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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과 행복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참참. 2013. 5. 9. 16:50

* 이 글은 2011년 1, 2월에 걸쳐 썼고, 생활도서관 관지 <No를 저어라! vol.2>에 실은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kimjh620/20122817749



우리나라 교육과 행복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김진회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했는가? 지금은 행복한가? 미래에는 행복할까?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인가? 초, 중,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만 가면, 대학 때는 취직만 하면, 취직하면 승진만 하면, 집만 사면, 애 대학만 보내면, 애 취직만 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가 다 될 때까지 항상 미래를 위해 현재에는 행복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획일화된 미래와 극심한 경쟁, 서열로 인한 폐해다. 아직 인생의 가치나 목표, 제대로 된 ‘자신의 생각’을 확립하기도 전부터 경쟁의 지옥 속으로 아이를 밀어 넣는 교육. 성인이 되기도 전부터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면서 그런 획일화되고 과열된 점수 경쟁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문제부터 손을 대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 대다수 사람들이 나만의 행복을 찾기가 막막하다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무슨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가장 소중한 이야기

식상하지만 가장 소중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나라의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실은 20대와 30대까지도 그렇다. 삶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10대에 죽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운데 그 죽음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것이라니, 이 얼마나 황당하고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인가. 우리나라는 OECD회원국 평균 자살률을 훨씬 웃도는 압도적인 수치로 OECD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스스로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조사한 주관적 행복도 조사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취침시간부터 최하위를 기록했고, 초등학생 때도 입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서울대, 연고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위 1.5% 안에는 들어야하는데, 그걸 위해 그 어린 시절부터 경쟁, 경쟁을 외쳐야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도록 잠을 못 자면서까지 말이다.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아수라의 질곡에서 구해야 한다. … 어린 시절을 온통 좁은 공간에 가두고 학습노동을 강요하는 사회가 온전한 사회일 수 없다. 등급과 석차 스트레스, 상위권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아이들을 자살로까지 몰아가는 현실을 용인한 채 우리는 인권을 말할 수 없고 상식과 정의를 말할 수 없다. 인권이 침해당하는 교육현장에서 인권의식 형성을 기대할 수 없고, … 연대의식도 기대할 수 없는 학벌 경쟁은 소수의 경쟁 승리자들이 누리는 부와 지위와 권력을 더욱 강고히 하기 위한 것 이외의 목적을 찾을 수 없다.1)

 

패배감, 이기심의 내면화

경쟁 스트레스 뿐 아니라 학벌로 인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지니게 되는 패배감과 뿌리 깊은 이기심의 내면화도 심각하다. 이 패배감은 소위 명문대라고 할 만한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조차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결국 서울대라는 하나의 대학교가 그 정점에 있고 나머지는 누가 뭐라고 하든 그 밑에 있는 것이 현재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생이 아니고서는 누구나 ‘올려다볼’ 곳이 있다는 뜻이다. 이 문제가 심각한 문제라는 건 2000년 12월, 4수를 하고도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한 수험생이 신림동의 한 여관방에서 음독자살했다. 그는 그해 고려대 경영학과에 특차 합격한 상태였다. 유서에는 “아무래도 고려대에는 다니지 못하겠다”고 적혀있었다.2)는 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과연 고려대와 서울대 경영학과는 죽음을 선택할 만큼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극단적인 예라는 건 인정하겠다. 허나, 그만 특별히 이상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살을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4수까지 하면서 서울대에 가려는 것을 공감하는 이가 많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패배감은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장면 속에서도 늘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소개팅, 미팅 등 서로 모르는 대학생들끼리의 모임 장면에서 소개를 할 때, 본인보다 서열이 높은 대학교에 다니는 사람을 볼 때는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든다. 그 모임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할 경우에는 더 심해서,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약간 열등감을 느낀다. 반대로 확실히 서열이 낮은 대학교나, 지방대, 처음 듣는 이름의 대학교 사람을 만났을 때는 어떠한가. 그가 일생동안 어떤 책을 읽고, 어떤 활동을 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름에도 은근한 우월감과 뭔가 가르쳐주어야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런 패배감과 서열 의식으로 인해 우리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학교 이름이라는 껍데기로 너무 많은 선입견을 지닌 채 만나게 된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은 성적이 좋은 것이 최고의 가치인 학창 시절을 겪으면서 서열 의식뿐만 아니라 이기심과 무한 경쟁의 논리를 뿌리 깊게 내면화하게 된다. 누구와 함께 하는 일은 적고, 명문대를 향한 혼자만의 싸움, 또래 아이들을 경쟁자로 여기는 싸움을 내내 한다. 거기서 승리한 자만 좋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당연하게 인정되는 사회다. 그런 사회 속에서 10년씩 싸우며 버텨내어 대학에 가도 스펙 경쟁을 취업까지 계속해야 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에서 갈수록 사람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어릴 때부터 남보다 돈 잘 벌고, 남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가르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회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이고 타인이 있기에 나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 명의 부자가 존재하기 위해선 다수의 가난한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소수의 존재가 되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목표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도를 넘었기 때문에 해로운 경쟁

