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 이사를 간다. 그래서 냉장고를 계속 비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저녁으로 오랜만에 라면을 먹었다. 전에는 일주일에 다섯 번씩 먹기도 했던.
단호박포타쥬와 샌드위치를 받았다. 샌드위치에서는 신기하게도 따뜻한 맛이 났다. 아마 재인이 "따뜻한 맛"이라는 말을 함께 건넸기 때문일 거다. 단호박포타쥬에도 "사랑하는 이에게 먹이고 싶어서", "이사 가기 전에도 챙겨먹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말들이 마음을 담고 함께 따라왔다.
바깥의 기온은 내려가고 있지만 내 삶의 온도는 올라가고 있는 나날이다. 이종범 작가님의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에 보면 난생처음 외국에 간 알래스카 청년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 첫 마디는 "이렇게 안 추울 수도 있는 거였군요"라고 한다.
새벽 5시 40분, 눈을 뜨자마자 사랑을 가득 먹었다. 샌드위치를 이렇게 진지하게 먹어본 적이 있나싶을 정도로 시간을 들여 음미하며 먹었다.
새벽에 식탁에 혼자 앉아 한 끼를 먹었을 뿐이지만, 가장 사랑받은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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