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온지 11일차. 이사 온 아파트에는 고양이가 많다. 고양이들이 주민들과 특히 아이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들이 나쁘지 않다. 2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아직 어색하고 어수선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정말로 나의 집을 갖게 된 것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정말 나만의 공간이구나, 싶은. 물건도 거의 가진 게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사고 있다. 이렇게까지 매일매일 물건을 사들인 적은 인생에 없다.
수많은 물건 중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일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고르고 고른 것들로 내 집을 내 마음에 쏙 들게 채워나가는 건 무척 기쁜 마음이 드는 일이다. 어찌 이런 재미를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선물도 많이 받았다. 아직 집들이도 안했는데 집들이 선물들을 당겨받았다. 다들 내 주문에 따라 열심히 골라주어서 몹시 마음에 든다.
물건이 있을 때는(그리고 돈이 없을 때는)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건 낭비이고 사치이니 대충 썼다. 이젠 없다는 핑계로 새로 사고 있으니 나는 어떤 것들로 채워진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가 하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 질문과 마주하여 스스로 만족스러운 것들을 골라 공간에 채워넣고 있으니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 내가 있을 곳이 있다.
21.10.26
산호뜨개로 만들어준 냄비손잡이.
나는 나름 계산이 빠른 편인 사람이다. 내가 주는거야 아깝지 않다고 느끼는 것만 주는 것이니 계산하지 않지만 받는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기억하고 계산하려 했었다.
받는 게 더 많은 관계보다는 차라리 주는 게 더 많다고 느껴지는 관계가 속편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다 갚지 못할만큼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딱히 대단히 뭘 많이 준다고 생각도 안 하지만 그래서 더 감동하게 된다.
그럴 경우 준 사람 당사자한테 다 갚을 수 없으니 그 사랑을 또 다른 이에게 전해줄 수 있도록 하자고 생각해왔다. 여행 중 모르는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들, 단순히 선배라든가 자기가 좋다는 이유로 도와주고 응원해줬던 사람들의 호의같은 것들을. 그것들이 내가 세상을 냉소하지만은 않게 따뜻한 마음을 지켜준만큼 나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그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인관계는 어렵다. 감정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가장 많은 것을 주고 받는 관계다. 그래도 일방적으로 주거나 반대로 받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돌보는 식의 관계가 되어서는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경계하는 마음이 있다.
다만, 받는 사랑이 너무 커서 계산의 한계치를 넘어섰다. 애초에 마음은 계산할 수도 없다. 그저 무엇을 받고 있는지를 잘 알아채고 매일 기도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그리고 해왔던대로 나도 내 마음이 가는대로 마음을 전하기로.
지레짐작하지 않고, 그러나 가끔은 말할 수 없는 것도 헤아리려 애쓰고, 어떤 것이 당신을 기쁘게 하는지 계속 물어보고 또 기억하고. 싫어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하고. 나는 내 습관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내 몸과 마음을 더 잘 살피려 노력하고 알아차리고. 그래야만 건강하게 바로 서있을 수도 있고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춰진 모습을 통해 성장할 수도 있으므로.
21.10.20
나는 이런 걸 받을 만한 좋은 사람이다.
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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