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기억

참참. 2020. 5. 12. 05:19

 

기억은 몹시 불완전하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기억이 기록된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과 달랐던 경험이 있는가? 어릴 땐 내 기억을 몹시 신뢰했는데, 살다보니 점점 기억은 적어도 객관적인 과거 사건에 대한 자료로써 신뢰할 만한 것이 못한다는 걸 실감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같은 일을 다르게 기억할 수가 있는지 불가사의하다고 느낀 적도 여러 번이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이 장난을 치고 있거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내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겪고 느낀 수많은 사건, 경험, 감각, 느낌, 기분 등등 중에 무엇이 기억으로, 또 장기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신비롭지 않은 건 거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이미 저장된 기억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야말로 몹시 충격적이고 신기하다. 그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아직도 그게 실감이 잘 나진 않지만, 분명히 그렇다. 우리는 어떤 기억들을 계속해서 꺼내본다.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어떤 기억들은 자꾸만 현재로 불려나오고 그럴 때마다 그 기억들은 강화된다. 단순히 더 잘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조금씩 형태와 내용이 달라지면서 강화되기도 한다.

기억이 이렇게나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처음엔 두려웠다. 믿을 게 없는 느낌이었으니까. 내 기억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살았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기억하고 있거나 보기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건이었거나, 객관적인 과거와는 전혀 달라져버리거나 한다는 게 좀 무서운 일 같았다. 근데, 어쩌겠나, 사실이 그런 것을. 그래서 기록하는 일이 소중하다. 그리고 꼭 그게 나쁜 일만도 아닐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은 어쩌면, 조금은 잊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행복하고 좋은 기억도, 때로는 과거만 곱씹으며 살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 행복하고 좋은 것도 분명히 완전히 그때 실제로 겪었던 사건, 실제로 느꼈던 감정과는 달라졌을 텐데도, 기억할 때만은 그렇게 느낄 수 없다.

조 디스펜자의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Becoming supernatural)>를 읽고 있는데, 이 책에는 명상을 통해 신비체험을 하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사실 명상이 삶과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에 동의하는 편이면서도 신비체험같은 것들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극히 예외적으로 겪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이 사람은 과학을 많이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으로서 그같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경험들을 어떻게든 '측정'하고자 시도해왔고,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이 더 많이 이러한 경험에 갈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들을 얻어내려고 해왔다. 어느 정도의 성과는 분명 있었던 모양으로, 수년간의 경험과 연구결과를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물론, 여전히 주류과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인정받기는 어려운 얘기다. 과학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보통 반복적으로 동일한 현상을 관측하고 재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똑같은 자극을 줘도 5분 전에는 이런 행동을 보였는데 5분 후에는 다른 행동을 보이고 여기서 아무런 패턴도 발견할 수 없다면 이러한 것들을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연구하기란 몹시 난해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 안에서 벌어진다고 일컬어지는 어떤 것들, 명상을 통해 겪는 것들(개인차가 몹시 큰) 등은 과학적 연구 주제가 되기가 몹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누구는 이런 걸 보고, 누구는 다른 걸 보고, 누구는 분명히 하라는대로 한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못 보고, 기본적으로 그런 면이 크니까 말이다.

