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참참. 2013. 5. 10. 09:13




독서의 역사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출판사
세종서적 | 2000-01-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인류 전 역사에 걸쳐 문자, 책, 독서 행위와 관련된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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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


독서의 역사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이런 걸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쓰는 사람이 있다니.

출판편집자 입문 수업을 듣다가 선생님께서 그래도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면 이 정도 교양은 쌓아야지, 라고 하시며 추천해주셔서 읽게 됐다.

 

처음엔 무척 재밌어서 금방금방 책장을 넘기다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절반 정도 읽었을 때부터 읽다가 졸기도 하고, 이래저래 집중이 잘 안 되어서 결국 다 읽는 데에 3주나 걸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벌써 앞부분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까 리뷰는 방금 읽은 뒷부분 내용 중심으로 써야겠다.

 

난 원래 책을 아주 깨끗하게 보는 성격이었는데, 요즘은 어차피 산 책이라면 내 거니까, 다시 팔 것도 아니니까- 라는 마음으로 마음에 드는 곳에는 밑줄도 막 긋고 이런다. 이 책은 사실 책의 성격상 밑줄을 그어가며 읽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읽다가 밑줄을 긋게 된 구절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자네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자네의 지적 능력만을 믿지 말고 억지로라도 그것을 외우도록 노력해 보게나.'라는 구절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뒷부분도 더 인용해보자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명상하여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 보라구. 그러면 어쩌다 고통스런 일이 닥치더라도 자네는 고통을 치유할 문장이 마음 속에 새겨진 것처럼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걸세. 자네에게 유익할 것 같은 어떤 문장이든 접하게 되면 분명히 표시해 두게.'

이건 아우구스티누스가 프란체스코에게해주는 말이다. 프란체스코가 '책을 읽을 때는 매우 유익하지만 "책이 손을 떠나자마자 그 책에 대해 느꼈던 모든 감정도 눈 녹듯 사라지고 마는걸요"'라고 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책을 읽으며 이런 느낌 지독히도 많이 받았다. 이 글 첫머리에도 나오지 않는가, 벌써 책의 앞부분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고. 난 늘 그렇다. 그래서 밑줄 긋는 연습도 하고 있는 것이고, 이 구절도 밑줄을 그은 덕에 이렇게 기억해냈다. 이젠 정말 좋은 구절은 외우는 독서를 해보고 싶다.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킨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 인생을 바꾼 한권의 책. 이런 말 참 쉽게도 하고 많이도 써먹는 카피인데, 난 그걸 믿지 않았다. 자기계발서 꽤 여럿 읽어봤지만 책장 덮고나면 끝이다. 내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내 마음가짐도 기껏해야 그날 하루 정도는 뭔가 좀 다른 것 같아도 자고 일어나면 또 똑같아지곤 했다. 그건 그 책들이 별로인 책이어서가 아니라, 그 책을 한번 슬쩍 읽어보고 끝낸 나의 잘못이다. 책 한권 읽는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절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자기가 변화하려고 하는 이유와 그 방향에 대해 되새기고 다짐하고 행동하고 하루마다 아니 매 시간, 매 순간마다 떠올리지 않으면 그냥 그동안 살아왔던 마음의 습관대로 살게 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을 바꾼다는 것은. 이런 고민을 이미 꽤 하고 있던 가운데 저런 구절을 만났으니 얼마나 와닿았겠는가. 많은 책을 빨리 읽고 많은 정보를 얻는 것도 좋지만, 나처럼 기억력 나쁜 사람들에겐 다시 읽으며 되새기고 밑줄을 긋고 옮겨적고 외우는 일들이 참 소중한 방법이다.

 

독서에 관심 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재밌을 거다. 도대체 책읽기라는 행위는 어떤 과정들을 거쳐왔는가.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소리를 내어 책을 읽는 것이 당연하고 소리를 내지 않고 읽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는 게 정말 충격이었다. 그림 한 장에서 한 여인이 손에 책을 들고 있다는 사실에서 얼마나 많은 역사적인 의미들을 읽어내는지 역시 충격. 글이 없었다면 내겐 그냥 3초 보고 넘어갈 별 재미없는 그림이었다.

 

침대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의 역사. 하하하. 검열의 역사 역시 만만치않은 흥밋거리였다. 이미 기원전 400년 때부터 책과 독서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금서를 정하고 책을 불태우고 했단다. 그 역사는 수도없이 반복하여, 불과 80년 전 나치스가 책들을 불태우는 사진에까지 이른다. 책은 모든 독재에 치명적인 적이라는 것, 역사가 증명하고 있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짓을 하려는 사람은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를 갖다붙여도 독재 혹은 그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추구한다는 거라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이 책은 2000년도에 나왔고 내가 읽은 것은 초판 14쇄였다. 왜 초판일까. 읽으면서 오탈자가 상당히 많았다. 처음부터 마음을 먹었다면 전부 적어서 출판사에 알려주었을텐데, 아쉽다. 처음엔 한두 개 있나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꾸준히 계속 있더라. 같은 작가의 책도 여러 권 냈던데, 조금 더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서운함이 있지만 그걸 나같은 귀찮은 독자들이 제대로 제보해주지 않은 탓도 크겠지. 반성한다.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부리나케 서평을 남긴다. 이것조차도 벌써 아까 다 읽으며 이런 내용을 써야지하고 생각했던 것 중에 일부는 잊어버리고 다른 내용들이 막 들어오고. 책을 추천해주신 선생님께서 이런 독특한 분야에 대한 연구,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의미있는 연구들이 한국에서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하시던 말씀도 떠오른다. 맞는 말씀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역사까진 아니지만 나도 뭔가는 남겼으니, 이제 그만 자러 가야겠다.

 

사족이지만, 같은 작가의 <책읽는사람들>이나 <밤의도서관>도 함께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소설>이라는 제목의 소설과 <한국출판산업사>도 추천받았다.


* 이 글은 2013년 4월 4일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