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권혁범 - 결국, 남자를 위해서도!

참참. 2013. 5. 9. 16:14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저자
권혁범 지음
출판사
또하나의문화 | 2006-01-2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남자에는 네 부류가 있다. 노골적인 마초, 생각은 성차별적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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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도서관이라는 동아리에서 조금씩 활동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 주제는 여성주의. 함께 읽고 세미나를 하기로 한 책이 이 책이었다.

 

2006년에 나온 책이고, 책에 실린 칼럼들은 2000년, 2002년 등 10년도 더 지난 글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났고, 사회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을 텐데, 그런 걸 별로 못 느꼈다. 가끔 2002년 월드컵이라든가, 그 시기에 일어났던 특정 사건들이 옛날 일이라는 점만 빼고는 언급되는 문제들이 여전히 사회에 그대로 있기에 옛날 책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회가 빨리 변한다는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어찌 이리도 변한 것이 없을까? 왜 여전히 가사 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 기본이고 남자는 '도와주는' 것일까. 그것도 밖에서 똑같이 힘들게 돈을 버는데!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바로 위에 쓴 것이나 그 밖에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많은 가부장적인 감수성들을 나 역시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반성해야 했다. 별 생각없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들 중에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많은지, 놀라울 지경이다. 이런 세상을 모르고 살았구나, 여태.

글 가운데 여자, 남자의 사회적 지위를 서로 바꾸어놓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가상해서 쓴 글이 있었다. '이갈리아의 아들들'이라고.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책에서 가져온 제목이란다. 우리 사회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부터 얼마나 남성중심적인 사고가 반영되어 있는지 확 와닿았다. <이갈리아의 딸들>이 그런 책이라고 하던데, 무척 읽어보고 싶다. 지금도 벌써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을 빌려놓았고, <새 여성학 강의>라는 책으로 학교에서 여성주의 세미나 모임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기에 그 책도 사보려고 한다.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넘쳐나고 있다.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남성성이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 행복, 감격의 순간들을 박탈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는지’(17쪽) 곰곰이 생각해보면, 있는 것 같다. 여자애들이 하는 놀이도 재밌는데, 그런 부분을 즐겨보기가 왠지 쑥스러웠던 경험. 남자 둘이서 영화를 보려니까 정말 민망했던 경험. 여성주의가 기본적으로는 여성을 위한 것이지만 책 제목에서도 ‘남자를 살리다’라고 쓰고 있듯, 실은 남자들도 더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실, 가사노동과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 남자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기쁨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을 여자들이 다 담당하는 것은 여자들에게 굉장한 부담과 폭력인데, 반면 그 폭력을 이 사회와 남자들이 행사함으로써 그것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매우 큰 기쁨, 아이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하는 그 찬란한 기쁨에 대한 경험을 스스로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남자에게도 역시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러니 여성주의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나!

지금까지 나름대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 자본주의와 노동의 문제에 대해 책을 읽고, 강연도 들으며 고민하고 세미나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글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멀었다. 그동안 읽고 싶어하면서 여태까지 읽지 못한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라는 책도 떠오르고, 예전에 읽었던 '마틴 루터 킹'에 관련한 만화책도 떠오르고. 학벌, 계급, 장애나 인종, 성별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들에 계속 민감한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 2013년 5월 3일에 쓴 글입니다.

* http://blog.naver.com/kimjh620/2018693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