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외면

참참. 2021. 8. 18. 08:22

 

그가 내 안의 공허를 거울처럼 되비쳐주기 전까지,
나는 내 공허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내가 공허하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평생 하지도 않다가 한 달 전에 시작한 주식 시세 보는 일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온갖 단톡방에서 하루에 수백개씩 올라가는 메시지들에 참가하는 일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들이 다 내 안의 공허를 외면하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일들이었다는 걸 문득 알게 됐다.

특히 돈에 대해 생각할 때는 다른 것들에 대한 생각을 현저하게 덜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이 돈돈돈 하면서 사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얼마를 모으지, 어떻게 모으지, 주식이 오르고 있나 내리고 있나, 뭘 사면 돈을 벌까, 언제 사야할까, 언제 팔아야할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간다. 겪어보기 전에도 그럴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는데, 고작 10만원, 20만원 넣어놓고도 그런 생각을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하고, 단톡방에서 그런 얘기를 끝도 없이 떠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문득문득 "나 돈 왜 벌고 있지"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그 공허를 외면하고 있었다니.
하긴, 그 공허를 바라봐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그걸 어찌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지금은,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와의 이야기, 그가 해준 삶이 가득 담긴 음식들,
그것들이 나를 지금 이 순간과 여기 이곳으로, Pura Vida로, 돌아오게 만든다.

 

'일상 > 2020~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음이 느려졌다  (0) 2021.08.19
잘 살고 싶다  (1) 2021.08.18
따뜻한 시선  (0)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