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배윤민정

참참. 2023. 10. 28. 16:37

 

아무 생각없이 방바닥에 누워 고개를 돌렸는데 함께 사는 연인의 책장에 꽂혀 있던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역시 별생각없이 이 책은 뭘까하고 꺼내어서 누운 채로 잠깐 살펴보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오늘 바로 다 읽어버리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저자가 이혼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 체험(단순히 겪은 것)을 경험(그것을 반추하여 나름대로 해석하고 소화시켜 받아들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거기까지 오는 동안 있었던 일들과 생각들과 마음들을 돌아보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이혼을 겪었기 때문인지, 이혼경험에 대한 이야기에 전보다 좀 더 눈길이 가는 것 같다. (아무 상관없지만 저자와 내 이혼한 년도가 같다는 것도 신기했다)

혼란스러운 마음들이 솔직하게 드러나있다. 스스로도 에필로그에서는 낯설다고 할만큼 그 당시의 마음에 충실하게 썼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바라보고 글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글로 옮기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솔직하게 썼더라도 실제로는 그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널을 뛰는 마음이었겠지하고 마음대로 짐작해보기도 한다. 이혼이 쉬워졌다지만 절차적으로 제도적으로 간소해지고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회적으로 전보다는 다소 흔한 일이 되었다고해서 그게 쉬운 일인 건 전혀 아니다. 그 선택을 하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그 과정을 겪어나가는 것이. 나 역시 결혼할 때만 해도 나만은 그런 진부한 부부, 진부한 뻔한 남편이 아닐 거라, 남들과 아주 다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었고 진짜 내 인생에는 이혼이 없을 줄 알았다.

공감가는 이야기도 많았다. 내가 결혼생활할 때 비슷한 상황, 비슷한 대화, 비슷한 마음들을 겪었던 것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책에 나오는 저자 남편분의 입장에서 비슷하게 했던 것도 있었고, 저자와 비슷한 걸 느낀 적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많은 부분들은 지나간 일이지만, 또 상당 부분 현재진행인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와는 다른 사람이지만, 여전히 그때와 일부 연속선상에 있는 사람이고, 또 어떤 계기나 상황을 통해 패턴처럼 그때의 마음, 생각, 행동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저자의 엄청나게 사적인 경험이지만, 그 안에서 소위 연인관계라고하는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더 넓게는 그냥 타인과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경험에 대해 많은 걸 말해주는 느낌이다. 일단 내가 겪어왔고 또 겪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내 이혼 전 모습이 겹쳐보여 그런 부분도 있지만)책을 읽다보면 일견 남편분이 불쌍해보이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그걸 알면서도 누군가는 그렇게 읽을 수도 있을만한 부분까지도 있는 그대로 쓰려고, 오히려 그런 부분은 더더욱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지 않고 쓰려고 노력한 것처럼 느꼈다. 근데 관계라는 게 누가 더 불쌍한가, 이 관계에서 누가 "손해"를 보는가를 논하게 되면 끝이 없는 싸움이다. 여태까지의 내 지난 연인관계들을 돌아봐도, 책 등으로 간접경험한 것들로 봐도 각자 자기가 상대방을 더 배려하고 있으며, 상대방은 이 관계를 위해 하는 게 없고 나만 참고 나만 손해를 보고있다고 진심으로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믿으며)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엄청 흔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문해봐도 시작도 끝도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싸움의 기술>을 읽은 덕분도 있겠지만, 요즘은 좋은 관계는 싸울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 내 관점에서 봐서 그런지 책에 나오는 과거의 두 분은 언제부턴가 싸움을 포기하고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저자의 전남편분쪽에서 매우 많이. 내가 그랬었다. 싸움을 회피하면 당장은 괜찮아보인다. 우리는 언제나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배우고, 좋은 관계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란 "우리는 싸워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관계일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근데 지금 생각하건대, "우리는 싸워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싸움이 작은 싸움의 단계에서 대화로 잘 풀리고 그 앙금이 남지 않았기에 최종적으로 그 경험에 "싸움"이라는 태그를 달지 않은, 싸움 카테고리의 경험에 넣지 않을 수 있었던 것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싸울 것 같아서 어떤 대화를 회피하고 내 의견을 말하기를, 서로간의 차이를 들여다보기를 하나둘씩 미루다보면 당장은 평화를 지킨 것같은 기분이 들지는 몰라도, 실은 점점 더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고 상대방이 무슨 말만해도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나는 이렇게 다 참았는데 왜 너는 그걸 말하냐는 억울함만 남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랬다고 느끼고 나중에 해석한 내 경험을 통해 이 (전)부부의 경험을 보게 된다.

