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신혜, <먼지의 여행> / 이화여대 졸업과 방황, 돈 없이 여행하다, 그림을 그리다

참참. 2013. 5. 9. 19:16


* 이 글은 2010년에 쓴 글입니다.



먼지의 여행

저자
신혜 지음
출판사
샨티 | 2010-02-1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진짜 내 모습을 찾아 떠난 1년간의 무일푼 여행기!자신을 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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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와 함께한 여행'


글쓴이는 자기 자신을 먼지라 칭한다. 스스로 먼지라 하는 그녀의 여행 이야기, 먼지의 여행. 일종의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을 이 책은, 그러나, 여행기라기보다는 일기라는 느낌을 주는 그런 소박한 글들의 모임이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는 그런 막막함에 휩싸인 적이 종종 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은 뭐가 있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심지어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의 막막함 말이다. 내 삶은 저 구름들과 이 땅의 가운데 어디쯤에선가 허우적대고 있을 뿐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그런 답답함. 생각을 하고 또 해도 지쳐 한숨이 나올 뿐, 자포자기에 가까운 피로만이 남는 그런 고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내 의지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지가 더 많았던, 그래서 항상 갇혀있는 것만 같고 시들어 향기를 잃어가는 꽃과 같은 기분으로 보내왔던, 견뎌냈던 나날들. 그러나 막상 너의 의지로 무엇이든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당혹스러움부터 심하게는 공포를 느끼는 이가 상당수인 현실. 그동안 갇혀 지내면서 적응해온 그 무력감, 나 역시 그렇기에, 그래왔기에 그걸 표현하는 문장들 하나하나에서 그 감정들을 느낄 수가 있었다.

20대라는 시기를 항해하며 지도에 따라 정확하게 목적지만을 향해 순항하는 이가 몇이나 있으랴. 그 역시 목적지를 잃고 역풍과 암초로 고생하는 그런 배 한 척이었다. 나도 그렇고.

 

그러던 어느 날 돈도 없이 한국을 여행하던 외국인들을 만난다. 한국에 익숙지 않은 그들을 도와주다가, 오히려 도움을 받게 된다. 그들처럼 가진 것 없고 확실한 것 하나 없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살아보고 싶어진 그녀는 떠난다. 훌쩍.

처음엔 그들을 따라, 나중에는 혼자서, 또 그때그때 인연이 닿는 그 누군가와 함께. 없이 사는 법을 배운다. 가진 것이 없기에 더욱 값진 것들과, 나눔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을 마음으로 만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느낀다.

먼지의 여행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마치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이 위험한 순간에는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아군이 나타나듯, 항상 그 곁에는 또 다른 작은 손길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 다음 걸음은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는 채로 한 걸음을 내딛고 나면 그 한 걸음 덕분에 그 다음 걸음을 내딛을 곳이 보이는 그런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여전히 취직하고 결혼해서 안정적이고 평범하다고 평가되는 삶을 꾸리기를 바라는 주변 사람들이었지만, 삶의 또 다른 방법에 대해 그들과 대화를 시도해 볼 커다란 용기와 그 모든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맞대고 싶다는 바람을, 작은 먼지 속에 안고 왔다.

여전히 이번 걸음 다음에는 어디로 걷게 될지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지만, 세 걸음, 네 걸음 앞이 어디인지 모른다고 불안해하지 않기로 해서 그녀가 이번 한 걸음도 또한 힘차게 내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도 그녀의 여행을 마음으로 동행하면서, 조금 먼 곳에서 일상을 본다. 덕분에, 내 곁에서 다양한 기대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다 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고마워요, 먼지.


+ 2013년 5월 10일 이 글을 쓰면서 덧붙임.

이 책의 여행 뒤 지은이 신혜님은 무엇을 하고 살고 계실까, 정말 많이 궁금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집에서 3년동안 그림을 그리셨다.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님과의 만남, 그리고 얼마 전에 첫 전시회. '먼지의 여행, 그 후' 전 을 열었다. 지난 5월 3일엔 작가와의 만남도 했다. 그 만남에 다녀왔다.


2013/05/10 - [내가 바라는 일상/2013~] - [130503] 김규항, 편해문 강연회와 먼지 신혜의 첫 전시회 '먼지의 여행, 그 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