다만, 기억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 책의 내용 중 굉장히 와닿는 부분이, 명상을 하다가 겪는 소위 말하는 신비체험이라는 것이 실제와 같은 기억, 심지어는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기억이 된다는 부분이었다. 내가 진짜로 몸으로, 감각으로 경험한 기억조차도 어떤 기억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지워져버리고, 어떤 기억은 완전히 다르게 기억되고 있다면, 아예 내가 겪은 적이 없는 기억을 머릿속에 갖게 되는 것도 사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거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많은 SF에서 기억을 지운다든가 기억을 주입한다든가하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도 나오고 있듯이 쉽게 상상해볼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마치 기억처럼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그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꺼내본다는 행위를 나름대로 효율적인 방식으로 해낼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기억, 특히 내가 가장 자주 꺼내보고 가장 삶에 영향을 받는 다른 기억들처럼, 스스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억을 '창조'해낸다는 것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게 이 책의 핵심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일을 해내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비슷한 일을 해내고 겪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 마인드무비, 만화경,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마인드무비는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내가 겪고 싶은 미래를 영화처럼 찍어서 그걸 반복적으로 본다는 아이디어다. 지금까지의 자기계발서들에서 비슷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있었다. 실제처럼 상상하고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원하는 것을 끌어당겨라, 라는 류의 이야기들. 난 그게 꼭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공허한 면이 있었다. 역시 그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나 메커니즘이 다 두루뭉술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게 원리가 밝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런 부분을 나름대로 과학의 방법을 통해, 본인의 과학계에서의 평판이 망가지는 것을 감수해가며 해온 일이라서 여전히 논리적으로 도약한다고 느껴지거나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싶은 부분들이 있음에도, 상당히 흥미롭고 믿겨지는 책이다. 이러한 신비한 일들을 개인의 체험담 위주로 읽는 것도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연구한 데이터를 같이 갖다놓으니까, 분명히 한계는 있음에도 확실히 좀 더 그럴듯하기도 하고 분명히 뭐가 있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계적인 원인과 결과를 신뢰하고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게 익숙한 시절도 있었는데(지금도 물론 그런 면이 있고 그런 걸 좋아하는 순간도 많지만), 내가 그런 사고의 첨단에 있는 과학을 배우면서 충격 받았던 부분이 플라시보 효과였다. 이거는, 전세계 어느 의사나 과학자도 이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이제는 더이상 부정할 수 없을만큼 증명되었지만 여전히 이것의 기전(메커니즘)은 불분명하다. 아무 효과도 없는 설탕덩어리같은 걸 알약처럼 만들어서 약이라고 하면서 주면 그걸 먹고 사람이 실제로 증세가 나아진다는 게, 믿겨지는가? 솔직히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근데 이게 농담이라면 모든 제약회사들이 약을 테스트할 때 플라시보 효과를 고려해서 실험을 설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의 놀라운 점은 특정한 병, 특정한 증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병, 모든 증세에서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물리적인 상처든 병균으로 인한 병이든 그 외의 신체 내부의 문제든 가리지 않고.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만병통치약 아닌가?

그렇다면 만약에 단순히 의사가 주는 약이라는 얕은 페이크를 통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진짜 나는 이제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의사가 주는 약을 통해 얻는 수준의 최면이 아니라 정말로 강렬하게 그걸 믿을 수 있다면 어떨까? 어쩌면 종교에서 신께 기도하고 믿었더니 나았다라든가하는 것도 이런 것의 일환은 아니었을까? 병원의 치료를 거부하고 민간요법으로 무엇무엇(쑥이든 뭐든)을 먹으니 암이 나았다는 식의 주변에 퍼져있는 거짓말같은 이야기들도 실은 그 무엇무엇의 효과도 없진 않겠지만 더 핵심적인 것은 이걸 먹으면 나을 것이라는 당사자의 강력한 믿음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내가 기억을 창조해낼 수 있고, 어떤 느낌들과 믿음들을 스스로 강화시킬 수 있다면 부자가 되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는 것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여러가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처럼 의식적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내 몸의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심장박동이나 호르몬 분비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영향을 끼쳐서 건강이나 신체에 무시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든다.

모든 세포가 다 똑같은 유전자를 세포 내에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 유전자에서 써먹는 부분은 다 다르다. 후성유전학은 이러한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도 서로 다른 유전자를 발현시키는 것에 대해 연구하며, 이것은 우리가 타고난 유전자 자체를 바꿀 순 없더라도 이 유전자 내에서 어떤 부분을 발현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손가락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대뇌로 생각해서 내 유전자 중에 어느 걸 발현시켜라라고 시킬 순 없지만, 내 몸이 어떠한 상황에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을 통해(가령 나는 곧 밥을 먹을 것이다라는 생각만으로도 실제의 음식이나 음식냄새 없이도 위액을 분비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일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게 그렇게 못 믿을 만한 일은 아닐 것 같다. 볼수록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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