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자연농/홍천 귀농귀촌 일기(2017~2018)

170430 일기 - 오로빌리언 수다와의 만남

참참. 2017. 5. 2. 07:09


일요일엔 집에서 좀 쉬었다. 물론 집에 있어도 할일은 많다. 짐을 줄이기 위해 다시 안 보니까 팔아버릴 책도 좀 골라내고, 모야님이 자신과 아내가 직접 쓰기 위해 만든 영농일지 플랫폼(너와나의농장->모두의농장)에 문의했다가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도 거기에 영농일지를 쓸 수 있게 해주셔서(!) 그동안 쓴 농사일지도 거기에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옮겨놓기도 했다.

그러다가 개구리님께서 그 날 낮에 카톡주신 걸 보고 저녁 8시에 개구리님 사랑방으로 이파람 올빼미 공벌레 모래무지와 내가 모였다. 갑작스런 번개의 이유는 솔밧과 수다의 방문! 솔밧은 우리 부부도 큰 영감을 받았던 다큐 자연농 (http://www.finalstraw.org/ko/)을 제작한 분이고, 수다는 인도 땅에 있는 유명한 생태/영성/국제..공동체 오로빌에 5년째 살고 있는 오로빌리언이다. 오로빌 (http://www.auroville.org/)은 상당히 많이 알려져서 나도 여기저기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관심이 있었다. 아마 이런 생태적, 대안적 삶을 고민하는 분들은 그쪽 공동체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할 만하다. 얼마 전에 우리의 친구 알록이 다른 친구와 함께 오로빌 옆의 사다나 포레스트에 다녀오기도 했었다. 개구리님의 여러 인연으로 쉬이 접하기 어려운 이런 이야기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니, 서울에서 각종 강연 찾아다니는 것 못지않은 엄청난 문화적 혜택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다수의 사람 앞에서 한정된 시간에 정해진 이야기만 하는 강연과 비할 데도 못 되는데, 오로빌에서 직접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서울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샨티에서 만난 근호 선배도 엄청 궁금해했었던 것 같은데.

수다는 5년 전 서른아홉 살의 12월 30일 비행기를 타고 마흔에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 뜻대로 살아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오로빌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오로빌에서 살게 됐다. 수다도 대략 그런 느낌으로 말했는데, 정말 우리네 삶이란 게 '어쩌다보니'의 연속인 것 같다. 우리 부부 홍천온 것도 뭐 몇년씩 계획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다. (내가 진짜 재밌게 읽은, 좋아하는 책 중에 '어쩌다보니 그러다보니'라는 책이 있는데 내용과 그 분의 삶도 참 멋지고 제목도 진짜 잘 지었다.)

여튼, 한국에서 건축가(건축설계사?)로 계속 일하다 거기로 가게 된 이야기, 그곳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어떤 일들을 했는지 어떤 것들이 흥미로운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 오로빌이 어떤 꿈(Dream)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떤 갈등이 있는지 게스트, 뉴커머(?)(완전한 오로빌 주민인 오로빌리언이 되기 전 단계라고 한다), 오로빌리언을 거치면서 어떤 마음가짐의 차이를 겪었는지(난 계속 여기 살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진다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그렇게 된 것과의 차이는 마음을 열고 영어실력이 확 늘어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느끼신 듯.)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다라는 닉네임은 산스크리트어로 순수함(?) 정도의 뜻이라고 소금쟁이님께 전해들었는데, 그러나 수다라는 한국말의 의미 때문에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라는 이어지는 말에 수긍할 수 있을 정도였다.ㅋㅋ 초반에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여주셔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곳의 삶을 더 시각적으로,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었다. 물 문제라든가, 집문제라든가, 역시 경제적 자립 문제라든가, 오로빌 주변의 그냥 인도의 지역에 사는 인도인 지역주민들과의 관계라든가 여러 쉽지 않은 문제들 이야기 덕에 확실히 현실적이었다.

5년동안 뭘 했나 했더니 연애 찐하게 했잖아!라는 말을 다른 한국인으로부터 들었다는, 스페인사람 '후안'도 궁금하고. 후안은 특히 오로빌에서 커뮤니티농장을 하고 있는데(다른 인도현지인 오로빌리언과의 갈등으로 2년이나 과정을 거친 끝에 결국 절반으로 나누는 일로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개구리님이 또 자연농을 하고 계시니까 더더욱 한국에 와보고 싶다고, 이번엔 못 왔지만 다음엔 오겠다고 한다. 이쪽에서 잠자리를 제공해주면 우리가 오로빌에 놀러갔을 때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식으로 서로 돕자고 이야기를. 그쪽은 땅이 워낙 척박해서(원래 황무지였던 곳에 나무를 계속 심어서 지금과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로빌이 시작된 50년 전에 심은 나무들이 지금도 거기에 크게 자라있다고) 농사가 쉽지 않고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지마나 식량자급이 되는 작물도 있고 전혀 생산되지 않거나 양이 모자라는 작물도 있어서 해외 유기농 식재료나 인도 근처 지역에서 사오는 것들도 많다고 한다.

