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2008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 태웠는가>, 닐 부어맨

참참. 2013. 5. 9. 18:26

* 이 글은 2007년에 쓴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kimjh620/20044236361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 태웠는가

저자
닐 부어맨 지음
출판사
미래의창 | 2007-12-0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현대인과 하루 24시간을 함께 하는 '브랜드' 제품과의 결별기!...
가격비교

넘쳐나는 명품과 브랜드 제품들, 과연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주변을 둘러보니 손에는 하이테크 펜, 몸에는 폴햄 셔츠, 그 위엔 노스페이스 겉옷까지. 뿐만 아니라 책상 위엔 소니 시디플레이어, 아이리버 전자사전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전자제품들이 널려있다.

 

역시 브랜드는 우리 생활 전반에 깊숙이 녹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의류 정도라면 몰라도 전자제품, 생필품들까지 브랜드제품을 쓰지 않고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이자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시민인 닐은 화형식이라는 거대한 이벤트까지 치르며 탈브랜드화를 선언하고 이를 실천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처음 브랜드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는 굉장히 안타까우면서도 공감이 가는 면이 있다. 간단히 말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는 브랜드 제품들을 필요로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도 브랜드로고가 없는 옷을 입은 아이들을 깔보는 부류, 걸치고 있는 옷들로 사람을 평가하는 부류, 결국 브랜드가 자신을 채워줄 것이라는 무의식적이고 비이성적인 믿음을 지닌 채 끊임없이 소비하고 쇼핑을 취미로 삼는 그런 부류가 되었다.

 

우리라고 해서 얼마나 다를까? 그나마 민감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대부분 교복을 입고 보내기에(물론 그렇지 않은 학교도 많지만) 꽤 덜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교복마저도 O마트, 아이O. 스쿨O스, 엘리O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수많은 도시에 체인을 내며 교복 브랜드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이들 브랜드는 '다리가 길어 보이는 학생복' 등의 광고를 앞세워 민감한 청소년기 아이들의 욕구를 자극하며 별 다를 것 없는 학생복을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으로도 잘 팔고 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지독한 소비문화, 물질문화 속에서 자라며 브랜드문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될 확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내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는 교복이 없는데, 소위 '패션'에 빠삭한 아이들이 분명 있다. 휴게실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의류를 살펴보고 구매하는 모습도 꽤 눈에 띈다. 나는 순전히 '귀찮아서'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주로 옷을 대신 골라주는 동생이 익히 알만한 브랜드의 옷들을 사오면 굉장히 기뻐하며, 매일 입고 다닌다.

 

이십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저자는 '어느 날 아침 집에서 볼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엄청난 각성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43쪽) 계기는 그의 '동거녀 줄리엣이 놓아둔 존 버거의 『사물을 보는 시각』이라는 책의 몇 구절을 훑어보게 된 것'이란다. 그 구절들은 요약하자면 광고들은 결국 우리들이 가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공략하여 소비를 부추긴다는 내용이다. 이 각성으로 인해 그는 자신이 여태까지 추구하던 것들이 전부 거짓일지도 모르며 단지 망상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정신적 공황기에 놓이고, 깨달음 후에도 소비는 계속 하면서도 죄책감이 들어 소비주의 항거잡지 「애드버스터즈」나 나오미 클라인의 『노 로고』, 또는 『보이지 않는 설득』같은 대표적 소비주의 반대를 외치는 책들을 사서 읽어댄다. 결국 그는 6개월 후 자신의 브랜드제품들을 전부 태워버리겠다는 극단적인 선언을 동거녀에게 하고 만다. 그 후 도서관에서 브랜드의 역사를 연구하는 한 편, 블로그를 만들어 그의 결심과 이 책의 내용인 일기를 올린다. 조금의 옹호와 엄청난 비난, 언론의 관심을 타고 결국 화형식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뒷부분에서는 달라진 그의 삶과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불안감 등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이 소비주의, 물질주의와 맞서는 책들 중에서 유일하게 지닌 특성이 있다면 바로 철저한 브랜드 중독자 본인이 쓴 브랜드 결별기, 즉 일기라는 점이다. 나름의 인용과 이론도 있지만 이론적인 부분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이야기, 하나하나의 행동을 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들과 실천적 부분(저자 나름대로의 브랜드 상품 기준이나 행동지침 같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읽기에도 굉장히 수월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 와 닿는 면이 있다. '열심히 벌어서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사는 것이 내 삶의 주된 목적이었다.'(45쪽) '더 나은 것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는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었다.'(316쪽) 이렇듯 화형식 전과 후를 가리지 않고 그의 느낌, 깨달음, 절규 등이 펼쳐져 있어 이 이야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며, 진심으로 추상적인 소비주의, 물질주의가 아닌 우리들의 일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브랜드가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품질 보증', '효용 명시' 등 브랜드의 근본적 의의와 이점들을 '조사'하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미친 듯이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와 체제, 사람들의 감정까지 이용해 광고를 해먹는 대기업과 그 광고로 인해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소비하게 되어 돈은 돈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더욱 피폐해져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저자는 분노를 느낀다. 심지어는 파렴치하게도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을 최악의 임금으로 착취하면서 소위 '고급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고 비싼 값에 물건을 파는 파렴치한 기업도 있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분노를 느꼈다.

 

그 외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소개해보겠다.

 

<소비문화는 '소유가 곧 존재'라는 강박관념과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248쪽)

 

<진정한 자유란 경제로부터의 자유, 생존경쟁으로부터의 자유, 그날그날의 생계유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삶이 불가능한 이유는 소비에 대한 감정적 의존 때문이다.>(314쪽)

 

끝으로 조금 쓴소리를 하자면 종종 보이는 사소한 오자들, 비록 '않았고'를 '않아고'라 쓰거나 한 글자가 없어진 것 같은 정도로 내용이해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이런 것이 예닐곱 군데 정도 있어 살짝 눈살이 찌푸려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좀 더 쉬운 말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자어를 남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몇 곳 있었다. 나같은 학생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배려와 신중을 기한다면 더 깔끔한 책이 될 것이다.

 

골격이나 계획도 없이 서평을 쓰다 보니 글이 중구난방 장황하면서 길이만 길어진 듯하다. 어쨌거나 물질주의와 소비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면서도 어렵지 않고 친숙한 느낌의 책이라고 하면 이 한 권의 책을 대략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닐처럼 다 불태우고 새 삶을 살 자신은 없으나 앞으로는 좀 더 '필요'에 근거한 건전하고 합리적인 소비생활(이렇게 말하니 마치 사회나 기술가정 교과서 같지만)을 하도록 노력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