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행복의 기원>, 서은국

참참. 2021. 6. 5. 20:47

 

도발적인 책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넘어 "'행복감'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2014년에 발행된 책으로, 2010년대 초반까지의 많은 연구결과들을 소개하며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행복을 바라보는 시도를 한다.

내용을 나름대로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대부분 본문에서 그대로 인용하거나 조금씩만 축약, 정리한 문장입니다.)

1. 행복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을 바꾸라(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식의 조언은 공허하다. 생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생각을 바꾼다고 해도 그건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 그게 전부가 절대 아니다.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2. 인간은 동물이며, 이성적 사고는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에 그게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주술사의 현란한 춤이 눈에 띈다고 해서 그게 비가 내리는 진짜 원인은 아닌 것과 비슷한 것. (우리는 이성적 판단으로, 이런 이유로 어떤 결정을 했다, 어떤 사람에게 끌린다는 등의 생각을 하지만, 실은 진짜 이유를 모를 때가 많다.)

3. 인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한다면 문명생활 기간은 고작 2시간이며, 364일 22시간동안 싸움과 사냥, 짝짓기에 전념하며 살아온 동물이다. 그 600만년 동안 생존에 성공한 유전자들이 우리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밀러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 또한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도구'일 뿐이다. 

4. 비옥하지만 낯선 땅, 매력적인 이성, 절벽에 붙어 있는 꿀이 가득한 벌집. 장기적 생존을 위해 이런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위험을 안고도 그런 자원들을 얻기 위해 의욕과 에너지를 내어 모험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얻었을 때 '희열,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 등의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도록 뇌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감정들은 인간에게 강력한 동기가 되어줬다. 아무리 강렬한 행복감이라도 금새 사그라드는 것은 초기화가 되어야 다시, 또 그것들을 찾아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뇌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살아남아 유전자를 남겼다는 것.)

5. 인간의 뇌는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나?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에 따르면 한마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했다고 한다. 

6.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 아픔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집단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었으며, 집단에서 고립되지 않은 사람들이 집단에서 고립된 사람들보다 더 많이 살아남아 후세에 유전자를 남겼다.

7. 오랜 야생의 삶에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했던 가장 절대적인 자원이 바로 '사람'이었다. 먹는 쾌감 덕분에 음식을 찾듯, 사람이라는 절대적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아주 좋아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했던 인간들이 살아남아 유전자를 우리에게 남길 수 있었다.

8. 연구에 따르면 내향적인 사람조차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더 행복감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은 똑같다.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있는 정상. 이 둘의 차이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느냐다. 외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가볍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어색함, 스트레스, 두려움 등으로 무겁다. 그래서 중턱쯤에서 되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산 정상에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산보다 바다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9. 사람은 음식만큼 중요한 생존 자원이기에 감정적 반응 역시 강력하다. 좋은 사람과 대화하고 놀고 손잡는 것만큼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것도 없지만, 역으로 사람만큼 스트레스와 불쾌감을 주는 자극도 없다. 즉, 사람은 가장 절대적인 행복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10.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대단한 스트레스다. 인간의 뇌는 철저히 사회적인 뇌라고 했다. 생존과 직결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뇌의 최우선적 임무 중 하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의가 자동으로 집중되고, 집중하는 만큼 피로와 불안도 쉽게 온다.

11. 과도한 타인 의식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사람과의 관계를 즐겁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을 저해하는 원인이 된다. 사람이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전제 조건은 그 만남들이 나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줄 때다.

12.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 우리의 무게추는 남들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을 때가 많고, 이 경우 장기적으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감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올 수 있다.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꿈,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이다. 그래야 사람의 가장 단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다.

13.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4. 그동안 우리는 베짱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도록 세뇌받았다. 두 가지 염려 때문에. 첫째, 쾌락주의자들의 즐거움은 저급하다. 둘째, 그런 삶의 말로는 한심할 것이다. 둘 다 근거없는 염려다. 수많은 최근 연구들에서 나오는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다. 행복한 사람들을 오랜 시간 추적한 연구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된다.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즉, 우리가 온갖 오명을 씌우는 쾌락주의자들의 모습이다.

15. 불행한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행복의 핵심인 고통과 쾌락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다.

16. 휴대전화를 이용해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즐거운지를 대학생, 직장인, 주부,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인이 하루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먹을 때와 대화할 때.

* 책에는 이 밖에도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여러 연구들과 문화의 차이가 구성원들의 행복 정도에 미치는 영향, 행복에 있어 유전의 영향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더 있다.

 

내가 그런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내겐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철저하게 과학적, 진화론적으로, 건조하게, 더 많이 생존하고 번식해서 유전자를 많이 남긴 쪽이 이런 특성을 갖춘 쪽이었다라는 기조로, 인간의 동물적인 면을 강조해서 쓴 연구자의 책과, 본인의 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소위 말하는 영혼의 영역, 절대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도 실험조차 시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논하는 영성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내가 최근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으로 삼고 있는 아니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와 <나로 살아가는 기쁨>에서 가장 인상깊은 내용은 "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에 맞춰 살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라고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야 워낙 흔하긴 하지만, 이렇게나 서로 다른 관점과 출발선상에도 불구하고 큰 맥락에서 비슷한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내 개인적인 경험을 해석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며 그만큼 큰 불행의 원천이라는 점.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게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사는 순간, 개인의 자유롭다는 감각 - '나' - 를 잃어버리는 순간, 행복과 멀어진다는 것. 내가 타인에게 그렇게 많이 신경을 쓰고 살아온 것이 내가 나약하거나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는 것. 우리 문화가 그런 면이 많고, 개인차는 당연히 크지만, 우린 원래 그런 동물인 측면이 강하게 있다는 것.

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해 먹는 쾌락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열렬히 추구하는 편은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이라는 쾌락에 대해서는 본능에 충실한 쾌락주의자인 측면이 있었다고 느꼈다. 또한 그게 잘못된 게 아니고 오히려 더더욱 그렇게 충실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게 본능적인 거라고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섹스라는 구체적인 행위는 본능과도 연결해서 많이 생각했지만 사람들과 대화하고 인정받고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것까지 본능과 연결시켜 생각하진 못했었다.

원래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거구나, 라는 정도의 감각을 갖게 됐달까. 자신을 긍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한가지, 책에서 동의하지 못한 부분은 "태양이 떠오르는 건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니까 감사편지를 쓸 필요는 없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저자가 어떤 의도로 쓴 부분인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혹시 감사하게 느껴져서 감사편지를 쓴다면 (태양은 그 감사편지를 받을 수도 없고 그 편지에 감동해서 더 따뜻하게 타오르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건 편지를 쓰는 당사자의 행복에는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 저자는 우리는 마치 태양이 우리를 위해 떠오르는 것마냥 느끼지만 사실 그냥 지구가 아무 이유나 목적없이 돌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했지만,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이렇게 적당하게 있어주는 것 자체도 어쩌면 운명적이고 감사한 일 아닐까.

내가 만나고 관계 맺음으로써 나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 역시 근본적으로 우연히,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고 나와 만날 이유가 딱히 없음에도(난 그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이 즐거워서(놀랍게도!) 만나고 있는 것뿐이지 않나. 가끔은 그게 다 기적적인 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