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세미나를 하면서 헤어드레서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미용을 공부한 아주 뚱뚱한 여자가 이혼을 하고 딸과 함께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혼을 하고 베를린으로 이사를 온 쾨니히는 고용센터에 가서 일자리를 알아본다. 마침 백화점 미용실에 자리가 하나 있다. 그러나, 아무나 받겠다던 미용실 사장은 갑자기 그를 고용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쾨니히의 면전에 대고 말하는 그 이유라는 것은, '당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볍게(?) 시작한 이런 차별은 영화 내내 일상 속에 배경처럼 깔려 있다.
근데 재밌다. 웃기다. 제일 웃겼던 건 병원에서 MRI를 찍어야하는데, 이 좁은 곳에 어떻게 들어가냐며 결국 못 들어갔던 장면이었다. '의사가,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차별한다고 느끼시면 안됩니다.'하는데, 이때 쾨니히가 하는 말이 '그럴리가요. 차별당하는 게 제 특기인걸요.'라고 한다. 이 대사는 참 씁쓸하지만, 그 다음 나온 장면에 정말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옆에는 말들이 히힝거리면서 서있고, 무려 지게차에 매트를 올리고 그 위에 쾨니히가 '실려서' 옮겨지고 있는 장면이었던 거다. 결국 말들의 MRI를 찍는 거대한 기계가 그가 말한 '다른 방법'이었던 것. 하하하. 의사는 '콜 수상도 이걸 이용했죠.'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런 장면장면들이 이 영화를 비장하게 인상 찌푸리며 봐야하는 영화가 아니라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불편함을 남겨주는 참 괜찮은 영화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한 미용실에서 일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웃고 있다. 아름답지 않아서 고용 못하겠다던 그 사장이 받아주겠다고 했을 때, '거기서 머리를 자르느니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말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사실 처음에는 뭔가 여성주의적인 걸 찾아야겠다. 여성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억압이 뭐가 있지? 이 영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하지? 이런 일종의 강박을 갖고 봤다. 근데 금세 무장해제되서 웃으면서 보다가 영화가 끝났다. 끝나자마자, 악! 세미나 가서 이 영화에 대해 무슨 얘길 해야하지? 무슨 생각을 했어야 하는 거야? 이러고 있었다. 하하하.
그냥 당당하게, 즐겁게 사는 마지막 모습. 지금은 일단 그걸로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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