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자연농/홍천 귀농귀촌 일기(2017~2018)

170420 자연농 농사일지 - 자밭, 삼각형밭(풀 덮는 이유) / 비빔밥, 동물, 언니네텃밭

참참. 2017. 4. 21. 07:21

점심 먹으러 가면서 본 동물 사체의 일부. 19일에도 가죽과 털을 한덩어리 봤는데, 그 녀석의 다른 부분인 것 같다. 멧돼지일까? 그렇다면 멧돼지를 먹은 동물은!? 이파람이 진달래 따다가 목격했던 담..비..?!


지난 주부터 밭일하는 날이면 계속 이렇게 점심을 먹고 있다. 밥과 고추장, 들기름만 싸가서 둘레에 널려있는 봄나물들을 뜯어서 비빔밥을 해먹는다. 개구리님과 자연농 배우러 곰실에 모인 사람들 모임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는데다, 간편하고 개구리님 숲밭에서 뜯어도 된다고 하셔서 자주 먹고 있다.

진짜로 뜯어도 뜯어도 금방 또 나오고, 무지 맛있다! 방금 뜯어서 물에 바로 씻어 먹는 봄나물이라니, 시장에서 사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는 거 같다.

여기 들어간 풀들은
- 개망초(나중에 계란후라이같은 꽃이 피는 어디든 흔하게 있는 녀석, 먹어본 것은 작년이 처음)
- 부추(이렇게 맛있는 부추가 있다니!)
- 파드득나물(이거 진짜 맛있다!게다가 한번 심으면 그냥 계속 나와서 매년 먹을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
- 겹꽃삼잎국화(이름이 어려운데 여기 분들은 그냥 키다리노랑꽃, 꽃나물 등으로 부른다. 향이 독특하고 맛있다)
- 곰취?곤달비?(곤달비가 보통 곰취라고하면서 많이 팔려서 이제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 엄밀히 따지면 곤달비와 원래의 곰취는 다르지만 이제는 그냥 곤달비도 곰취라고 부른다고 한다. 곰취가 좀 더 잎이 크고 향이 강한데 애초에 비슷하게 생겼다. 우리가 요즘 먹는 게 둘 중에 뭔지 나도 헷갈린다.)
- 눈개승마(김보영 작가님의 호연농장에서 사먹었었는데 이젠 여기서 뜯어먹고 있다.)
- 쇠별꽃


어제(20일)도 그제(19일)에 이어 열심히 고랑을 파서 이랑을 만들었다. 새로운 시도에 재미가 들린 우리는, 자연의 '자'자인 스스로 自모양 밭을 만들었다. 올빼미 설계.

이런 삼각형 밭도 만들었다. 이건 숟가락밭(19일)과 자밭 사이 땅으로 만들었다. 공벌레 설계.