특히 "끌려다닌다"고 느꼈다는 저자의 전남편분의 발언이 내가 이혼 전 결혼생활에서 느끼던 감각과 너무 비슷해서 약간 소름돋는다. 그 표현 자체가 "끌고 다닌" 상대방을 상정하고 있다. 나도 그때는 진짜 그렇게 느끼고 생각했다. 나를 희생자의 위치에 놓고 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이 아니다. 전와이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내가 상대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을 어려워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게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그래서 내가 버림받을 까봐. 곰곰이 돌아보면 연인관계뿐 아니라 다른 관계에서도 부탁을 잘 거절 못했을 거다. 제일 버림받기 싫은 사람의 부탁을 제일 거절못했을 뿐. 그리고 내가 뭘하고 싶은지 몰라서 상대의 제안을 따라간 것도 있다. 상대는 취향이 확실하고 나는 뭐 이래도 저래도 크게 상관없다면 상대방이 제안한 걸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근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고, 니가 하자는 대로만 모든 걸 다 해온 것 같고, 난 너한테 맞춰주느라 내 인생 없어진 것 같고, 그렇게 거절하지 "못한" 부탁이 쌓이고 쌓여 원망이 됐다. 내가 거절하지 "않은" 것이고 분명 내가 선택한 내 인생인데 "니가 하자고 해서 한 거잖아"라고 상대에게 내 삶의 선택과 책임을 모두 전가한 것이다. 이혼하기 전의 내 모습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전남편분의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다. 

지금 만나는 연인과도, 이 사람과는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첫 1년 여를 지나, 2년 반이 되는 최근 시점에 아찔하게 그 비슷한, 이를테면 초기증상이라고 할만한 일을 겪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분명히 1년 전에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 똑같은 말조차) 왠지 나를 비난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이 관계를 위해 나만 더 많이 노력하는 것같은 억울함이 느껴지는, 그걸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그런 상황이다. 우리는 몇번인가의 대화/싸움을 했고, 기존에 심리상담해주시던 선생님께 연락해서 각자 개인심리상담을 이어가기로 했고, 나는 명상과 요가를 시작했다.

내가 느낀, 예를 들어 "당신이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면 왠지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아"같은 느낌이 어느 면에서는 철저하게 나에게서 비롯된 내 느낌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나에겐 중요했다. 즉, 상대방을 보면서 내가 그렇게 느꼈다고해서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걸 분리하는 게 어려웠다. 이걸 분리하지 않으면 내 불안에 대해 "니가 집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내가 불안하다고 그 불안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게 된다. 실제로 상대방을 탓하는 말을 밖으로 꺼내느냐, 안 꺼내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당장은 꺼내지 않더라도 그게 상대방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억울함, 손해보고 있다는 마음이 이 관계에 쌓이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말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 상대방이 "그게 내 탓이야? 그럼 내가 집에 있는 내내 쉴새없이 얘기해야해? 나도 집에선 그냥 쉬고 싶어. 당신도 집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을 때 있잖아."라고 반박할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기니까. 근데 여기까지 왔을 때가 또 한번 회피하고 싶어지는 지점이다. 아마 그게 아무리 상식적이고 올바른 말이어도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아 그 말이 맞네. 내가 잘못 생각했네."라고 진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화(이미 말싸움이라고 생각되기 시작한)를 이어가거나 아니면 사실은 납득되지 않았으면서 "싸우기" 싫고 피곤하고 어차피 이런 식의 대화를 이어가도 결국 납득이 되지 않을 거라는 포기하는 마음 등등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게 된다.

아마 이 에피소드를 심리상담사한테 얘기한다면,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본인은 왜 불안하게 느껴질까요?", "예전에도 그런 불안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같은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내가 상담사는 아니니까 멋대로 추측하는 것뿐이지만) 즉, 심리상담사라는 사람은 당신이 그러한 감정을 느낀 것이 잘못이라고 당신을 탓하지도 않으면서, 그 감정을 느낀 상황을 제공한 상대방을 탓하지도 않으면서, 그 감정이 그러나 당신이 느낀 것이고 당신이 그 감정을 느낀 진짜 이유에 대해 단순히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았다라는 지금의 상황 말고 뭔가 다른 이유를 찾아보려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런 건 어떨까? "당신의 친한 친구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도 불안이 느껴지나요?", "연인 말고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당신을 불안하게 하는 다른 사람이 있었나요?" 그런 질문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쓰면서 했던 것처럼 자신이 겪은 일과 자신이 느낀 감정들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서사와 의미를 부여하고 무엇이 진짜 문제였을까를 고민해보고 성찰하지 않으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좋은 관계 역시 이루기 힘들다는 게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결론인 것 같다.

여담이지만 저자가 말한대로 페미니즘의 ㅍ 정도만, 그것도 겉으로만 동의하고 있어도 손쉽게 "그런 남자 없다"같은 극찬을 들을 수 있는 기울어진 사회에서 남자로 살면서 이래저래 고민하지 않고 편하게 살아온 부분이 많다. 나는 연인에 비해 내 (특히 성적인)욕망이나 욕구에 대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손쉽게 주장하고 덜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걸 최근에도 느꼈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감각과, 이런 부분들에 대해 잘못을 인지하고 반성하고 고쳐나가는 감각을 같이 가져가려면 내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이 나라는 사람이 잘못된 사람이다같은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아야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아직도 어렵다.

추신: 치열하게 고민했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최소한 몇몇 사람들)을 사랑하고 믿었기에 내보낼 수 있었던 글이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