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체한 이야기.

참참. 2013. 5. 10. 10:59

체해서 아팠다.

 

덕분에 늘 나가던 출판사도 쉬고, 삼겹살 파티도 놓치고,

약속했던 조모임에도 못 나갔다.

 

잘 안 들어가는데 억지로 꾸역꾸역 먹으면 꼭 체한다.

그런데도 밥그릇에 밥이 남으면 또 그러곤 한다. 아직도 몸의 말을 잘 안 듣는 나다.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혼자 냄비에 식은 밥과 물을 넣어 죽을 끓였다.

2010년 겨울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었을 땐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던 것이,

아직 체한 상태여서 그런지 참 맛이 없었다. 눈물이 약간, 났다.

 

책을 한권 읽고,

저녁이 다 되어서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그러고나니 확실히 답답한 것이 내려가면서 시원해졌다.

여전히 별 맛은 없었지만,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힘으로 죽을 다 먹었다.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산책을 나섰다.

혼자만의 여행을 하고 싶어서 손전화도 두고 갔다.

 

내가 지금 돈을 벌고 싶은 걸까, 내 삶에서 지금이라는 시기에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일까.

내가 지금 진짜로 하고싶은 일은 뭘까, 어떤 것이 정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까.

나는 누굴까, 어떻게 살고싶은 걸까.

 

아주 천천히 동네 뒷산을 걸었다. 그러다 벤치에 혼자 앉아 곰곰 생각도 해봤다.

특별한 결론이 나온 것도 아니건만, 편해졌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시간을 주려고 아팠던 건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2013년 4월 6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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