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이다.
내일 나는 녹색당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1.
행복하다. 진심으로 찍고 싶은 당이 있어서. 비록 지역구에는 도무지 찍고 싶은 후보가 없어서 슬프지만, 두번째 투표지에는 내 한 표를 꼭 보내고 싶은 당이 있어서 정말 기쁘다.
다행이다. 투표날 정치를 냉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기쁜 마음을 안고 투표하러 갈 수 있어서. 아는 사람들에게 찍어달라고 마구 얘기할 수 있는 당이 있어서. 한 명이라도 국회에 간다면 분명 우리 사회를, 내 삶을 내가 살고 싶은 곳으로 조금이나마 움직일 거라 확신하는 당이 있어서.
마치 지구인들이 모두 힘을 모아 외계인을, 악마를 몰아내야한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리는 이야기들이 있다. 새누리당만은 막아야하니 '사표'를 만들지 말고 '야권연대'해야한다는 이야기들이다. 나도 그 누구 못지않게 새누리당 싫어한다. 아주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그러나, 새누리당을 막자라는 구호를 들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새누리당과 별 다를 것도 없는 정책과 공약, 그리고 사람들을 갖고 나온 다른 당은 절대로 새누리당에 맞서 내 삶을 바꿔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러한 논리로 끝없이 그들을 찍어준 결과가 바로 지금의 이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찍을 수 없다. 그들을 찍는다는 건 지금의 사회를 인정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겠다는 결심이나 마찬가지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내가 정말로 지지하는 정책, 내가 정말로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정당과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없애버리는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투표가 반복된 결과, 우리는 두 거대 보수정당의 기득권 싸움이 곧 정치가 되어버린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난 평생 그런 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도 없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설령 녹색당에서 단 한명도 국회의원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난 괜찮다. 그렇다고해서 내 표가 '사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기는커녕 개표 결과에 집계된 내 표는 소리없이 이렇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강렬하게 원하는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이 사회에 살고 있다고.
그 열망을 계속해서 표로 보여줄 때만,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정책과 공약과 사람을 국회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녹색당 국회의원을 직접 국회에 보내는 형태로든, 거대정당들이 표를 얻기 위해 녹색당의 정책과 공약을 내걸고, 그러한 사람들을 비례대표로 올려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형태로든 간에 말이다.
2.
내가 녹색당에 가입한 이유는 탈핵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물리학을 전공했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물리학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만두기 전에 들은 1, 2학년 전공과목조차도 거의 다 성적이 나쁠 정도다.
그럼에도 내가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핵발전은 답이 아니라는 거다. 처리하지도 못하는 방사성 폐기물, 어쩔 건가? 핵발전이 경제적이라는 건 인류차원에서도 감당못하는 쓰레기의,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처리비용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계산한 결과일 뿐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사고의 위험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진부하지만 문자 그대로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거다. 터지면 정치고 나발이고 없다. 지금까지의 국가 재난에서 보여준 대처 수준을 생각하면, 정말 끝장이다. 최첨단의 과학기술인 원자로의 부품을 빼서 페인트 새로 칠해서 넣고 교체했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뻔뻔함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원전이 안전하다고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 그건 내 이성에 대한 반란이자 모욕이며, 정신적 자살의 강요이므로.
그러한 계기로 가입한 정당이었는데, 지도부가 따로 있고 평당원이 따로 있는 정당이 아니라서 더 마음이 갔다. 물론, 녹색당이 이 이상 거대해지고 더 긴 역사를 지니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구조부터가 다르다. 다른 당처럼 녹색당 어느지역위원회, 협의회하는 식이 아니라, 과천녹색당, 마포녹색당, 서울녹색당하는 식으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앙당이 있고 그 중앙당의 하위조직으로써 지역조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녹색당들이 모여 전국녹색당을 이룬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이름인 것이다.
사실 그리 깊숙이 참여해본 게 아니라서 민망하지만, 그동안 정말 대단한 저명인사, 경력자 등이 아니라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무슨 연설 시작하면서 하는 인사치레로서가 아니라 정말 한사람 한사람의 당원이 정치적 주체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
이번 총선에선 의왕과천 지역구의 홍지숙 후보 출마와 선거운동을 보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보통 사람들의 정치를 하자고 얘기하면서 나는 왜 후보가 되지 않으려고 하나?"라는 질문에 답하려, 그는 출마했다. 나는.. 이보다 더 멋진 국회의원 출마의 이유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의왕과천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 유감이다.
3.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사회의 발전에서도.
'발전'이란 게 과연 무얼 뜻하는가. 거기에서부터 이 사회에 살고있는 참 많은 사람들과 우리는 의견이 갈릴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등에 '내 기준에서의' 근본적인 차이가 없는 이유다. 바로 그 낱말의 정의부터 다르기 때문에.
투표로 바꿀 수 있는 건 사실,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대학등록금, 그것조차도 프랑스 대학생들이 투표해서 바꾼 게 아니다. 그럼에도, 투표라도 하겠다.
내 삶에 투표하겠다. 내가 모인 우리에 투표하겠다. 나 하나로는 티도 안나는 집계상의 숫자 1일지라도, 당당히 내 목소리를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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