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 GRIT>을 읽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 아임웹의 새로운 핵심 가치에 대한 설명 중 하나가 그릿이었는데 아직 읽어본 적이 없어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보길 잘했다. "그릿"은 지속되는 열정과 끈기, 투지 정도로 설명되는데, 그릿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문득 <일하는 마음> 제현주 작가님이 어린 시절 두발 자전거를 혼자 배우셨던 일화가 생각났다.
아마도 일고여덟 살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렸을 때 내 몸집에 비해 너무 커서 발도 잘 닿지 않던 오빠의 자전거를 끌고 동네 공터에 나갔다. 왜 그날 그런 마음을 먹었을까. 나는 사뭇 비장한 마음으로 자전거 타기 연습을 시작했다. 오늘 기어코 두 발 자전거를 익혀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아마도 엄마 아니면 오빠가 해주었을 딱 한 마디 조언이 그날 연습의 유일한 길잡이였다. "왼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중략)
훤한 대낮에 시작한 연습은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셀 수 없이 넘어졌지만,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기를 반복하다 보니 해가 저물었고, 어느 순간 벼락같이 자전거를 타는 데 성공했다. (중략) 수없이 쓰러질 때 격려해준 사람이 없었듯이, 드디어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었다고 박수 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눈곱만큼도 아쉽지 않았다. 그날의 짜릿함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일하는 마음> 중 (138쪽)
발도 잘 닿지 않는 자전거는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에게도 종종 무서운 것인데, 그 자전거 하나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계속 다시 일어나서 시도하게 했던 그런 투지가 어디서 나왔을까. 그렇게 하루종일 시도한다고해도 자전거를 배우는 데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을텐데, 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오늘 완성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었던 걸까? 이 에피소드로만 보면 작가님은 상당히 어린 시절부터 그릿이 높은 분이셨던 것 같다.
잘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그저 잘하고 싶다. 누가 보상해주거나 칭찬해주는 게 아니라고 해도. 그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릿>에서는 그릿을 기르는 4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관심 - 열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는 데서 시작된다. (중략) 계속 일에 매력을 느끼고 아이 같은 호기심을 내비치는 그들은 '나는 내 일을 사랑해!'라고 온몸으로 외친다.
2. 연습
3. 목적 -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열정을 무르익게 한다. 목적이 없는 관심을 평생 유지하기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동시에 타인의 안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내 일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중요합니다."
4. 희망 - 우리는 다양한 시점에서 크게 작게 허물어진다. 그대로 주저앉는다면 투지를 잃지만, 일어난다면 투지는 더 커진다.
관심, 연습, 목적, 희망의 네 가지 심리적 자산은 상품처럼 가지고 있거나 갖고 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다. 당신은 관심을 느끼고 발전시키고 심화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훈련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 목적의식과 의미를 찾고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희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릿 GRIT> 중 (131쪽)
넷플릭스의 창업 스토리를 다룬 <절대 성공하지 못할거야 That Will Never Work>에서 저자 마크 랜돌프는 이런 얘기들을 한다.
사실 나는 골칫거리를 좋아한다. 매일 내 앞에 닥친 문제, 곰곰이 생각해야 할 거리를 좋아한다. 해결해야 할 거리를 좋아한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거야> 중 (49쪽)
우리는 해야할 일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면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퍼즐을 풀면서 진정한 기쁨을 느꼈다. 내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 많았다. (중략) 그래서 미래를 생각하면서 불안해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중략)
모든 과제를 한줄로 늘어놓고, 모든 문제를 샅샅이 살핀 다음,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쓰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같은 책 122쪽)
나는 코네티컷의 전원지대에서 불우 청소년을 지도하려고 준비하면서 '도시에서 생존하기'라는 이상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중략)
나는 산을 오르고, 강에서 뗏목을 타고, 철인 3종 경기를 했다. 하지만 구걸보다 힘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해냈다.우리 어머니 또래의 다정해 보이는 여성이 모퉁이를 돌아 내게로 걸어왔다.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 가고 있었지만, 여유 있어 보였다. 나는 용기를 내서 그 여성과 눈을 맞추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잔돈이 있으면 좀 나눠주실래요?"라고 물었다.
그 여성은 "없어요"라고 대답했고, 내 옆을 지나갈 때 돌처럼 굳은 표정이었다.
어쨌든 나는 돈을 달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후 4시간 동안 1달러 75센트를 모아 푸드코트에서 핫도그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같은 책 89쪽)
이걸 읽으면서 그의 구걸 훈련(?)이 (원래도 작지 않았을) 그의 그릿을 더 키워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았었는데, 어제(26년 1월 3일)는 영화 <국보>를 보고 왔다. 가부키 세계를 다룬 일본영화다. 주인공 키쿠오는 끝내 가부키 배우로 무대 위에 서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릿 책에서 말하는 그릿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글의 위에서 했던 똑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누가 보상해주거나 칭찬해주는 것도 아닌데도 계속 잘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그릿의 4가지에 대입해보면, 키쿠오에게 가부키는 어릴 때부터 관심 가진 분야였고, 그걸 알아본 스승이 거두어주면서 그 관심에 끝없는 연습과 훈련을 더하게 됐다. 그리고 평생동안 이 분야에 엄청난 투지와 끈기를 발휘한다. 목적 부분은 구체적,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다고 느꼈지만 수많은 관객 앞에서 하는 공연이니만큼 그 일이 타인(그리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고는 절대 할 수 없다. 그리고 어릴 때 온 가족을 잃은 후 그의 세계에 주요하게 관계맺은 인물들은 전부 가부키 세계의 일원들이다. 같이 본 아내도 "당신의 가부키를 보면 다 잊고 이리로 와"하는 것 같고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는 대사를 언급하며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던 거 아닐까 얘기했다.
