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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이야기>, 스티븐 킹

참참. 2013. 5. 9. 18:20


* 이 글은 2007년에 쓴 글입니다.

* http://blog.naver.com/kimjh620/20043260821



리시 이야기

저자
스티븐 킹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펴냄 | 2007-07-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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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이 작가의 소설을 하나 읽어보겠다고 선택한 작품이 바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이 작품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처음이기에 다른 작품들과 이러니 저러니 비교해 볼 수도 없고, '이 작가의 작품'이라는 면에서의 접근은 무리이지 않나 싶다.

 

우선 이 작품에서 특기할만 했던 점은 '챌, 챈, 챔, 적보가이' 등의 특이한 신조어들을 작가가 많이 만들어 썼다는 점이다. 이 말들의 의미는 직접 작품을 읽어보면서 파악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티븐 킹이 원래 작품에 이런 것을 많이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내용면에서 리시 이야기는 퓰리처 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 스콧 랜던과 그의 아내 리시 랜던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스콧에겐 형만 하나 있고 그 아내인 리시는 네 자매의 일원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스티븐 킹에게는 형이 있으며 그의 아내는 다섯 자매 사이에서 자랐다는 것이다.(이는 작가 후기에 나온다.) 게다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점 또한 주인공 스콧이 다른 어느 소설에서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작가 본인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스콧은 그가 '부야문'이라고 부르는, 이 세계와는 조금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그가 그 세계로 건너갈 때에는 심지어 이 세계에서의 그의 모습도 사라지며, 나아가 다른 사람도 함께 데리고 갈 수까지 있다. 이 '부야문'이라는 세계는 작품에서 거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데, 아마 이 세계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상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부야문'은 스콧 랜던(어쩌면 스티븐 킹 본인)의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그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 몇 가지를 열거해보겠다.

첫째로 리시의 큰언니이면서 자해를 일삼다 '멀건이'가 되기까지하는 아만다는 그의 '부야문'과는 조금 다른 세계를 또한 갖고 있었다.

둘째로 스콧 랜던의 소설은 사실 그 세계에서 본 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작가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상으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기에 그 세계라는 것이 결국 상상의 세계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또한 '누구나 어릴 때에는 이 세계를 알지만 점차 잊어버리는데, 스콧 랜던은 이를 강력하게 믿고 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천재'라는 문구도 있다.(이사실 지금 순수 기억에 의존해 쓰는 것이라 정확한 문장은 다를 수도 있음). 이는 흔히 '동심의 세계'라고 불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뿐만 아니라 스콧 랜던은 어릴 때부터 그 자신이나 형이 자주 다치는 환경에 있었기에 그의 '부야문'에는 치유의 힘이 있는 못(연못의 못)이 있고, 아만다는 항상 '접시꽃'이라는 이름의 범선을 타고 여행한다는 소망을 지녔기에 그녀의 세계에는 '접시꽃'호 가 있다.

덧붙여 '멀건이'라는 것은 이 소설에서 정신적 문제로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가 되는 것을 뜻하는데, 작품 내에서 '멀건이'가 된 스콧이나 아만다는 다른 세계에서 못이나 범선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상태로 묘사된다.(둘 다 리시에게 구해진다.) 이를 상상 속에만 빠져사는 것은 위험하다는 작가의 충고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나의 지나친 확대해석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상상의 세계에 대한, 그리고 그와 얽혀서 스콧과 리시의 애잔한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 사랑도 굉장히 감동적이지만 나는 이 작품에서 '공상에만 빠져 사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메세지를 구했다. 소설 속에서 '부야문'의 못에 다녀온 스콧과 리시의 상처가 정말 빨리 낫고, '존 돌린'이라는 악당을 그 세계 속에서 죽여버리기도 한다. 그런 비슷한 일들이 (물론 조금 덜 직접적인 형태겠지만)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