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북한산 백운대에 처음 오르다. - 영어와 산

참참. 2013. 5. 10. 10:45


영어와 산


지난 일요일, 23년 짧은 삶에 멋진 등산 경험 하나를 보탰다. 존경하는 안건모 선생님과 필리핀 사람 네 명과 함께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가게 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속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주자며 만난 필리핀에 사는 누나가 하나 있다. 누나의 이름은 로리Lorie. 의욕은 넘쳤지만 온라인으로 짤막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언어를 가르쳐주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인연은 흐지부지 끝나는 듯 했다.

인연의 끈이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은 그 이름도 유명한 얼굴책의 알 수도 있는 친구 덕분이다. 얼굴책에 아는 사람들이 마구 뜨는 건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하여튼, 그렇게 우리는 반갑게 다시 만났다. 내 얼굴책에 영어로 된 글이 뜨니 괜히 세계적인 사람이 된 듯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로리가 곧 한국에 온다는 것이다. 상당히 긴 일정이었다. 평일에는 하는 일이 있어 어렵다고 하니, 일요일에 북한산에 간단다. 필리핀 친구 두 명과 함께.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어디 한번 세계적으로 놀아볼까? 흔쾌히 o, k, 보내주었다.

로리의 친구 알빈Arvin이 보내준 일정을 받고, 이 산행이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는 느낌이 왔다. 나도 가본 적도 없는 북한산엘 한국어도 안 되는 필리핀인들을 데리고 가야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소한 문제 하나는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적어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 둘은 세계적이라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는 위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사실 세계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거다. 안타깝게도 내 영어는 몽당연필마냥 짧다. 그들도 자막 없이 한국 드라마 못 보는 평범한 사람들임은 두말하면 입 아픈 소리.

고질병인 일이 닥치기도 전에 걱정하기 병이 도져올 때쯤 내게도 구세주가 나타나셨으니, 바로 시내버스를 거꾸로도 몰 수 있는 안건모 선생님이셨다. 손전화도 없으신 선생님께 연락이 온 것도 얼굴책을 통해서였다. ‘이번 주 일요일 북한산 간다며? 안내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 ㅋㅋ 이렇게 산뜻하게 구원의 복된 음성이 왔다. 역시 구조요청은 널리 전하고 볼 일이다.

산행 이틀 전, 수원의 한 대학에 대학원생으로 유학을 와있는 로리의 사촌언니 디바인Divine이 함께하기로 해 여섯 명이 되었다. 로리에게 한국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도 받았다. 내일 약속 잊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그런데 전날 나는 맥주를 좀 마셨으며 열두 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필리핀 일행도, 안건모 선생님도 손전화가 없으니 이제 와서 약속을 취소할 방법은 없었다. 조용히 알람을 다섯 시로 바꾸고 잤다.

눈꺼풀이 감겨오는 상쾌한 아침. 급하게 씻고 옷을 입으려고 보니 아뿔싸, 등산할 때 입을 만한 옷은 감겨오던 눈꺼풀을 번쩍 뜨고 찾아봐도 없다. 준비한답시고 꺼내놓은 건 등산화 하나뿐. 결국 그 가운데 가장 편한 청바지를 골라 입고 봄에 입는 야상을 하나 걸치고 사탕 한 봉지 달랑 든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왔다.

급하게 지하철을 타고 만나기로 한 합정역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시간을 막 지난 6 31. 분명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할 한 무리의 필리핀 사람들은 보이지가 않았다. 40분이 다 되어가니 초조한 마음에 똑똑한 손전화로 얼굴책에 들어가 보니, 알빈이 8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해놓았다. 바로 다시 들어와야 하는데, 환승도 안 되는데, 카드를 찍고 나갔다. 열심히 뛰어간 8번 출구에서도 그들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찾을 방법은 없고, 불광역에서 기다리실 안건모 선생님 생각에 다시 냅다 뛰어 6호선 타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네 분의 조금 낯선 외모의 사람들이 조금 낯선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

그들에게 사정을 다 설명할 길은 없고, 역시 약속시간보다 늦게 만난 안건모 선생님께는 변명할 길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안건모 선생님 눈에 비친 늦게 온 우리들은 이랬다. 청바지에 야상을 걸친 녀석 하나, 역시 청바지를 입고 나들이 복장에 등에 메는 배낭이 아니라 손가방까지 든 숙녀 한분, 나들이 복장에 밑창 얇은 신발 신은 숙녀 한분, 샌들을 신고 등에는 무시무시한 여행 짐을 짊어진 숙녀 한분 등. 먼저 손가방은 비어있던 내 배낭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나머지 문제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선생님께서는 고생 좀 해봐라라는 덕담을 해주셨다.

이런 재미있는 일을 잔뜩 겪으며 올라간 북한산 백운대. 산에서도 이런저런 즐거운 일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눈이 녹지 않은 곳에서는 필리핀에는 눈이 없다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힘들어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보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필리핀 말로 유쾌하게 수다를 떨어 다른 등산객들도 미소도 짓고 응원도 해주고 가셨다. 정상 거의 다 왔을 때는 알빈이 가방에서 필리핀 국기를 꺼내더니 등산지팡이에 묶어 깃발을 만들었다. 그걸 서로 흔들며 사진을 찍고, 정상에서는 꽂혀있던 태극기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내려오다가 점심을 먹을 때는 안건모 선생님께서 한가득 싸오신 한식 상차림과 술은 많이 먹지 않고 과자와 김밥만 먹는 사람들 덕에 그것들은 다 내 차지였다. 냠냠. 그쪽에서는 원래 술을 안 좋아하나 했으나, 들어보니 술 먹으러 산에 가는 것 같은 분위기는 필리핀에도 비슷하게 있다는 것 같았다.

밑에 내려와서는 떡볶이가 먹어보고 싶다고 해 분식집에 갔는데, 매운 걸 정말 못 먹더라. 결국 또 내가 다 먹었다. 나중엔 너무 배가 불러서 아깝지만 버려야만 했다. 필리핀 일행은 산행에 큰 도움을 주고 떡볶이까지 사주신 안건모 선생님께 몹시 고마워했고 나한테도 정말 고맙다며 필리핀에 꼭 한번 놀러오란다. 벌써 얼굴책에는 그날 북한산에서 찍은 사진들이 여럿 올라왔다. 나도 꽤나 찍혔고, ‘좋아요도 눌러줬다.

쓰는 말도 다르고 사는 곳도, 생김새도, 하는 일도 다 달랐지만 우린 북한산에서 함께 행복했다. 끊임없이 웃고, 작은 것에도 무척이나 고마워하고 감동하던 그들. 전역하고 일주일 남짓 기차를 타고 떠났던 여행에서 늘 여행할 때처럼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건 여행할 때처럼 일상 속의 작고 사소한 것도 새롭게 보고, 느끼고 그런 것들에 고마워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잊고 있던 그 마음을 북한산을 오르며 돌이켜보게 됐다.로리와 다시 연락이 닿게 되고 한국여행을 오게 된 것, 안건모 선생님과 알고 지내게 되고 이번 산행의 소식을 듣고 와주신 것, 북한산에 함께 가게 된 것. 어느 것 하나 쉬이 이루어질 수 없는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참 고맙고 소중하다. 그리고 그동안과는 달리, 이젠 영어를 막 배우고 싶다.


* 이 글은 2013년 3월 23일 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