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기타

식당에 대하여

참참. 2017. 1. 12. 20:32

우리나라처럼 외식을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프랑스에 여행 가서 외삼촌 댁에 묵으면서 느낀 것도 그렇다. 파리 쪽이었는데도 묵는 동안 식사는 계속 집에서 함께 먹었다. 물론 외삼촌네가 프랑스에서 독특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국가별 외식비율에 대한 통계같은 건 없을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에 전체 식품 소비에서 외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25.9%였으나 2007년에는 41.9%로 올랐다는 미국 농무부의 조사결과가 있단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저녁식사를 외식으로 하는 비율이 98년 20%에서 2012년 32%로 증가했고, 점심 외식은 43.8%에서 46.6%로 오르면서 45.7%가 응답한 가정식보다 많아졌으며, 아침식사의 외식비율도 15년 새 거의 2배나 높아졌다(7.3%→13.7%)고 한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외식비율이 높다면, 노동시간 때문일 거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전세계에서 경쟁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길다. 게다가 거기엔 출퇴근 시간이 빠져있다. 출근하는 데 한시간 정도 걸리는 게 보통이고 그보다 더 멀리 다니는 사람도 흔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에 하루에 왕복 두 시간 이상의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집에서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할 시간이 있는 게 더 이상하다. 시간을 짜낸다해도 그럴 에너지가 없다. 요리를 하려면 요리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뭘 할지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재료도 이것저것 사오는 등 여러 과정들이 필요하지 않나.

과거에 비해 외식 비율이 높아지는 건 우리나라만 겪는 현상은 아니다. 전세계적인 추세다. 뭐 다른 게 아니라 자본주의 때문이다. 자본주의 화폐경제는 그 전까지 상품이 아니었던 수많은 것들을 상품화했다. 식사도 그 중 하나다. 처음에 프랑스 얘길 했지만, 바다 건널 필요도 없이 불과 15년 전인 내 어린 시절만 생각해보아도 외식은 기껏해야 한달에 한번 정도 했었다. 물론 그때도 직장에 다녔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점심은 매일, 저녁도 자주 밖에서 드시긴 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듯이 조금만 더 거슬러올라가면 그렇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어디까지 '외주화'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이 꼭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부작용은 분명 있다. 첫째로 점점 더 많은 일상에 필요한 물건과 노동을 '구입'하게 됨으로써 삶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나고, 그 비용만큼 더 많은 돈을 벌어야한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하므로 노동의 강도나 시간을 늘려야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미래를 위한 저축을 줄여야한다. 둘째 질이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설령 좋은 상품을 산다고 해도 직접 만들거나 하는 것보다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돈이 많지 않으므로 저렴한 것을 찾을 땐 더 심각하다. 저렴한 식당이나 거기에도 못 미치는 편의점 음식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셋째 그걸 통해 얻는 즐거움을 잃게 된다. 뭐 즐거우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일상의 소소한 기술들을 익히고 그것들을 해내는 건 귀찮기도 하지만 나름의 성취감과 즐거움이 있는 일이다. 사람은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서 꽤나 자기효능감같은 걸 느낀다. 매일 같은 방식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시도해보고 성공하기도 하고 자랑을 하기도 한다. 괜히 수많은 사람들이 요리한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게 아니다. 굉장히 소소한 집의 문제, 가령 막힌 배수구를 뚫는다든가, 망가진 옷걸이를 고친다든가하는 일을 스스로 해내고 뿌듯했던 기억 한번쯤 있지 않나?

이런 일들이 갑자기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좀 더 건강한 식당을 찾거나 외식을 좀 줄여봐야겠지만, 우리 삶의 조건이 그리 녹록하진 않으니 한숨만 나온다. 매일 12시가 될 때마다 오늘은 또 어느 식당엘 가야하나, 맛과 건강과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서 깊은 고민을 한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매일매일 식당에서 밥을 해결하게 됐는가(도시락도 몇번 시도했지만)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