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오랜만에 보는 친구

참참. 2021. 11. 18. 07:58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아마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친구를 만났다. 얼굴이나 헤어스타일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몸이나 걸음걸이는 그때보다 탄탄하고 건강해보였다. 10년이 넘는 긴 세월이 지나서 보는 것치고는 어색함이 크지 않았다. 목소리나 말투는 내 기억보다 조금 더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사람과는 못 본 세월만큼 쌓인 할 얘기가 끝도없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오히려 할말을 찾기가 어렵다. 매일 만나는 사람, 자주 이야기 나누는 사람과 오히려 할말이 많다. 재밌는 일이다. 그만큼 대화를 잘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가면갈수록 더 깨닫는다.

지난 10여 년의 세월동안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대략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친구는 기사나 내 블로그를 통해 어느 정도 내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친구가 대학교 때 수영 동아리 했다는 소식 이후에는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었다.

카페의 영업종료시간이 되어, 나도 퇴근길이 있고 친구는 더 멀리서 왔고, 또 다음날 출근도 해야하니 헤어졌는데 종종 대화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서로 주파수를 맞추고 세세한 것들까지 이야기를 나누기엔 당연히,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으므로.

본인은 '잉여'라는 단어나, 여러모로 스스로에 대해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해 긍정적인 면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본인이 무엇을 하기 싫은지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하기 싫은지의 목록을 탐구해왔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격렬하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여러 곳을 왔다갔다했지만 딱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누구나 삶이 처음이므로(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억하기로는 처음이므로) 혼란과 의문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려운 건 당연하다. 애쓰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효도이고 잘 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곧 직장에서 일도 하게 됐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소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또 영 별로면 그만두면 되니까, 일단 시도해봐야 맞는지 안 맞는지, 좋을지 안 좋을지도 더 잘 알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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