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청년유니온 기자단

한겨레 오피니언훅에 실은 글.

참참. 2013. 7. 27. 10:35



청년유니온의 이름으로 한겨레 오피니언훅에 연재되는 일(job)상다반사 라는 코너에 차례가 돌아와 글을 썼다.

제목은 '일상의 문제'. 

신문에 칼럼을 써보는 게 꿈 중의 하나였는데,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하하하, 신기하다.

한겨레라는 나름 메이저 신문 사이트에 글이 올라간다고 하니까, 뭘 써야할지 참 난감했다.

할 수 있는 건 결국 내가 경험한 내 이야기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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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문제

5시 50분 기상, 7시 40분 첫 수업 시작, 밤 12시 자습 끝.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일과다. 전원 기숙사 학교였고, 집에는 한달에 한번, 2박 3일 갈 수 있었다. 여름방학은 3박 4일, 겨울방학은 4박 5일 정도 됐던 걸로 기억한다. 나머지 방학기간은 학기 중과 다를 바 없었다. 집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하루종일 자습에 자유시간은 2시간 남짓 주어졌다. 그렇게 3년을 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종일 강요되는 학습노동과, 자유롭지 못한 생활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한때는 그 시절을 무척 원망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 그때 그런 일상을 겪으면서, 비로소 그동안 한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질문은 도대체 공부를 왜 해야하는가에서 시작했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하던 《88만원세대도 읽고, 학벌사회》같은 책들도 읽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의 삶과 행복을 미래로 유예시켜가면서까지 공부해야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결국 내가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일상은 나 자신이나 부모님, 혹은 학교나 선생님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닿게 됐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힘들면 전학을 가든가,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면 되지 않느냐고. 그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힘들면 때려치우고 다른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들의 환상과는 다르게 더 좋은 다른 곳이란 딱히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힘들었던 것도 우리 학교가 특별히 더 자유를 빼앗는 나쁜 학교여서가 아니다. 그런 학교가 생기고 운영된다는 것, 거기에 들어오고 싶다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그런 비인간적인 생활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반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보통 정치나 사회라고 하면 우리 일상과 굉장히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허나 여성주의에서도 말하듯, 실은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내 일상을 온통 채우고 있던, 살인적인 학습노동과 자유의 박탈은 내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서울대와 몇몇 명문대로 집중된 권력구조와 학벌로 서로 뭉치는 문화, 뿌리깊게 자리잡은 대학서열화라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고등학생이던 내 일상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일상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 정치적인 문제다. 노동,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환경 등 어떤 운동이든 결국 그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삶의 모습들을 바꾸어놓는 것 아닐까? 그렇게 바꿔내고자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상일 때, 그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덧붙여 진정한 연대란 타인의 일상과 그 속에서 받는 고통을 상상해낼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나는 우리가 매일의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빼놓고는, 어떤 논리적인 언어로도 다른 사람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일상을 바꾸고자 모인 청년들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청년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다. 청년유니온의 이름으로 한 대표적인 활동이 피자 30분배달제 폐지이다. 배달알바노동자에게 피자배달을 30분만에 해야하느냐, 그러지 않아도 되느냐는 일상의 차이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문제다. 올해에는 서울시와 '청년일자리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의 주요내용 중 하나가 표준이력서이다. 사람을 뽑을 때 학벌 등으로 차별할 수 없도록 기재란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런 작은 걸음들이 모여 우리 일상을 바꿀 것이다. 그곳이 아무리 먼 곳이어도, 한걸음씩 꾸준히 걸어가는 것만이 그곳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우리 목소리를 내는 일들, 그래서 우리 일상을 바꿔나가는 일들을 함께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내가 청년유니온 조합원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