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애를 시작한지 1년쯤 됐을 때 군대에 갔었다. 그 사람은 편지하겠다고, 그리고 기다리겠다고 했었다. 난 내심 2년은 긴 시간이니, 미래는 알 수 없으니 너무 기대하진 말자고 나름대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훈련소에서 그의 편지를 기다렸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었으므로. 내가 가장 후회하는 건 주소를 적어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편지를 써 보낼 수가 없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온라인으로 훈련소 카페에 와서 편지글 올리면 인쇄해서 나눠주던 시절이었다.
매일 저녁 도착하는 훈련소 동기들의 편지를 바라만 봤다. 어떤 녀석의 여자친구는 정말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왔다. 하긴, 그 사람이 군대를 가고 내가 밖에 있었다면 나도 매일 편지썼을 것 같다. (그땐 몰랐지만) 그 사람만 보고 살던 때였으니까.
결국 그에겐 단 한 통의 편지도 오지 않았고 나도 한 통의 편지조차 보낼 수 없었다. 받지 못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기억하다보니 보내지 못한 게 더 큰 고통이었나 싶기도 하다.
불교종교행사에 반야심경을 외워가서 겨우 얻은 3분통화 기회로 통화를 한번했다. 그 전화를 받아줬다는게 기뻤다. 물기 어린 목소리에 꼭 그사람이 내 바로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밀린 편지도 보낼 거고 수료식날 어머니랑 같이 꼭 오겠다고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하지만 5주가 끝나고 수료식날이 됐고 그도 편지도 오지 않았고 그는 더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 어머니 폰을 붙들고 몇통이나 전화를 걸었었던지.
아마 그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도저히 할말이 없었을 거다. 군대가기 전에도 내가 늘 연락을 왜 이렇게 안 하냐고 내가 먼저 연락 안하면 우리 그냥 남남이겠다고 하면서 뭐라고 했었으니까.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연애할 때 그렇게 몰아붙이지 말 걸, 그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해주는 걸 있는 그대로 감사하게 받을 걸, 기타 등등. 내가 연애가 처음이어서 서툴렀고 너무 그 사람만 보고있어서 숨막히게 했다고. 내가 더 능숙하고 여유롭고 더 잘했으면 떠나가지 않았을 거라고, 그런 식으로 계속, 아주 오랫동안 후회했다. 그 연애에서 내가 했던 모든 말들과 행동들을.
10년이 지났고 이젠 추억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꼭 버려질 거라는 두려움이 왜 이렇게 심할까를 생각하다 이 기억에 닿았다. 나는 그 사람의 주소도 모르고 늘 갖고있던 핸드폰도 없고 찾아갈 수도 없고. 그냥 그쪽에서 연락하지 않기로 하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무력감. 버려졌다는 감각. 헤어진 이유를 물을 수 없어 혼자 돌아보며 하나하나 후회하고 자책했던 그 오랜 시간.
그 사람만 이해하려고 했지 내 아픔과 내 고통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건데 내가 준 상처에만 집중하느라 내가 받은 상처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많이 울면서도.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외로웠니, 너 진짜 아팠겠다. 응.
성실하게 서로를 사랑해나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드물지만 가끔 그런 커플의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나에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무엇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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