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용서해, <삶의 마지막 축제> / 서울시향 플루티스트에서 호스피스 요리사, 음악가로.

참참. 2013. 5. 10. 08:20



삶의 마지막 축제

저자
용서해 지음
출판사
샨티 | 2012-12-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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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는 죽음에 대한, 그래서 삶에 대한 이야기.

 

1.

살다보면 내가 평범한 사람임을 새삼 깨닫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남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직접 살아 보임으로써 내가 지극히 평범한 '남들' 가운데 하나임을 깨닫게 만드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그런 사람들이 한없이 멋있다.

 

2.

루시드 폴이라는 가수가 있다. 본명은 조윤석. 그는 1998년에 이미 앨범을 냈으며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TV에도 출연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는 가수이다. 그런데 그의 네이버 인물검색 정보의 수상경력에는 2007년 스위스 화학회 고분자과학부문 최우수논문발표상이라는 상이 홀로 빛나는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생명공학 박사이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유학 가서 공부를 할 때에도 음악을 계속해서 솔로 앨범도 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에 그에 대해 듣고 그저 참 잘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로 유학까지 가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까지 땄지만 그에게 생명공학과 음악은 둘 다 재미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따면서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 내가 그런 삶을 원하기만 한다면, 즐길 수만 있다면 못할 이유가 없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

대학교 다닐 때 <고래가 그랬어>라는 월간지의 발행인이자 칼럼니스트인 김규항 선생님 강연을 들었다. 그때 옆집 이웃 아저씨가 규항 선생님이 사는 모습을 보고 처음엔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다가 하도 즐겁게 사니 나중엔 결국 자신도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러 떠나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그렇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삶으로 보여주는 것뿐이구나. 누군가를, 그리고 그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런 삶을 보여주고 그것이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구나. 이 생각은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남아 그 울림을 전하고 있다.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양의 이야기엔 이런 말이 나온다. 지금부터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고.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고 해서 견고한 탑이 무너질 리 없다는 걸 알지만 더 이상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것들을 지탱하는 일부분으로 남지 않기로 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게 단지 옳지 않아서 내가 맞서 싸우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게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이 트랙 위에서는 아무리 채찍질 해봐도 이제 더 이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고. 나를 찾아, 내가 행복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찾아 그는 떠났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 역시 여러 부분에서 공감을 했다.

복잡할거 없이 인도의 간디나 쿠바의 체게바라같은 이들을 떠올려보면 금방 느낄 것이다. 왜 정교한 논리와 이론과 그에 기초하여 세워진 방법과 계획들이 아니라,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과 그 한 사람의 삶이 진정으로 우릴 변하게 하는지에 대해.

 

3.

이 책을 쓰신 분 역시 멋지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삶의 길을 그려가고 계신다. 열일곱 살에 프랑스 파리로 떠나면서까지 배운 플루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자라는 품위 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셨던 분. 이런 분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악기연주를 비롯하여 다양한 봉사를 하시기도 하고 호스피스 요리를 만들어보겠다며 요리도 배우신다. 남들이 부러워하기에 충분하던 삶을 마다하고 ‘플루티스트 용서해 셰프’가 되어 지금은 아예 연락조차 어려운 산 속까지 들어가셨다. 우리 땅에서 나는 야생의 재료로 요리를 연구하신다며.

요즘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도 많고, 대단한 이야기도 많다. 그에 비해 어쩌면 지금 이분의 삶은 차라리 소박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과연 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르러서는 말을 잃게 된다. 지금의 삶을 통해 좀 더 나다운 나, 진짜 나로서 살게 되어 전보다 충만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말씀에 이르러서는 부러워지고 만다.

그래, 괜찮다. 정해진 듯 보이는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하고 버리기 아깝다고 하는 그런 길에서 잠시 옆으로 한발만 내밀어보고 있는 나지만, 괜찮다. 훨씬 더 방황하고 상처받을 것이 분명할지라도, 결국 ‘거봐 내가 뭐랬어.’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괜찮다. 가장 빛나는, 가장 소중한 지금이라는 이때에 언제까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그저 해오던 것들만을 반복하며 살 것인가. 내 결심에 이 이야기들도 용기를 보태준다.

오늘도 또 조금 변해간다. 용서해라는 분을 책으로나마 알게 되면서. 이분이 만났던 사람들을, 죽음을 눈앞에 둔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모습들을 이분의 마음을 통해 보면서. 같이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극적이기보단 조용하고 잔잔한 글속에서 느껴지는 진심, 전해져오는 감동을. 좋은 죽음에 대한 고민을 통해 좋은 삶을 향해 움직여 나아가는 이야기를.

이런 삶을 사는 분들이 우리를 변하게 한다. 이런 분들이, 이런 분들을 보고 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세상이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워지리라는 기대도 공허한 꿈만은 아니지 않을까.

 

본문 68쪽 - 호스피스 센터를 오가며 다른 봉사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그 일을 미래의 어느 날로 미루지 말고, 또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들을 찾지 말고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언젠가 이룰 꿈을 위해 마냥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 이 글은 2013년 2월 5일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