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기타

작은책 16.1월) 집, 집, 집!

참참. 2017. 7. 8.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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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

 비가 그칠 듯 그치지 않으며 일주일도 넘게 이어지던 7월 어느 날이었다. 같이 살던 친구가 자기 방으로 가다말고 집에 물이 샌다고 소리를 치며 나를 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을 흘리거나 쏟은 걸 제대로 안 닦아서 착각했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닦으려고 보니 장판 밑에서부터 물이 찰랑거리며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뒹굴거리던 쉼의 공간은 갑자기 긴박한 수해 현장으로 바뀌었다. 당황해 수건 여러 개를 물 위에 덮어버리고 집주인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윗층에서 내려오신 할아버지께서는 상황을 보시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으셨다.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우리에게 장판을 일부 걷어내고 쓰레받기로 물을 퍼내자고 하셨다. 장판 밑에서 나오는 물은 그리 깨끗하지도 않았고, 미끌거려 위험하기까지 했다. 어찌나 미끄러운지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는데, 마르고 나니 이번엔 끈적끈적해졌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공사하면서 썼던 풀이 녹아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와 할아버지의 작업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서야 대충 마무리가 됐다.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진짜 힘든 건 따로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번에 비가 오랫동안 왔기에 잠깐 그랬던 것일 뿐 앞으로는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일주일 즈음 지난 어느 날 낮에, 집에 또 물이 차고 있다는 친구의 카카오톡 쪽지를 받았다. 집에서 혼자 물 퍼내고 있을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도 편히 쉴 수가 없다는 생각에 머리는 지끈거리고 입에서는 한숨만 나왔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부터였다. 내 삶이 땅에 단단히 발을 딛지 못하고 어딘가 붕 떠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

그 뒤로는 비가 올 조짐만 보여도 불안함에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일주일에 한두 번 보던 일기예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급히 산 제습기를 계속 돌려 곰팡이가 더 이상 번져나가지는 않게 됐지만, 이미 피어버린 곰팡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내 몸은 여전히 그곳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쉬었지만 내 마음이 쉴 곳은 이제 없었다.

세 번째로 물이 차고 나서는 머릿속에, 아니 머릿속뿐만 아니라 온 몸속에 다른 살 곳을 찾아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손전화에다 직방이니 다방이니하는 광고로만 보던 온갖 어플을 깔아놓고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았다. 쉬는 날을 잡아 온라인으로 봐두었던 방들을 도봉구에서부터 1호선을 타고 내려오면서 하나씩 보러 다녔다. 미리 보아둔 방을 우선 보고, 근처 부동산에서 그 동네 매물을 좀 더 알아보곤 했다.

그리하여 결국 재개발구역인 이문동 골목에 월셋방을 하나 얻었다. 곰팡이 없는 방에 짐까지 다 옮겨놓고 나니 그제야 좀 정신이 돌아왔다. 큰 재산 없는 사람이 서울하늘 아래 방 한 칸 구한다는 건 참말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신문에서나 보던 집없는 설움같은 말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힘든 와중에 고마운 일도 많았다. 우선 말도 못하게 싼 가격에 오랜 기간 걱정없이 살게 해주시고, 이런 일이 생겨 미안하다며 이사를 갈 수 있도록 보증금도 바로 빼주신 최상천 형님, 최성희 누님 부부와 최대해 할아버지께 가장 고마웠고, 집을 알아보는 내내 염치 불고하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대는 내게 많은 도움을 준 민달팽이유니온의 황서연 공인중개사한테도 참 고마웠다. 그뿐인가 갑자기 이사한다고 연락했는데 선뜻 트럭까지 끌고 와 이삿짐을 날라준 청년연대은행 토닥 강인영 조합원과 고등학교 친구 기범이와 상호도 빼놓을 수 없고, 페이스북을 통해 필요하면 차를 빌려주겠다는 연락과 집값이 싼 동네를 알려주겠다는 연락을 주셨던 분들, 여러 진심어린 걱정과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께도 그때 미처 다 못한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문동에 와서는 도꼬마리라는 (작은책이 놓여있는!)마을공동체카페와 그 공간을 운영하는 공동체를 만났다. 운 좋게도 내가 새로 살게 된 골목 앞에 그 카페공간이 있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동네에 와서 뭘 물어보거나 소소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웃을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문동에서는 도꼬마리라는 공간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 덕에 그 골목이 겨우 한달 만에 친근한 느낌으로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참 고맙다. 이런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더 만나게 됐으니 따지자면 얻은 게 훨씬 더 많다.

다시 집 이야기로 돌아오면 여름의 한바탕 소동은 끝났지만 집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사는 곳의 월세는 서울의 시세를 생각하면 싼 편이지만, 매달 월급의 4분의 1을 월세로만 내야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재개발 인가가 나서 내년엔 헐릴지도 모르는 건물인 데다 겨울이 되니 가스비도 걱정이다. 걱정을 좀 덜려고 SH공사에서 임대해주는 원룸도 신청해둔 상태인데 당연하게도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게다가 새로운 고민도 생겼다. 사귀는 사람과 일이년 내에 결혼을 하고자하니 또 집 문제가 거대한 벽처럼 서있는 거다.

몇 년 뒤에는 시골로 내려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땐 직접 집을 지을 생각도 하고 있다. 돈이 없으므로 아주 작고 싸게 지을 거다. 그 준비로 10월에는 사귀는 사람과 함께 자연재료로 작은 시골 집짓기 워크샵에도 다녀왔다. 5일동안 설계하고 도면을 그리는 일부터 서까래를 올리는 것까지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다. 강원도엔 이른 추위가 찾아왔었지만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도 따뜻했고 집 짓는 과정은 즐거웠다. 집이란 것이 거대한 자본과 기계로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그러고보면 불과 몇십년 전까지도 보통 사람들은 가족과 마을 단위에서 집을 짓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앞으로 서울에 계속 살든, 계획대로 시골에 내려가서 살든 집에 대한 고민은 분명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 고민이 재산으로서의 집이 아닌 지친 몸을 누이고 편히 쉴 수 있는 집,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지어 함께 먹을 수 있는 보금자리로서의 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계속 머물렀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나도 공기 좋은 곳에 집을 직접 짓고, 떠나야한다는 걱정 없이 살고 싶다. 그런 집을 지으면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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