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참참. 2021. 5. 10. 07:04

 

아는 사람에게 전해들은 얘기인데, 그의 여동생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남편의 폭력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임신한 중에도 멈추지 않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최근엔 점점 더 심해졌나보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현재는 이혼을 준비 중이고, 남편은 이혼하기 싫다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동생이 그렇게 살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상황이고. 

그는 어째서 진작 이혼하기로 하지 않았냐는 의문을 느꼈고, 그가 동생의 말을 들어봤을 때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의 부모님들이 특별히 부모를 위해 이렇게저렇게 살라고 심하게 강요하는 타입도 아니고, 여태까지 그와 동생도 이미 여러 번 실망시켜드리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에게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폭력을 참아서라도 지키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큰 부분일 줄 전혀 몰랐다고.

근데 이혼이란 게, 아직까지도 굉장히 그런 마음이 크게 드는 일인 것 같다. 나 역시 이혼 전에 이미 멀쩡한 대학교도 때려쳐, 부모님이나 일가친척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돈도 안되는 일해, 그나마 그것도 때려치고 아직 20대 젊은 나이에 서울 떠나 귀촌하겠다고 시골 가서 제대로 돈도 안 벌어, 더 실망시킬 것도 없을만큼 자기 멋대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이혼이라는 선택을 떠올렸을 때, 부모님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내 결혼식에 와서 축하해줬던 사람들, 나를 좋게 봐주고 응원해주는 친한 사람들 모두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주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꽤 크게 일어났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도대체 왜 그게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일이냐고. (부모님이 날 정말 사랑한다면) 그런 부당함을 꾹 참으며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진짜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는 일 아닌가하고.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효도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부모님이 날 사랑한다면 어떻게 살으라고 하는 식의 잔소리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서 하는 말이고, 그렇다면 실제 그 잔소리의 내용대로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행복해지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런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혼이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는 일이 아니라, 내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그런 이유(누군가를 실망시킬까봐)로 참고 사는 것이야말로 부모님과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모든 사람들을 정말로 실망시키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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