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아파서라도 가기 싫은 곳

참참. 2019. 11. 7. 08:31

 

학원에서 중학교 3학년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내 반에는 운동하는 걸 좋아하고, 뭘 물어보면 수줍은 듯 어색하게 웃곤 하는 남학생이 하나 있다. 수업에만 들어오면 늘 지친 표정으로 졸리다고 하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오늘 따라 온 얼굴에 활짝 미소를 띠고 발걸음도 가볍게 들어오기에 뭐 좋은 일 있냐고 물었다.

"오늘 영어학원 안 가도 돼요."

"왜?"

"아파서요. 머리가 너무 아파요."

아프다고 말할 때에야 조금은 아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웃겨서 웃어버렸다. 아프다는 녀석이 여태껏 봤던 어떤 건강한 때의 모습보다도 더 좋아보였던 것도 웃기고, 아픈 게 좋은 일이라고 대답한 것도 웃겨서 더 크게 웃었다. 그러나 웃음을 그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웃긴 일이 아니었다. 아파서라도, 아파서라도 가기 싫은 곳에 몇 년 동안이나 매일매일 다니고 있다는 게 어찌 웃긴 일이 될 수가 있을까. 차라리 몸이 아프더라도 하루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저렇게나 좋아하는 녀석 앞에서, 그렇게나 싫어하는 것을 내가 지금부터 해야한다는 게 뭐가 웃길까. 그렇게 몇 년이나 꾸역구역 공부해서 결국 아파서라도 출근하기 싫어하는 직장인이 되는 게 '성공'이라면,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더 슬퍼져서 내가 내 우울에 삼켜지기 전에 애써 수업을 시작해야했다.

나조차도 썩 납득이 가지 않는, 사실 현대생물학과 이미 다른 부분이 많은 중3교과서의 생물 분류체계를 이야기했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오랜 시간동안 이런 분류체계를 세우게 된 동기와 역사와 논리를 전해주지는 못했다. 단지 이미 옛날 것이 된 이 분류체계의 세부내용을, 인생에 다시는 쓸 일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그냥 검색 한 번해서 쓰면 될 이 죽은 지식을, 시험을 위해 암기하라고 오늘도 협박을 했다.

"그래도 과학은 왔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녀석이 고맙기도, 고맙지 않기도 했다. 중학생, 고등학생들과 학원 선생님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이들은 혹시 학원 선생님을 위해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해야한다고 정말로 생각하는 건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설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당연히 학생이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공부를 하고 그걸 도와주는 역할로 선생이 있는 것이라는 상식, 적어도 그것을 지향해야한다는 생각이 혹시 환상은 아닐까 싶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내가 고등학생일 때, 나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리로는 내 삶을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은 결국 선생님,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인정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당장의 삶에 티끌만한 위안과 안정감, 자존감이라도 지키기 위해 꾸역꾸역 해나갔던 것 아닐까.

이들에게 '공부'란 무엇일까? 삶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있어 '발전'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성적이 오르는 것, 결국 누군가는 아래쪽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성적표에서 나만은 지난번보다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게 만드는 게, 정말 괜찮은 일일까? 내 수업이 그토록 가기 싫다는 영어학원 수업과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까. 쉬는 시간 줄 때마다, 수업을 1분이라도 일찍 끝낼 때마다 좋아 죽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하기 싫은 거 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그냥 집에 가서 니가 하고 싶은 거나 실컷 하고, 좋아하는 일이나 찾아보라고 늘 얘기하고 싶었다. 아파서라도 오기 싫은 곳, 나도 더 이상 그런 곳에서 널 기다리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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