하고싶은 일 하다가, 돈 못 벌게 되고 결국 취미로만 하게 된대도, 그렇게 했던 경험들만으로도 삶에 참 아름다운 추억 아닌가? 요즘은 정말 언제 교통사고같은 걸 당할지, 언제 암진단을 받을지 모르는 시대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지금 여기서 당장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몹시 후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