자연농 논밭은 항상 풀과 볏짚 등을 덮어둔다. 지금까지 내가 배운 바로는 아래와 같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자연농이 지닌 철학적 의미로 보았을 때 자연농은 기본적으로 그 밭이나 논에서 원래 나온 것이 아닌 '외부'에서 뭔가를 추가해 넣지 않는다. '외부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건 화학비료나 유기농 퇴비 등을 보통 말한다. 대신 그 땅에서 난 풀들, 벼를 키웠으면 쌀을 수확하고 남은 볏짚들같은 것들을 그 땅 그 자리에 다시 돌려준다.(정히 없을 때는 등겨라든가, 갈대나 낙엽같은 것을 주변에서 가져다가 주거나, 덮기도 한다) 최대한 본래 자연에서 일어나는 대로 두고 인간이 뭔가 거기에 추가하거나 손을 대는 것은 금새 수확량을 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알 수 없는 생태계를 건드릴지 인간의 능력으론 다 파악할 수가 없고,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짓일 확률이 거의 100%라는 게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생각이었다(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쉽게 이해하고 있는 그 이유들은 이렇다.
1. 그 자리에 났던 풀들, 수확하고 남은 볏짚 등을 그 자리에 다시 놓아둠으로써 그것들이 땅으로 돌아가 땅의 양분이 된다.(비료의 역할)
2. 작은 동물, 벌레, 미생물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잘 살 수 있도록 생태계를 보호한다. 저렇게 덮여있어야 햇볕이 직사광선으로 들어오지 않고 저 사이사이에서 작은 벌레나 미생물들이 살기 좋다. 현재든 과거에든 많은 농사에서 벌레는 적으로 간주되어 농부는 벌레를 죽이는 것에 힘썼지만, 자연농은 무엇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농사라는 행위로 인해 어떤 작은 생태계도 파괴되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하고, 그것이 땅이나 농사에도 결과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흔히 알려진 지렁이처럼 많은 벌레와 미생물들이 자연적으로 땅이 건강해지도록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 여러 벌레가 공존해야 천적관계 등으로 오히려 한 종의 벌레가 엄청나게 증식해서 작물들을 다 갉아먹는 이상현상같은 것이 발생하지 않는다.)
3. 땅 표면에는 언제나 풀씨들이 잔뜩 떨어져있는데, 이것들이 햇빛을 잘 못보게 해서 풀이 덜 나게 만든다. 작물이 아닌 풀들은 어떤 농사에서나 가장 큰 고민이다. 자연농은 이 풀들을 '적'으로 여기진 않지만 역시 내가 심은 작물보다 먼저 자란 풀들을 모두 그냥 두게 되면 원하는 작물을 수확하긴 어렵다.(그래서 후쿠오카 마사노부같은 경우엔 거의 '재배'가 아닌 '채취'에 가까운 형태로 살았다. 여러가지 종류의 씨앗을 하나로 뭉친 점토단자(진흙경단)을 근처 숲에 뿌려두고 살아남아서 자란 녀석들이나 원래 야생으로 자라던 녀석들만 먹는 식으로.) 그래서 적어도 작물을 심을 때나 작물이 아주 어릴 때에 작물 바로 근처에 난 풀들은 베어서 눕혀주거나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여러해살이풀(쑥 같은)이라면 뽑아주어야한다. 그래서 농사 시작 전에 풀이 좀 덜 나게 만드는 건 자연농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4. 땅에 직접 햇볕이 닿지 않게 해서 땅이 금방 말라버리는 것을 막고 습기를 오래 유지시킨다.


(모임 끝나고 집에 가려니 애진언니께서 밀짚모자에다 직접 농사 지으신 표고버섯 먹으라고 주셨다. 진짜 이 버섯 너무너무 맛있다. 대박 ㅠㅠ) 

밭일하고 있는데 언니네텃밭에서 단장 애진언니께 전화가 왔다. 오늘 언니네텃밭에서 언니네장터공동체 일로 전체 회의를 하는데 와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자고. 언니네텃밭은 여성농민회의 사업이다. 언니네텃밭의 생산자가 된다는 것은 곧 여성농민회의 회원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 농민 이파람의 남편으로 같이 갔다. 우리가 벌써 '농민'이라고 칭해도 되는 걸까, 민망. 실제로 그분들의 농사규모나 노하우, 내공들을 보면 우리는 '소꿉장난'이다.

그래도 자연농이라는 또 다른 세계(그분들은 보통 무농약이나 유기농 농사)를 존중, 이해하며 함께가는 쪽으로 생각해주시고 고민해주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자연농이라는 것 자체가 그리고 우리의 농사 역량이나 땅의 규모상 장터에 올려서 판매할 만큼 대량으로 나올 작물은 별로 없을 거 같아서 고민이지만, 그래도 대다수 농민들이 따르는 유통구조에 비하면 언니네장터, 언니네텃밭꾸러미 등은 비교적 소규모의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거래로 판매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서 재배한 것이 아닌 야생에서 채취한 진달래나 쑥 등으로 우리 농사로는 얻기 어려운 '현금'소득을 올리는 방법이 될 수 있어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생활을 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