덧붙여 영화에서 키쿠오는 스승, 동료들로부터 "재능"이 있는 타고난 배우로 취급받는데 스승의 집에 온 뒤 10년이 지나도록 단 하루도 훈련을 빼먹지 않는 고행에 가까운 성실함이 그의 실력과 성취의 원천이라고 생각한 나와 아내는 영화가 끝나고 어이가 없었다고 얘기했다. 물론 비슷하게 훈련한다해서 누구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그만큼이나 훈련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건 비교하기도 힘들다. 재능의 역할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걸 꽃피우기 위해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노력의 차이야말로 너무도 과소평가되어있다는 <그릿>의 핵심 문제의식이 여기서도 잘 드러났다.
<그릿>에는 꼭 어린 시절부터 하나의 길을 정해 그 길 하나만을 위해 노력해온 키쿠오같은 사람들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어린 시절에 자신의 평생을 바칠 분야나 직업을 만나지 못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사가 파스타를 만드는 대신에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가지 않은 음악가의 길에 대한 미련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음악과 요리, 두 가지 모두 창의적인 일이죠.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서 행복하지만 음악가가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줄리아 차일드의 경우 천상의 맛이었던 솔 뫼니에르 한 점이 사실상 계시와도 같았다. 하지만 정통 프랑스 요리법이 훌륭하다는 깨달음이었을 뿐 자신이 요리사와 요리책 저자가 되고 나아가 가정에서 만들 수 있는 코코뱅 요리법을 미국인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되리라는 직감은 아니었다. 실제로 줄리아 차일드는 자서전에서 이 잊지 못할 식사 이후로도 요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경험을 많이 했다고 밝힌다.
그중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파리의 수많은 작은 식당에서 했던 식사, 파리 노천시장의 친절한 생선 가게와 정육점 그리고 채소 가게 상인들과의 대화, 그들과 나눴던 우정. 프랑스어 과외 선생이 빌려준 요리책과 언제나 든든한 지원자인 남편 폴에게 선물 받은 백과사전만 한 프랑스 요리책,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만큼 큰 노력을 요구했던 르 코르동 블루의 뷔냐르 선생의 수업, 미국인을 위한 요리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두 파리 여성과의 만남이 있었다.
어릴 때는 소설가를 꿈꿨고 본인의 표현으로 화덕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던 차일드가 만약 완벽하게 요리된 가자미를 맛본 운명 같은 순간을 흘려보내고 바로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차일드가 처음 맛본 솔 뫼니에르는 프랑스 요리와 사랑에 빠지는 데 있어서 첫 키스와도 같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진짜로 하면 할수록 요리가 더 좋아져." 그녀는 후에 시누이에게 그렇게 말했다. "(고양이와 남편을 제외하고) 진정한 열정을 발견하는 데 40년이나 걸렸지 뭐예요."
그러므로 지금 자기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럽겠지만 그들은 우리와 출발점부터 달랐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무엇을 하고 살 지 정확히 알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졸업식 축사 연사들은 자기 일이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천직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들에게도 그 이전에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릿 GRIT> 중 (143쪽)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 없이 열정이 계시처럼 단번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이 '짜증'나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초반의 관심은 사그라지기 쉽고 모호하기 때문에 몇 년 동안 힘껏 기르며 다듬을 필요가 있다.
(같은 책 149쪽)
<그릿>은 연구결과도 다양하게 보여주지만 저자가 연구 과정에서 했던 생생한 인물 인터뷰와 사례들이 많이 들어가있어서 좋다.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나 삶들을 많이 보여주면서 논지를 전개해나가니까 마지막까지 계속 흥미로웠고 고개를 끄덕이며 볼 수 있었다.
불과 3~4년 전 30대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별로 끈기가 없고 잘 포기하는 편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꾸준히 아주 긴 시간동안 해낸 것이 없다고 말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심리상담을 받으며 깨달았던 건 더 높은 무엇을 추구하기에는(그럼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추구해온 것들도 있었고, 더 나쁜 상황에서도 해내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내 삶의 기반이 너무 단단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정서적인 기반. 지금 <그릿>을 읽으며 나도 그릿을 발휘해서 뭔가 해내보면 멋지겠다하고 순수하게 생각하고 또 그러지 못할 것도 없다고 자신있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지금은 아내와 아내가 보내주는 지지라는 삶의 단단한 기반이 있는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서른다섯의 나는 서른 살 때와는 다르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이고 심지어 그 기록을 단축시키기 위해 혼자 훈련계획을 세워 훈련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이다. (나에게도 누가 직업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달리냐고 하면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런 마음은 어디서 올까?) 요가를 평일 새벽시간에 수련한 지도 3년이 넘었다. (물론 위기는 있었지만) 어쩌다보니 같은 회사도 3년 반을 다니고 있다. 게다가 점점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릿>에 따르면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의 그릿 점수가 더 높은 경향이 있었다. 내 그릿도 20대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높은 것 같다.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성장하고 싶다. 성장했다고 느끼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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