오로빌 중앙펀드에서 주는 생계유지비는 정말 얼마 안 되지만 그것으로 사는(오로빌에서 산 지 20년이 넘은 수다의 베프 후안같은) 오로빌리언들과 연금 등 자기 나라에서 벌어두었던 돈으로 혹은 매년 어느 시기에 자기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와서 오로빌에서 쓰는 식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후자쪽이 조금 더 많은 비율로 있다는 것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후안은 '필요하게 되면, 또 간절히 원한다면 어떻게든 생기게 된다'는 걸 믿고 실제로 그런 경험을 계속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수다도 점점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그런 쪽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나도 역시 책으로 읽었고, 또 그런 경험들을 직접 하기도 해서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정말 가진 게 없고, 필요하고, 원할 때(반드시라곤 할 수 없지만) 그저 주어지는 것들이 무지 많고(혹은 그것들이 그저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자각할 수 있고) 그게 살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거의 가진 돈도 없이 수원에서 문경까지 걸어갔던 여행에서 그런 행운들, 그런 사람들(그 전에도 후에도 알고 지낸 적도 없는)을 믿을 수 없을만큼 계속 만났다. 이렇게 각박하다고들 하는 세상에서.

오로빌은 역시 멋진 곳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모두가 자원활동의 개념으로 생계유지를 위한 일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고 자신의 재능을 찾고 키울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생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짛야한다는 점. 누가 무엇을 하려고 하든 웬만하면 지지해주고 또 돈은 없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네트워크(오로빌에 사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능력자들)를 총동원해서 그 일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일상이라는 점. 기본적으로 개인의 성장(특히 영적인 성장, 종교공동체는 아니지만.)이 공동체의 성장이며 공동체의 기반(?)이라고 여긴다는 점, 그래서 누구도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모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기 위한 명상(오로빌 중앙에 있는 오로빌의 상징인 건물 등) 등을 계속하고, 그런 워크샵이 오로빌 전체에서 끊임없이 열리고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등. 세계 각지에서 현대 사회의 대안이나 영적인 성장 등을 찾아서 굳이 찾아오는 사람들이니까 기본적인 의식이 높은 거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람이고 다 다르고 또 워낙 여러 곳에서 오다보니 문화 차이도 있고 힘든 점도 많지만, 그 정도로 비슷한 의식을 갖고 있는 전세계사람을 한번에 보고 어우러지고 서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수다는 지금도 역시 '나는 앞으로 평생 오로빌리언으로 오로빌에서 살 거야'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오로빌을 떠날 것 같진 않다. 이파람은 이야기를 듣고 오로빌에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 다시 한번 더 생겼나보다. 난 솔직히, 들은 이야기들로만 봤을 때 지금은 여기가 더 좋은 것 같다. 그 멀리까지 갈 생각에 겁부터 나기도 하고. 여행에 로망과 호감을 갖고 있지만, 생각보다 여행을 자주 계획하지 않고 생각보다 집구석을 좋아하는 나일지도. 게다가 지금은 여기서 내가 충분히 평화롭고 행복하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개구리님과 여기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덕분에 이런 인연이 또 생기고, 먼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전과 즐거운 일들을 듣는 것은 또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거기에 꼭 가지 않더라도, 그런 곳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 이야기를 듣는 자체가 즐거울 뿐만 아니라 많이 힘이 된다. 최근에 읽은 개구리님과 올빼미의 추천도서 '나비문명'의 '지구인' 이야기가 많이 생각났다. 한국인, 일본인하는 식으로 생각을 하지만 이제는 '지구인'이 되어야한다고. 일본 사람이 쓴 책인데, 옛날 사람들은 일본이라는 나라로 통일되기 전이라서 일본의 한 지역인 히고 번에 있으면 '히고번인'이라는 식으로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않냐면서. 국가라는 것은 그저 카펫일 뿐이고 그 밑에 있는 대지가 더 본질적인 것이며, 우리는 지구에 사는 한 그런 면에서 운명공동체적인 측면이 있고 거기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내가 이해하기론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전부터 히피 등으로 그런 의식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성장해가고 있다고. 일본인이나 한국인, 미국인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는 지구인이라고. 그런 의식 속에서는 서로 전쟁같은 건 당연히 할 수도 없는 것이지 않겠나. 저자는 히고번인들이 이젠 자연스럽게 나는 일본인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듯 지금은 나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앞으로는 나는 지구인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그쪽으로 의식이 변화해가고 있다고 썼다. 그런 방향이 발전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과연 외계인이 침략전쟁이라도 걸어오기 전에 대다수의 지구인들이 그런 의식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바로 오로빌에 사는 2500명(50년 전 프랑스인 '마더'가 세웠던 마스터플랜에서는 오로빌 주민 수의 목표가 5만명이라는데..)의 전세계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그런 지구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오로빌은 어떤 공동체냐 생태공동체라고도 알려졌고 여러 방면으로 알려졌지만, '국제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는 수다의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아마 나비문명을 쓴 사람이 말한 '지구인'의식을 가진 세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느낌이 아닐까. 우리도 여기서 자연농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의 자급자족, 건강한 먹을거리 등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이것이 인류와 지구, 모든 생명과 환경들이 지속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까 우리도 그들과 지구인 의식을 공유하는 것 아닐까싶다. 개구리님이 크게 보면 우리도 오로빌의 큰 외연에 들어가는 것 아니겠냐고 말씀하신 것도 아마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