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존경하는 사람

참참. 2021. 8. 16. 10:39

 

나름대로 몇 번인가의 연애를 해봤지만, "존경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연애를 시작한 적은 없었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구석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어쨌든 연애감정과 존경심은 좀 다른 느낌이니까.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쓰지도 않는다,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은 애초에 주위에 별로 없다. 내가 최근 몇 년 사이 그 말을 가장 자주 쓰는 사람은 내 여동생이다. 가족으로 수십 년을 지켜봐왔는데도 참 바르고, 밝고, 사려깊은 사람이다. 어머니께도 그렇고, 내 입장에선 충분히 흡족하진 않은 본인 남편에게도, 나에겐 조카인 딸 키우는 모습도 그렇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10년쯤 전에, 동생도 결혼하기 전에, "돈은 내가 벌테니, 오빠는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연히 그래서도 안되고, 그때도 듣자마자 그러지 말라고 했고, 동생도 그게 엄청 현실적인 각오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날 위해주는 진심을 느껴서 감동이었다. 생활비나 큰돈을 빌린 일은 없지만, 본인도 결혼하고 애도 생기고 그밖의 여차저차한 집안사정 때문에 힘들면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선물을 보내주곤 했다. 그렇게 자주 연락하거나 자주 보지는 않지만 항상 미안하고 든든하고 잘 살거라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동생 외에는 존경이란 단어를 웬만해선 꺼내지 않는데, 최근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을 만났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가치 있는 일들을 해나가고 있는 사람. 그동안 겪은 경험들을 너무 무겁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게다가 그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경탄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아는데, 나는 그렇게 음식 맛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어지간한 건 대충 맛있다며 잘 먹고, 양으로 따지면 별로 많이 못 먹는 타입이다. 이런 나에게 음식으로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각 음식들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가 담긴 사려깊은 문자메시지도 한몫했다. 나는 글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니까. 그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기억하며 먹는 음식은 그냥 아무것도 모른채 음식만 먹었을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처음엔 로맨틱하게 좋아하는 마음과 존경심이라는 마음을 동시에 느끼는 일이 생경해서 약간 어색하기도 했지만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점점 더 좋아졌다. 존경하는 사람이니까 삶에 임하는 그의 자세를 배우고 싶고, 또 존경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존중은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최근에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 중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잘 싸울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갈등이 절대 없을 수 없는데, 그것들을 좋은 방법으로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 싸움의 필요성, 중요성 그리고 좋은 싸움의 방법을 함께 고민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야 건강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상하게 요즘 계속 들었는데, 그가 싸워야한다는 얘길 했다. 내가 생각하던 지점과 너무 맞아떨어져서 깜짝 놀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가고 있던 중에 그로부터 내게 관심이 있었다는 말을 다양한 버전으로 들었다. 그 관심 때문에 한 일들을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너무 설레고 좋아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에서는 막 여기저기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어떡하지, 너무 좋아요." 입으로는 그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강아솔 콘서트 예매는 정말 깜짝 놀란 일이었다. 강아솔 콘서트라니, 강아솔이라니, 추천해줬던 강아솔 노래 '손과 손'(https://www.youtube.com/watch?v=vKF7OLt7yxI)도 백번 듣고 있었는데, 그 노래 추천을 해줬을 때도 진짜 너무 좋았는데, 콘서트라니! 그땐 아직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모르던 때였는데, 나랑 같이 보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콘서트 티켓을 두 매 예약했다니. 집에서 자려고 누워서, 그리고 새벽에 깨서 그 생각하면서 혼자 발버둥을 치고 난리를 피웠다.

둘이 같이 계속 웃음이 나고, 잠이 일찍 깨고 잠이 잘 오지 않고, 두근거리고, 서로의 생각만 나는 현상을 겪고 있다. 그는 늘 남자쪽에서 먼저 고백해온 뒤에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했었고, 이렇게 먼저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본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모든 말들이 내게 주는 감동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행복하다. 고맙다. 지금의 이 마음을 그저 즐기자고 얘기하고 있는 우리가 너무 좋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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