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을 했는데 뭔가, 음. 이등병 때 자대 가서 뭘 해야할지 어디에 있어야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그 느낌이었다. 우습지만 참 난감하다. 일단 건물에 들어갈 키가 없었고,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갔지만 2층부터 6층 중에 내 사무실이 어느 층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층에서 어색하게 서있자 한 여자분께서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시더니 5층으로 안내해주셨다. 내 자리는 아직 없었고 컴퓨터도 없었다. 컴퓨터는 11시쯤 왔다. 그 전엔 노트북으로 잠시 단순한 작업을 했다. 근데 그나마의 작업이 끝나고 상사는 외근을 나갔고, 내게 주어진 일은 없었다.
점심은 다른 팀의 입사 약 10개월차 정도 되는 남자분과 둘이서 먹었다. (그래도 내가 더 신입이라고 밥을 사주셨다, 안 그래도 된다고 하니 본인도 그동안 많이 얻어먹었다며.) 난 오늘 처음 온 신입인데 어째서인지 그분이 날 더 어려워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어려워보이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냥 원래 말이 별로 없으신 분인가. 어쨌거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그럭저럭 공통 주제도 있었다. 여기 회사도 코로나 때문에 이런저런 변수가 생긴 것도 있고 월요일이고 여러모로 음, 신입사원에게 대단히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애초에 딱히 무슨 신입사원을 위한 프로그램같은 게 있는 것 같진 않다. 내가 일반 기업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원래 다른 데도 다 이런 건지 비교할 수도 없고 그냥 난감해하다가 왔다. 그냥 점심 먹고나서부터는 혼자 컴퓨터에 앞으로 사용할 것 같은 프로그램들 이것저것 깔고, 웹서핑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공부 이것저것 하다보니 퇴근시간 됐다.
코로나 때문에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야근이 완전 일상적인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하루밖에 안 가봐서 아직이야 알 수 없지만. 같이 밥 먹었던 분도 대충 6시 15분 쯤엔 퇴근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근로계약서는 아직 안 썼다. 2주 내론 쓰겠지, 뭐. 사실 아직 내 월급이 얼마인지, 정규직인지 계약직인지도 모른다. 내가 소속된 팀도 오늘 책상에 올려주는 명찰 보고나서야 알게 됐다.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건지도 아직 자세히 모르겠다. 프로그래머로 뽑힌 거긴 한데. 프로그래밍도 웹퍼블리싱도 아직 많이 어설픈 첫 직장 경험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이지만 사실 걱정이 더 많다. 그래도 그렇게 쉽게 자르기야 하겠어, 열심히 배우면서 하면 그럭저럭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 않을까 싶다.
기분이 좀 묘하기도 했다. 그런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 행복해보이지 않아서 학교도 때려치고 활동도 하고 심지어 귀촌까지 했었는데 이젠 이 삶을 원해서 이렇게 취직한 것에 기뻐하면서, 잘 못해서 잘릴까 봐 걱정하면서 거기서 어색, 난감해하면서 앉아있다는 게. 언젠가 취직했던 기쁨은 잊고 출퇴근 지옥과 직장인의 삶이 지겹고 고통스러워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여튼 지금은 인생 참 모르겠다 싶은 묘한 마음이면서도 나름 설렌다. 열심히 배우고 월급 받아서 맛있는 거 사먹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