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마음이 머무는 구절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중에서

참참. 2013. 7. 22. 21:38



두려움, 의혹, 불안 등은 불필요하게 근육을 긴장시키는 생리적 효과를 낳는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이를 '신체의 갑옷'이라 불렀다. 연주하려고 '애쓰는' 경우 나는 실패한다. 억지로 연주한다면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달려가려 하면 넘어져 버린다. 실수할지 모른다는 걱정은 틀림없이 그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강해지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스티븐 나흐마노비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89쪽)


내 일상의 경험들이 떠올랐다. 탁구를 칠 때도 '어떻게' 쳐야겠다는 생각이 근육을 경직시키는 순간, 항상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기타를 칠 때도 분명 끝까지 칠 수 있던 곡인데, 가만히 두면 손가락이 알아서 다음 칠 곳을 찾아가는데, 머릿속으로 다음이 뭐였는지 생각을 하면 갑자기 다음 부분을 칠 수 없게 되곤 했다. 이런 곳에서 실수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꼭 그곳에서 실수를 하게 되더라. 

약한 부분이 없어야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강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니. 비슷한 말들을 전에도 들어본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데, 들을 때마다 좀 더 의미가 와닿는 것 같다. 아직도 좀 뜬구름잡는 이야기같은 느낌이 조금은 남아있긴 하다. 그렇지만 취약한 부분을 숨기고 부정하면서 강한 척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는 점이 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은 확실히 인정하는 것이, 나도 속편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을 편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잘못을 했으면 시인하고 사과하고 바로잡는 것이, 어렵지만, 마치 지는 것 같지만 실은 제일 좋은 방법이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기는 방법이다.

그건 내가 아닐거야, 나를 부정하지 말고 그 취약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역시 나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성장하는 거겠지. 여전히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쉽게 되진 않지만, 무슨 일이든 꾸준히 연습하는 것만이 그 일을 쉽게 만드는 유일한 길일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