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어쩌다 창업하게 되는가

참참. 2026. 1. 4. 08:20

 

나는 창업을 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웬만하면(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였지만 많이 완화) 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창업 이야기들은 참 흥미롭다.

어제(26년 1월 3일) 넷플릭스 (공동)창업자 마크 랜돌프의 <절대 성공하지 못할거야>를 다 읽었다. 몇 달 전에는 퍼블리/커리어리 창업자 박소령 작가님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읽었고, 거기서 언급된 월마트 창업자 샘 월턴의 <월마트, 두려움없는 도전>도 읽었다. 벌써 3년이 넘게 지난 22년 10월에는 토스 창업스토리를 다룬 <유난한 도전>을 읽었다.

굉장히 재밌다는 것 외에 이 책들의 공통점은 어떻게 창업하게 됐는지를 꽤 가감없이 다룬다는 것이다. 그동안 스타트업에 대해 꽤나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뭔가 "미션"이 먼저 있고 그걸 향해 달려나가는 신념있는 창업자들과 같은. 그런 스토리를 좋아한다. 사이먼 시넥의 유명한 책 <Start With Why>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 관점은 매우 유용하지만, 적어도 넷플릭스나 토스처럼 굉장한 기업들도 최초의 시작에서는 why라든가 미션이 먼저 있지는 않았다는 걸 아주 솔직한 스토리에서 알게 되는 게 재밌다.

오히려 why나 미션에서 출발했다라는 면에서는 박소령 님이 창업했던 퍼블리가 이 중에 가장 인상적이다. 컨텐츠가 인생을 바꾼다는 모토, 그러므로 더 양질의 한국어 컨텐츠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을 해보자는 명쾌한 방향성. 그런데 퍼블리조차도 처음에는 거창한 목표보다도 어쨌든 뭔가 컨텐츠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 정도의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책에서 얘기하신다. 게다가 이쪽도 사업을 하다보니, 고객과 시장을 따라가다보니 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전개된 것도 재밌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거야>에서는 넷플릭스의 흔히 알려진 창업스토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힌다. 알려진 창업스토리는 공동창업자이자 현재까지도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어느날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비디오를 뒤늦게 반납하다 연체료로 무려 40달러를 내고나서 "연체료없는 DVD 대여사업을 하면 어떨까?"하고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진짜 사실은 마크 랜돌프가 "요즘 떠오르는 인터넷 기술로 뭔가 팔아보는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뭐 괜찮은 아이템 없나?"하면서 수십 개의 아이디어를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던지고 단칼에 "그건 안 돼" 소리를 듣던 반복 끝에 그나마 하나 건진(좋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능성은 있다 정도) 사업구상으로 시작된 것뿐이었다.

그것도 원래는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점을 온라인으로 대여해주면 어떨까에서 시작했는데 비디오테이프 택배비가 말이 안돼서 포기하려다 새로 나온 DVD는 가벼워서 우편으로 싸고 빠르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그건 아직 비디오 대여점들에서 취급도 안하는데? 하면서 시작됐다. 그렇게 회사 세워서 몇달동안 고생하고 웹사이트 완성해서 사업 시작한 뒤에도 기존 비디오 대여점들과 비슷하게 일주일동안 빌려주고 늦게 반납하면 연체료 받는 똑같은 시스템이었고, 대여 이용자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DVD 온라인 판매로 매출이 좀 나왔는데 그마저도 온라인 책판매 혁신으로 이미 급성장해있던 아마존에서 DVD를 팔기 시작하면 금방 없어질 매출이라는 현실 인식 때문에 대여사업쪽에 사활을 걸어야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연체료가 없이 월구독료를 내고 일정 장수까지의 DVD를 빌려 언제까지고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해보게 됐고, 예상치 못하게 이 아이디어가 대박이 되어 그런 사업이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실물 DVD가 아닌 영화를 스트리밍으로 제공하는 OTT 산업으로 다시 혁신했고, 여기서 머물지 않고 직접 뛰어난 컨텐츠들을 제작해 내놓으면서 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토스 역시 비슷하다. <유난한 도전>에 따르면 토스의 최초 기능이자 성공의 발판이었던 간편송금 서비스는 대략 7, 8번의 사업 실패 이후에 시작한 사업이었고, 그마저도 위의 마크 랜돌프가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했듯이 당시 몇명 뿐이던 토스팀에서 그냥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까지 포함한 수십 개의 사업아이디어들 목록에서 뽑아낸 것 중 하나였다. 심지어는 그 아이디어들 중에서도 가능성이 낮아보이는 그룹에 들어있었던 아이디어라고 한다. 토스가 사업의 진짜 맨 처음부터 모바일 금융을 혁신해야겠다, 사람들이 금융서비스에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한 세상을 만들겠다같은 미션에서 출발했던 건 아니었다는 거다.

