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130504] '새터민 대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이야기

참참. 2013. 5. 10. 12:45

5월 4일, 토요일.

오전 여섯 시 - 토요일인데, 더 자고 싶다. 일어나야하나 고민을 했다.

 



오전 아홉 시 - 길까지 헤매서 조금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무사히 행사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터민 대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제목은 거창하지만 북한이탈주민 중 대학생이 된 이들에게 선배나 선생님들 말고 같은 대학생인 친구가 되어주자는 프로젝트의 첫 시작하는 행사였다. 지원한 대학생들이 미리 북한이탈주민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대학생과 약간은 다를 수 있는 부분들,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고 만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알려주시고,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유시은 교수님과 정의혁 목사님의 강연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이 어떤 과정을 겪어 남한으로 넘어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험한 일을 겪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남한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정착하게 되고, 남한에서의 살아가면서 어떤 부분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북한에서의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의 의미에 대한 부분이었다. 고마운 건 무조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감사로써이고 미안하다는 내가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지겠다는 무서운 말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런 말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남한 친구들이 북한이탈주민들은 고마워할 줄 모르고 예의가 없다고 오해를 하게 되는 이유 중 한가지가 이것이라고 하셨다.


세번째 시간은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이신 전우택 선생님 강연이었다. 이 강연 제목은 '북한이탈주민의 정신건강'이었는데, 이 강연을 들으면서 내가 유행하는 말로 '힐링'받는 느낌이었다. 끝나고나서 사회자 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던데, 이게 비단 북한이탈주민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는 많은 정신적인 아픔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만 북한이탈주민들은 좀 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확률이 높고, 그것들은 주로 어떤 유형이신지에 대한 설명이 조금 곁들여져 있었을 뿐이다.


건강한 정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어찌나 인상깊던지, 꼭 쓰고 싶다. 선생님께서는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란, '1. 잘 일하고, 2. 잘 놀고, 3. 잘 사랑 받고 사랑하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고 하셨다. 아마, 둘러보면 정말 정신이 건강한 사람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듯하다. 나 역시 얼마나 정신이 건강한가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1번 잘 일하는 사람은 삶에 대한 의욕이 있는 사람이다. 또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가치나 의미를 갖고 있고 흥미도 조금은 느낄 수 있어야 일을 열심히, 잘할 수 있다는 거기 때문에(내가 이해하기로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다만 일에만 몰두하여 일명 '워커홀릭'이라 불리는 그러한 사람들은 2번과 3번 조건이 빠져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2번 잘 노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전우택 선생님께서는 잘 논다는 건 '잘 감동하고,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최근 누군가를 눈물나게 감동시키거나 혹은 스스로 감동을 느낀 일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부끄러웠다. 만약 어떤 미술 전시회에 가서 한 작품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날 듯하고 감동하여 5분이나 그 그림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면 잘 노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잘 논다는 거, 그런 거였구나.


3번 잘 사랑 받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편안하게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주기는 잘하는데 받는 것에 미숙하고 서툰 사람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 사랑하는 것에서도 편안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전투적으로, 그리고 꼭 보답을 받으려고 하거나, 자연스럽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 과거를 돌이켜보아도 건강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잔뜩 떠올릴 수 있어서, 이해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외적 스트레스의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하고 성실한(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도덕적 측면에서) 삶'이라고 하셨다. 단순하고 성실한, 참 별거 아닌 그런 말들인데, 우리네 삶은 어찌나 복잡한지 이걸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단순하고 성실한 삶, 그렇다, 그런 삶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요즈음 계속 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운동'을 예찬하시면서 굉장히 강조를 많이 하셨다. 일상생활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몇번이나 말씀을 해주셨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기도 하고(물론 '우울증'단계에서는 이미 의식적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단계까지 온 것이기 때문에 약을 꼭 복용해야한다고 한다고 강조하셨다. 하지만 약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고, 약을 먹으면서 자신의 일상을 바꾸는 많은 노력을 통해서만 우울증에서 진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또 북한이탈주민 친구들과 만남에서는 이야기만 나누다보면 아무래도 우리들이 이 사회에 대해 많이 알고 뭔가를 가르쳐주는 '갑', 그 친구들이 '을'의 입장인 분위기가 형성되기가 쉬운데, 운동에서는 우리가 '을'이 될 경우가 많을 거라고도 하셨다. 그런 자연스럽고 누군가가 우위에 있지 않은 수평적인 '친구'관계를 위해서도 운동을 함께하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하셨다.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구체적 지침을 열다섯 가지나 적어주셨는데, 이건, 우리들 자신에게 매우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히 메모를 통해 상황을 정리하기, 한가지씩 해결해 나가기. 특별한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방법이라며 설명해주시니, 정말 참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늘 '아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는데 이걸 다 언제 해'라는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일을 반복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목록을 만들고 하나하나 해나가면 대체로 거의 다 할 수가 있는데, 한꺼번에 생각하며 막막해하기만 하면 결국 스트레스만 왕창 받고 실제로 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이런 걸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일기 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일기를 쓰는 건 자기성찰의 시작이라며. 일기를 쓰다보면 내가 화를 낸 일이 있었을 때, 그게 정말 화를 낼 일이었나? 혹은 내가 화를 낸 '진짜' 이유가 뭐지? 정말로 그 상황에서 그것 때문에 화를 냈나?와 같은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하셨다. 살다보면 사실, 다른 데서 받았던 울분을 사소한 계기로 전혀 다른 사람에게 터뜨려 화를 내게 되는 경우도 많고, 잠깐만 생각해보면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더 좋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 화를 꼭 내야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경우도 많더라. 물론 화를 낼 때는 화를 내야겠지만, 불필요한 화를 내서 상대나 나 모두에게 좋을 것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경우를 줄이려면, 반성을 하는 일이 필요하겠지.


