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못 갖춘 마디

참참. 2020. 8. 28. 16:47

못갖춘마디. 어제 배운 연습곡 21번은 못갖춘마디로 시작했다. 선생님이 못갖춘마디-라고 말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웃고나서 스스로도 당황해서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라서, 라고 했는데 나도 왜 웃음이 났을까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다.

웃음을 유발하는 것 중 하나는 의외성이다. 일상적인 것이라도 그것이 있을 만하지 않은 상황, 엉뚱한 곳에 놓여있으면 웃길 수 있다.

기타레슨 받는데 못갖춘마디가 의외의 낱말은 아니지만, 내 인생에서 의외의 낱말이다. 학창시절 음악시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잘 못하는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필기는 괜칞았지만 노래도 춤도 악기도 내겐 늘 어려웠다. 평생 음악과 별 인연이 없다 여겼다. 10년 전 통기타를 독학하겠다고 뚱땅거려보던 시절도 있었는데도 그랬다.

그러다보니 높은음자리표라든가 도돌이표같은 말들을 들었을 때도 간질간질했지만 못갖춘마디에서 빵 터진 건 이거야말로 정말 생소하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분명 15년쯤 전에 음악 필기시험 보려고 열심히 외우긴 했으나 평생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거라곤 기대해본 적이 없는 녀석이다.

시험공부할 땐 몰랐는데 다시 만나보니 참 예쁜 낱말이다, 싶다. 못 갖춘 마디라니, 영어로 찾아보니 incomplete bar라고 나오던데 만약 불완전한 마디 같은 용어였으면 별로였을 것 같다.

모든 게 잘 갖추어진 상태로 삶에 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다 갖추진 못했지만 그런 채로 또 그럭저럭 오늘을 만나서 하나둘셋 몇 박자 쉬고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또 나름대로 어떤 멜로디를 만들어나가겠지.

책 속의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니가 갑자기 삶에 걸어들어와서 놀랐어. 읽기만 했던 너를 이제 연주해볼게. ㅎㅎ

 

20.08.26. 인스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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