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신입 개발자

참참. 2021. 11. 16. 07:34

 

지난주에 회사에 신입 개발자분이 한 분 들어왔다. 나이는 몇 살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비슷한 또래일 것 같다. 항공, 여행쪽에서 꽤 오래 일하셨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잘 이해를 못했지만, 작년 코로나 이후로 회사가 힘들어져서 마지막에는 영업부서까지 갔다가 결국 그만두셨다고 했다. 그 뒤에 학원에서 6개월 코딩을 배워 우리 회사에 개발자로서는 첫 직장으로 입사했다. 개발자로서는 첫 직장이지만 여행관련업계 경력이 있으므로 이 사업 영역에 대한 이해가 높고 기본적으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서 뽑으신 것 같다. 그건 분명 높이 평가할만한 데가 있는 경험이다.(요즘 경력 개발자뽑기가 워낙 힘든 탓도 있지만, 우리 팀장님은 기술적인 건 들어와서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어느새 입사한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6개월이나 됐는데(도 불구하고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 라는 생각이 꽤 강하게 들었다. 팀장님도 그 부분에 대해 아쉬워하는 눈치다. 좀 더 자극받길 바라고 해주시는 말씀들도 있다. 그런 말씀들도 도움이 되고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번 신입개발자분의 입사가 꽤 큰 자극이 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하늘같은 고수들(개발경력 20년, 10년)과 있으니 내가 제일 못하는 건 당연하고 뭐든 항상 물어보는 입장에만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건 입사 6개월 선배이고, 개발자로 경력을 시작한 것도 1년 6개월 이상 먼저이니 우리 회사 시스템에 대해서든, 전반적인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든 나도 때로는 뭔가를 알려주어야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함께 공부하고 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느낌이고, 서로 시작점이 다르고 배운 것이 다르므로 서로가 잘하는 걸 가르쳐줄 수 있는 입장이라서 좋다. 한편으로는 최소한 그분보다 뒤쳐져서는(시험성적같은 게 나오는 게 아니므로 딱히 그런 걸 측정할 지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느낌적으로) 안되겠다는 느낌도 있다. 그게 괜한 경쟁심이 아니라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자극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할 때 배우는 게 굉장히 많다는 걸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그동안 대충 알고(혹은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들을 다시 점검하고 다지게 된다.

이전 직장에서는 입사한지 일주일 뒤부터는 쉴새없이 일이 몰아쳐서 딱히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때도 막연히 퇴근하고 집에 가면 더 공부해야지, 아직 모르는 게 많으니까 공부해야하는데, 그런 생각은 계속 하긴 했지만 일단 그때는 그럴 에너지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없는 상태인데 회사에서 그 에너지를 최대한 사용했다.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할 만큼 일이 있었고 그래도 퇴근은 제때 할 수 있어서 딱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그정도로 일이 많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그만큼 그 일들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개발과 아무 상관이 없는 업무도 아주 많았다. 그래도 그 회사에서 개발자는 단 둘뿐이었고 내가 해야만 처리가 되고 굴러갈 수 있는 일들이 그만큼 계속 주어졌고, 누가 주지 않아도 내눈에도 점점 더 보였다. 따로 공부는 별로 못했지만 그것들을 알아차리고 처리하는 과정 자체가 많은 공부가 됐다.

지금 회사에서는 6개월동안 그 정도까지 나에게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전에 비하면 정말 가끔씩 할 일이 생기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늘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어제 팀장님께서 나와 신입분에게 "일을 안 준다"는 말을 하며 퇴사한 개발자가 있었다는 얘길 해주셨다. 근데 자기는 일을 안 주지 않았다고. 속으로 뜨끔했다. 여기서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한다. 팀장님이 시켜놓고 체크하지 않는 것은 그 일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본인 일이 너무 바빠서 체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걸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걸 하지 않는 것은 회사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손해다.

일이 주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일을 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사람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정말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이라면 바쁘더라도 할 수 있지만, 중요한 일일수록 "일을 주는 것도 일"이다. 그 일이 잘못되지 않게, 사고치지 않고 해낼 수 있게 그 업무를 내게 인수인계하기 위해서는 설명도 많이 해줘야하고 내가 한 뒤에 그걸 다시 점검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일을 가르쳐서 맡긴다는 것은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찮고 힘들고 신경쓰이고 까다로운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이전 직장보다 더 복잡한 시스템이고 이걸 수정했을 때 터질 수 있는 사고의 스케일도 다르기 때문에, 이전 직장처럼 간단하게 나에게 시스템을 다 열어주거나 마구(?) 수정하게 시킬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상급자들이 그만큼 굉장히 바쁜 상태인 것이고. 그 말은 내가 노력하면 그 상급자들의 바쁜 일을 덜어줄 수 있고 그 일들을 가져오면서 스스로도 그만큼 성장하고, 회사나 상급자에게 성과를 보여줄 기회도 열려있다는 뜻이다. 쉽게 다니려면 한없이 쉽게 다닐 수 있고, 어렵게 다니려면 한없이 어렵게 다닐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어디든 그런 면이 있겠지만, 전직장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여기가 더 그렇다. 전직장도 적극적으로 하느냐 소극적으로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당연히 달라지는 점이 있었지만 그때 열심히 해봐서 그 한계치를 경험했고 퇴사하기 전 즈음에는 내가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다고 해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게 느껴진다는 점이 이직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그래도 다닌 1년 좀 넘는 시간동안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적극적으로 해내서 그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을 통해 더이상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고, 앞으로도 그럴 게 눈에 보였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적용할 기회가 없었고 내가 그 기회를 만들기에는 너무 말단이었고 이미 맡고 있는 유지보수 업무에 대부분의 시간을 계속 써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고민 끝에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상황을 원한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되어서 이 회사로 이직을 했던 거고, 그런만큼 그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근데 정작 이직을 통해 어떤 면에선 내가 원했던 그런 상황이 주어졌음에도 그걸 100% 활용하지 못한 것 같다. 처음에는 당연히 우리 회사의 시스템이나 매출 구조같은 걸 파악해야하니 그럴 수 있지만 어느새 6개월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아쉽다. 바쁘고 정신없이 해야하는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더 공부하고 차분히 무엇을 할지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장 해야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니 멍해지는 시간이 꽤 길게 생기곤 한다. 그래서 따로 강의를 신청해서 듣기도 했다. 강의라는 주어진 목표라도 있으면 그래도 그 강의를 듣는다는 구체적인 할 일이 눈에 보이게 되니까.

그러나 6개월동안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다. 분명히 파악된 것들이 있고 배운 것들이 있다. 이전 직장에서만큼 빠릿빠릿하게 업무를 처리(그럴 일이 주어지질 않았으므로)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전직장에서만큼 좋은 평판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팀장님이나 다른 사람들(중 일부)도 약간씩 의문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그럴 만도 하다싶을만큼 나도 크게 주어지는 작은 일들을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외 시간엔 개인적인 일들을 많이 처리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사도 해야했고 여러모로 개인적으로 신경쓸 일도 많기도 했고.), 지금부터 또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