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나에게 게임이란

참참. 2022. 6. 21. 21:56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 전에도 소소하게 하긴 했지만, 어릴 때의 기억이 워낙 별로 없는 편이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온라인게임에 빠지기 전에 피파98을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는 당시 매월 29,700원을 내야만 할 수 있었던 바람의나라도 잠깐 했었다. 6학년 즈음부터는 초고속인터넷이 대중화되고 무료, 정확히는 부분유료 온라인게임이 쏟아져나오던 시기가 겹치면서 다양한 게임을 참 많이도 했다.

어느 여름방학에는 얼마나 집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간 채로 게임만 했는지, 어느 날 밖에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가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눈이 떠질 때까지 한참 눈물만 줄줄 흘리며 서있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도 내심 충격이었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덜하게 되진 않았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매일같이 게임을 할 수 없게 됐지만, 그때도 한달에 한번 2박3일 집에 오면 다시 학교 갈 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만 했다. 화장실 가고 밥 먹는 시간마저 아까웠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게임을 좋아하는지 나도 궁금해서 나름대로 고민해본 적도 많았다. 처음에는 게임에서 얻는 즐거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첫번째 큰 이유는 성취감이었다. 게임은 정직하다. 특히 RPG 장르는 더 그렇다. 사냥을 하고 퀘스트를 깨면 레벨이 오른다. 레벨이 오르면 강해진다. 내 노력이 언제나 보답 받는다. 그것도 지금 즉시! 너무나 확실하고 눈에 보이는 숫자로 돌아온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인생에서 이것만 해도 엄청난 재미라는 사실은 지금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두번째로 내가 게임하는 모습을 관찰하다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내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것에 매우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게임이 아닌 채팅만 몇시간씩 하기도 했으며 열심히 하는 게임에서는 자주 길드나 클랜이라고 부르는 게임 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곤 했다. 학교 친구와 같이 게임을 시작하더라도 금방 게임 내에서 새로 사귄 사람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이메일, 손편지를 주고받고 길고 긴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랬다. 나는 외로웠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인터넷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개 학교에서 만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외로워서 그랬다는 것은 대학생활을 돌아보면서 알게 됐다. 대학생일 때도 여전히 게임을 좋아했지만 사람들과 술 마시고, 연애도 하고 그런 것들이 게임보다 더 재밌게 느껴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게임을 많이 하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번갈아 왔던 것 같다. 이전 결혼생활을 하면서 또 게임을 많이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그 본인도 게임에 빠져봤기에 오히려 게임하는 걸 싫어하던 당시 배우자에게 게임은 내 평생을 함께 해온 것이며 나는 게임을 하면서 세상을 배웠다고 진심을 다해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 많은 사람들과 그들과 나눈 그 많은 대화들과 감정들을 단순히 게임을 했다라는 행위로 뭉뚱그려서 말하는 게 가끔 위화감이 들 정도다.

그렇게 게임을 해대면서도 나는 게임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임하겠다고 학교를 결석한 것도 아니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늦게 자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건 실은 내가 아주 성실하고 규칙적인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오늘만 할 게 아니고 계속 할 것이기 때문에 밤을 새는 것보다는 적당한 시간에 자는 것이 더 나았다. 자고 일어나서 하는 게 더 좋은 컨디션으로 할 수 있다.

게임을 안 하는 시기에는 또 별로 많이 안 한다는 것도 내가 게임중독은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실은 그때는 중독의 대상을 다른 데로 옮겨놨던 것일 뿐이었다. 중독과 중독이 아닌 걸 어떻게 구분해야할까? 이제야 그걸 조금 알 것 같다.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다른 모든 것을, 특히 내가 소화해야하는 내 감정들과 내 삶을 미뤄두고 있다면 바로 그게 중독이다. 그걸 하는 시간과 그걸 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일상을 나누고 있다면 그게 중독이다. 나는 그렇게 사는게 어떤 느낌인지 아주 잘 안다.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고 있는 중에는 그걸 깨달을 수 없었다. 물 속에 살아보지 않았으니 공기 중에서 사는 일이 당연하다고 느끼듯이, 그것 외에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늘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었다. 엄청나게 몰두할 무엇이 필요했다. 다른 문제들을 사소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을 만큼. 내 공허를 바라보고 자기혐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수 있을 만큼 나를 몰아쳐야 했다. 많은 시간동안 사랑과 인정을 얻어내려고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다시 게임을 했다. 도망쳤다. 나 자신으로부터, 내 삶과 내 감정들로부터. 게임으로 도망쳤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기대기도 했고, 책으로도 도망쳤고, 다시 소속감으로, 어떤 신념이나 가치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노력으로, 연애로, 시골로, 심지어 공부로도 도망쳤다. 그 중에서도 게임은 이제 내게 그렇게 강렬하진 않지만 여전히 언제나 가장 쉽고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곳이다. 돈도 안 들고 누군가의 도움도 거의 필요 없다. 게임에 어떻게 빠지면 되는지 너무 잘 안다.

잠깐 도망 좀 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도망도 살려고 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도망만 칠 수는 없다. 살려고 도망치는 것인데 삶으로부터 도망쳐버려서야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 익숙한 중독적 삶에서 이제 살짝 벗어났는데 평생 살아온 버릇이 쉽게 없어질 리 없다. 살다보면 도망치고 싶은 일이야 늘 널려있다. 도망은 가더라도 도망가면서 이번에는 내가 무엇을 겁내고 있는지 찬찬히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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