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정념

참참. 2020. 9. 20. 05:53

 

어제의 모임 주제는 상호주관성과 정념이었다. 조금 더 하고싶은 얘기가 있었지만, 시간이 모자라서 할 수 없었다.

책에서는 정념(정열, 열정, passion의 번역)에 대해 치료가 필요한 일종의 정신병에 가깝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게 참가자들이 받은 느낌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어제 모임에서 한 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평온을 유지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사는 게 꼭 좋은 건가, 그럼 무슨 재미인가하는 생각을 나도 했다. 

근데 사실은, 모임에선 말하지 못했지만, 책의 그런 부분이 위안이 된 면도 있었다. 이젠 어떤 것에도 딱히 열정이랄 만한 게 없는 것 같아서 그게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게 있어야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열정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내가 열정이 없어서, 하고싶은 게 없어서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런 느낌이다.

삶에 메인디쉬가 없는 느낌?

식당에 갔는데, 분명히 뭐가 나오긴 나오는데, 김치 나오고 단무지 나오고 양념도 나오고 하는데, 계속 밑반찬이나 소스같은 것만 나오는 느낌이랄까? 먹긴 먹는데, 그것들을, 그것들만 가지고도 배는 채울 수 있고 시간은 지나가긴 하는데 어디에 딱 집중을 하고 나머지는 곁들여먹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 메인이 없는 느낌이다.

우선순위로 얘기하면, 시험준비를 하더라도 가령 내가 열 과목을 듣는데 그 중에 성적을 꼭 잘 받아야하는 과목이 있다면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부터 공부하고, 어느 정도 되면 다음엔 이걸 공부하고. 시간이 모자라면 이것부터 포기하고. 다 할 수 있으면 좋지만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있으니 제일 하고싶거나 제일 중요한 것부터 처리하자는 마음이랄까? 근데 내 삶에 1순위로 두는 게 없는 느낌? 어느 건 포기하거나 조금 미뤄둬도 되고, 어느 것은 핵심이니까 미룰 수 없거나 가장 먼저 하거나 가장 열심히 혹은 가장 소중하게 해야하는, 그 핵심이 없는 느낌? 서브만 있고 메인이 없는 느낌.

책에서 정념의 문제에 대해 결과를 정해놓고 거기에 논리를 끼워맞추게 되며, 정념의 대상이 된 것 외의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꼭 거기에 매몰되어 다른 모든 걸 하찮게 여기거나 등한시해버리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하게 혹은 가장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한 가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중심을 잡아주는 거랄까 그런 게. 그게 누군가 한 사람을 향한 낭만적인 사랑이든(아마 나는 이쪽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삶을 걸고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목표나 일에 대한 열정이든,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어떤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욕구나 욕망이든, 내가 재밌어하고 더 잘하고 싶어해서 많은 노력을 들이는 취미생활이든, 나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는 어떤 집단에서의 활동이든, 하다못해 그밖의 더 세속적인 것이든.

 

상호주관성은 예전에도 살짝 접해보긴 했지만 역시 어렴풋하게만 감이 오는, 뭔가 알듯 모를듯한 개념이다.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 얘기를 하면서는 주로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니까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고 관계가 달라졌다는 경험담은 흥미로웠다.

나는 이전의 연애들에 대해 생각했다. 첫 연애에서 나는 몹시 매달리는(?) 쪽이었다. 항상 먼저 연락하고 보고싶어하고 사랑을 확인받고싶어하는 쪽. 그래서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불안정애착유형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였던 것 같다. 그때 이런 걸 알았으면 좀 더 달라졌을까, 모르겠지만. 재밌는 것은 그래서 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그때도 어렴풋이 생각을 했는데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니까 연애 상대나, 관계에 임하는 내 태도가 또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물론 사람이 다르고 나도 경험이 쌓였으니 달라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누구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나의 반응과 나의 태도, 우리의 상호작용과 관계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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