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1500원 짜리

참참. 2021. 12. 10. 06:44

 

1월에 제주도에 갈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 새벽부터 '비자림'을 검색했다. 좋다는 얘긴 많이 들었는데 가본 적은 없고, 겨울에는 어떤 모습일까 싶어서. 근데 첫번째 누른 블로그 후기에서 이런 글을 만났다. 보자마자 충격 받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양한 감상이나 생각들이 올라왔다.

얼마나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비교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제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값이 싸면 가치가 없고, 그저 그런 것이어도 비싼 가격을 매겨놓으면 좋게 느껴질까. 밤하늘의 달과 별을 구경하는 것은 0원인데, 그들에게 달과 별 구경이란 얼마나 "뭐 없는" 걸까.

이 후기를 쓰신 분이 만약 비자림까지 가기 전 이전 방문지에서 이 아저씨들의 대화를 들었다면, 만약 "야 우리 다음에 가기로 했던 비자림 거기는 1500원짜리던데, 10000원 짜리도 별 거 없드만 1500원짜리는 뭐하러 가냐? 그냥 가지 말자"라며 일정을 변경하는 어떤 사람들을 보기라도 했다면 비자림에 가는 일정을 취소했을까? 글의 뉘앙스로는 그랬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괜히 왔다 싶지만 그래도 보고 가자, 라고 쓰셨으니.

아래와 같은 <행복의 기원>(서은국) 의 구절도 떠올랐다.

 

근데 이 경우가 꼭 한국인이라서, 한국의 문화 때문에 그렇다기보다는, 말의 힘이란 게 그렇게 세다고 생각한다.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별 생각도 없이 내뱉은 근거라고는 없는 말조차도 그것이 말로 발화되는 순간 타인에게 이렇게나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말을 들은 시점에서, 후기 작성자도 그 '아저씨들'도 둘 다 아직 비자림을 경험하지도 않은 상황인데 말이다. 뭐라 한마디로 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든다.

입장료만 보고 들어가보지도 않은 숲과, 그 숲에서 할 경험에 대해 이정도로 폄하하고(딴에는 잔뜩 기대하다가 실망하는 것보단 낫지 않으냐는 논리에서 나온 말일까 하는 상상도 문득 든다) 그 가치가 입장료로 책정된 돈만큼의 가치일 거라고 판단하고 있는 걸 보고있자니, 어떤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연봉이나 재산 정도로 판단하는 게 놀라운 일도 아니구나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심지어 익숙한 논리로 느껴졌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나 역시 종종 소요되는 시간이나 경험 등을 돈으로 환산해서 계산하고 비교해보는 데 꽤 익숙하다는 걸 종종 느낄 때가 있다. 한다면 최대한 좋은 쪽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그동안 택시비가 비싼 줄 알았는데 택시를 탐으로써 만들어낸 시간과 남긴 체력을 생각하니 택시비가 싸다, 겨우 그 돈으로 몹시 귀중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에 했었다.)

입장료를 100만원쯤 받는다면 어떨까, 혹은 만약 입구에 입장료가 아니라 비자림의 '땅값'을 적어놓는다면 뭐라고 반응할까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봤다. 비자림 입장료보다 훨씬 비쌌을 게 분명한 비행기값과 숙박비 등은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고 계시는 걸까.

블로그에 글을 남기신 분은 도입부에 저렇게 쓰셨지만 마무리는 비자림 좋았다로 끝났는데, 과연 그 '아저씨들'에게 비자림은 어떤 경험으로 남았을까. 1500원 치곤 괜찮네라고 남았을까 역시 1500원짜리는 애초에 기대도 안했다, 로 끝났을까. 최소한 수십만원을 썼을 제주도 여행 전체에 대해 뭐라고 기억하고 평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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