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여자, 노동을 말하다>, 박수정 - 책을 읽고.

참참. 2013. 5. 9. 16:22




여자 노동을 말하다

저자
박수정 지음
출판사
이학사 | 2013-02-0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리 시대 여성 노동자 8인을 통해 바라보는 노동 그리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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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선생님이 블로그에 소개를 해주셔서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두껍지도, 무겁지도 않은 책이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님에도 금세 다 읽었다. 여덟 명의 노동자들이 최근 몇 년동안 살아온 이야기였다. 대체로 평범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특별한 이들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은 일들이 무척이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책에 실린 순서로 앞의 세 분은 노동조합이나 투쟁과는 관련이 없는 분들이었다. 뒤에 다섯 분은 노동조합을 만나 삶이 바뀐 이야기를 주로 해주셨다. 그렇다고 구분을 지어서 대단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일들을 하지만 대체로 비슷하게 열악한 노동과 삶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엄청 심각하게 불행한 삶을 고발하거나, 눈물을 강요하고 동정을 호소하는 그런 글들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담담함에서, 그리고 그 일상적인 말투에서 삶의 고단함과 부조리한 풍경들이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일상이라는 곳에 숨어있는 온갖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았다. 사람이 사람이기 어려운, 그러나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아무렇지 않게 계속되는 것도 보았다. 그들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고, 고모나 혹은 이모이며, 누나이거나 여동생, 또는 사랑하는 여인이다. 우린 무엇을 해야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그 삶의 모습들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그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나의 삶에, 또 다른 흔들림으로 남는 것 역시 다행이라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아르바이트생 하연이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2005년에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났던 이야기와, 만 스물네 살이 되어 미용실에서 힘겨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무래도 책에 나오는 사례들 가운데 혼자 나와 같은 20대여서인지, 내게는 가장 가까운 현실로 느껴졌다. 지금 내가 조합원으로 있는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에서도 미용실 스탭들의 불법적이고 비현실적인 노동조건과,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임금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알면 알수록 끔찍하다. 이 글의 주인공도 혹시 청년유니온의 활동소식을 들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최소한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박수정 작가의 글쓰기는, 김규항 선생님이 그렇게 소개하기도 했지만, 참 정직하다. 화려하지도 않고, 뜨겁지 않으면서, 따뜻하다. 사회고발적이지만 고발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 그냥 삶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평소 들어보기 어려운 낱말들이라 사전을 찾아보아야 했지만, 수수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순우리말도 많이 쓰고 있다. 그 예쁜 말들이 글 전체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또 맥락에 맞게 녹아들어가 있다. 요즘 기록노동자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어쩌면, 그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좋으리라. 그런 눈으로 보면 박수정 작가님과 이 책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본보기다.


* 2013년 4월 29일에 쓴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kimjh620/20186708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