마지막에 가서는 '무엇이 나의 스트레스인가?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한다.'라는 문장을 적어주셨다. 멋진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누가 내 집앞에 자꾸 쓰레기를 버리네, 짜증나.'라는 스트레스를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동네 수준'의 사람이고,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세계 수준'의 사람이라는 비유를 드셨다. 비유는 좀 거창하지만 내가 가장 주요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무엇인가 라는 그런 것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다니 신선하면서도 일리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우택 선생님 강연이 끝난 뒤에는 경험담을 말씀해주시고 질문에 대답해주시는 간담회 비슷한 시간이 이어졌는데, 북한이탈주민이 꼭 불쌍한 사람들인 건 아니라고 하셨다. 북한이탈주민도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정말로 그냥 이용해먹을 타겟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도 극단과 극단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많은데,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다 비슷할 리가 없다. 그런 사람을 몇 명 만났다고 해서 북한이탈주민은 어떠하다고 말을 하면 안 되겠고, '그 사람'은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고 잘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행된 행사는 기독교쪽 재단에서 준비한 것이라 아무래도 종교적인 이야기도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개신교 신자가 아니기에 '종교가 없는 멘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하고 목사님께 질문을 드리기도 했다. 답변은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신 분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셨다. 물론, 신앙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전도를 하고싶어하시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래도 그 답변에 안심이 되었다. 새터민 대학생들을 지원하는 학교를 운영하고 계신 분께는 북한이탈주민 분들에게 꼭 대학을 가라고 하시는 편이냐고 여쭈어보았다. 답변은, 꼭 대학교에 가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학교라도 가라고 권하는 이유는 그 기간이 아주 좋은 '적응기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특히 북한이탈주민은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지원을 해주는데, 그 지원이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바로 끊어진다고 하셨다. 아직 당장 기술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라 취직할 준비도 안 되어있고 이 사회의 문화같은 것도 익숙하지가 않은데 지원이 끊어져버리면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되기에, 학교를 다니면서 제도적으로 지원을 좀 더 받는 동안 그 학교라는 곳에서 남한에 대해 좀 더 부드럽게 시간을 두고 경험하면서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누구나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에 대해 평소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서 질문했던 것인데, 그런 측면으로 대학교를 보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끝나고 점심을 먹었는데, 개신교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서른 살 동갑내기 부부와, 나와 동갑내기인 역사를 전공하고 있다는 스물넷의 친구분(물론 이 분도 개신교 신자였다.)과 함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와서, 다른 분들은 다 아는 사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내 옆에 앉은 친구분도 혼자 오셨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부부이신 두 분도 굉장히 친절하시며 교회 다니라는 말씀도 전혀 안 하셔서, 편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주최측 분들이 다 가실 때까지 천천히 밥을 먹으며 함께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다음 모임은 5월 17일 석가탄신일날이고 드디어 처음으로 새터민 대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그 대학생들이 스스로 체육대회 프로그램을 짜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첫만남은 체육대회인 것이다. 뜨아, 게다가 장소는 쌍문, 수원에서는 서울을 세로로 완전히 뚫고 지나가야하는 곳이다. 다행히 행사 시작은 10시라고 한다. 어떤 종목들과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