월마트도 비슷하다고 느끼는 게, 책에 보면 샘 월턴(월튼)은 미국 중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실제 생활비를 낮춰 삶의 질을 높이는데 월마트가 엄청 기여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처음 시작부터 그런 목적의식을 갖고 했던 건 아니다. 샘은 어떻게 보면 이 중에서 제일 한 우물만 판 사람에 가까운데, 진짜 소매업을 사랑했다는 게 책에서 절절히 느껴진다. 동네의 작은 잡화점 운영을 처음 접하던 때부터 줄곧 어떻게 하면 물건 더 싸게 떼와서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을까, 어떻게 진열하면 사람들이 더 관심 갖고 많이 사갈까같은 것들에 남들보다 훨씬 더, 아주 많이, 끝도없이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계속 배우고 연구했는데 그 열정이 70대, 죽는 날까지도 별로 식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릿>에는 일생동안 한 분야에서 커다란 성취를 남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꼭 창업이 아니라 인생의 열정을 쏟아부을 어떤 분야(혹은 분야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어떤 행위, 혹은 심지어 살고 싶은 어떤 지역 등 나름대로 추구하는 것)를 만나게 되는 건 처음엔 대부분 우연에 가깝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처음에 관심사를 발견했을 때는 종종 본인도 모르고 넘어간다. 즉 이제 막 무언가에 관심이 생길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지루한 감정은 느끼는 즉시 알지만 새로운 활동과 경험을 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성찰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 뒤 이제 열정의 대상을 찾았는지 며칠에 한 번씩 초조하게 자문하는 것은 너무 조급한 행동이다.
셋째. 관심사를 발견한 뒤 오랜 시간 주도적으로 관심을 발전시켜야 한다. 처음에 관심이 생긴 후에도 계속 그 일을 경험함으로써 거듭거듭 흥미를 유발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중략)
나는 불안한 부모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내가 말하는 그릿의 의미를 오해한다는 인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내가 그릿의 절반은 끈기라고 이야기하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일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데도 끈질기게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단지 어떤 일을 좋아한다고 그 일을 뛰어나게 잘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자칭 타이거 맘인 에이미 추아는 말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잘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에 서툴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관심을 발전시키는 중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연습하고,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싫어하는 일에 더욱 서툴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따라서 부모나 예비 부모 그리고 부모가 아닌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공부보다 놀이가 먼저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 열정의 대상을 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하루에 몇 시간씩 부지런히 기술을 연마할 준비가 되기 전에 흥미를 자극하면서 빈둥거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관심을 발전시키는 데는 시간과 에너지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절제와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초보자들은 초반부터 기술이 향상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들은 몇 년 후의 일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일생의 길잡이가 될 최상위 수준의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 없이 그저 즐길 뿐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성공한 전문가들도 처음에는 진지하지 않은 초보자였다.
앤절라 더크워스, <그릿> 중 (150쪽)

이 글을 쓰다보니 전에 읽었던 <어쩌다보니, 그러다보니> 라는 책도 기억났다. 당시엔 MBC 기자셨다가 직장을 잃게 되어 취미였던 스피커 쪽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이야기였는데, 제목부터 흥미로웠고 내용도 재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MBC로 복직하게 되어서 MBC 사장까지 하셨다. MBC로 복직하실 때 스피커 업체 대표직에서는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니 당장(나도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지만) 대단히 평생을 바칠 것같은 직업이나 분야, 목표같은 걸 찾지 못했더라도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30대 중반이지만 아직까지도) 다양하게 경험해보는 건 좋은 것 같고! 남들이야 어떻든 유난히 나에게는 관심이 가고 흥미가 가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조심스레 발전시켜볼 일이다.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어느 날 아침, 세상을 바꿀 위대한 사업 구상을 떠올리면서 잠을 깬다!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 남편이나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교수에게 뛰어가서 말한다. 상사 방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들 모두 뭐라고 말하는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지금쯤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 알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모른다."
(중략)
아타리의 공동 설립자인 놀런 부슈널이 한 말 중 언제나 공감하는 구절이 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샤워를 할 때면 모두가 뭔가 기발한 생각을 떠올린다. 하지만 욕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마크 랜돌프, <절대 성공하지 못할거야> 중 (4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