경쟁이 나쁜 게 아니다, 경쟁은 필요하다. 그런 말들을 입에 달고들 산다. 나도 안다. 경쟁의 바람직한 면, 뼈가 저리게 잘 안다. 허나, 이런 교육, 사회현실에 대고 그 말을 하는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경쟁이 의미가 있는 건 그것이 공정하고, 적당한 수준일 때의 이야기다. 이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과도한 수준으로 치달은 경쟁은 해롭기만 하다. 가게가 둘 있는데, 경쟁에서 이겨 그 지역에서 하나뿐인 가게가 되려고 서로 무한정 가격을 내린다면 어찌 되겠는가. 결국 둘 다 망하거나 한쪽이 완전히 망한 후 엄청난 타격을 받은 다른 쪽이 가까스로 살아남을 뿐이다. 합법적인 경쟁조차도 과도하면 금방 이렇게 바보 같이 파괴적인 일이 된다. 우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하고 있다. 자신이 뭘 원하는 지도 모르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타인의 의지에 따라 끌려가는 삶,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남들에게 행복해보이려 하는 삶이 바로 가게가 망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경쟁, 경쟁하다가 이 경쟁의 원래 목적조차 잊었다. 학생이 뭘 얻고, 잘 ‘성장’하는가보다는 그저 줄을 세우는 게 목적인 교육, 경쟁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명문대 이름을 따기 위해 꿈도, 재능도 버리고 진짜 능력과는 별 관계도 없는 똑같은 점수로 경쟁하고 있다. 그 에너지로 발전하는 건 사교육뿐이다. 이는 개인들에게도 낭비고,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어떤 큰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르는 인력들이 전부 별 의미 없는 문제 풀이 스킬만을 익힌다. 의료계, 법조계, 공무원, 사교육 시장 등에 필요 이상으로 몰린다. 인재로 먹고 산다는 나라에서 이 무슨 자살행위란 말인가.

이 안에선 개성과 꿈을 잃어버리기는 쉽고, 찾기는 어렵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3) 진심으로, 억울한 일이다. 벌써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는 이러한 대학 서열체제와 입시경쟁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이러한 것들이 당연하다 생각한다. 언뜻 불합리해 보이고 힘들어도 여기에 순응하는 것이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다. 혹은 이게 옳다거나, 틀렸더라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뿌리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 생각을 토대로 꿈이나 개성,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마음을 스스로 억누른다. 다른 이가 그런 말을 해도 철부지의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며 웃거나, 진지하게 ‘정신 차리고’ 우선 좋은 대학에 가기를 충고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서열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들조차도 피해자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과 관계없는 공부와 문제풀이 스킬들을 익힌 끝에 서열의 정점에 섰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다. 경쟁은 계속 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꿈을 찾고 싶어도,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미루며 또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이게 피해자만 있고 승자는 없는 싸움임을 알겠는가?

 

‘현실’이라는 부풀려진 불안과 공포

보수적인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인 부모들조차 대다수가 ‘일단 대학은 가고’ 하고 싶은 거 하라는 말(실상은 대학생이 된 후엔 다시 취직을 위한 학점 경쟁과 토익 등 스펙 경쟁에 열을 올려야 하지만)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로써 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직장에 잘 들어간다는 것을 아는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고, 그게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임을 이해한다. 허나 마음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그런 행동들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다지 바람직한 결과도 초래하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개성과 꿈을 펼칠 권리가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 이득이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거나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이 이러니 못한다고 말하기 전에 어느 쪽이 진짜 행복하게 사는 길인지 깊이 생각해보자. 사회안전망이 굉장히 빈약한 국가이긴 하지만, 한국은 절대빈곤 국가를 벗어난 지 오래고 뭘 해도 먹고는 살아요.4) 웬만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해보면서 살더라도 어느 정도는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자기 재능과 적성이 잘 맞다보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가난하다는 기준이 너무 높아졌다. 진짜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은 사실 별로 없는데, 상대적인 빈곤, 비교 때문에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최신형 휴대전화나 멋진 중형차가 없어도 살 수 있는데, 계속 그걸 먹고 사는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거기에 메여있는 사람이 많다.

공부라는 건 수많은 재능과 적성 중 한 가지일 뿐이다. 거기에 재능과 적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많은 길 중에 하나를 얼른 찾으면 된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질 못한다. 그냥 더 열심히 공부해야한다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판단한다. 무서운 일이다. 지금 한국에 직업이 몇 개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어요. … 가장 일반적인 통계청 통계로 보면 약 1만 가지 정도예요. 그렇게 세분화된 것도 아닙니다. … 아이들이 나중에 1만 가지 직업 가운데 하나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텐데, 부모들이 생각하는 직업은 20가지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9,980가지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아이들은 아무 죄도 없이 사회생활의 출발부터 실패자로 살아간다는 겁니다.5) 이 역시 무서운 일이다. 최소한 이 현실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생각이라도 해보게 키워야 한다. 주변에서 다들 같은 길을 가니 불안하고, 그러기 어렵다는 걸 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당신은 과도한 경쟁의식과 맹목적인 명문대를 위한 공부,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충동의 추억과 피폐한 정신세계를 지닌 자식을 원하는가? 현재의 행복을 미뤄서 도대체 언제 행복할 수 있나? 진정으로 내가, 혹은 자식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뭔가? 우리는 점점 최고 목표여야 할 행복과는 반대로만 가는 것 같다.

 

부와 권력 세습, 대물림의 합법화, 정당화

게다가 교육이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고 있다. 그동안 이루어진 연구에서 자녀의 명문대 진학률은 부모의 소득수준과 정비례관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신학용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교육격차: 가정배경과 학교교육의 영향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월소득이 600만원 이상인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한 비율은 10.4%로 월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부모의 자녀 0.5%에 비해 20배 이상이었다. 또 200만원대 1%, 300만원대 4.3%, 500만원대 8.7% 등으로 부모 소득과 자녀의 명문대 진학률은 정비례했다. 명문대로 분류한 대학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포항공대·카이스트 등과 의대·치대·한의대 등 의학 계열 단과대 등이다.6)(이 기사는 심지어 조선일보에서 나온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경향은 점점 심화되어만 왔다. 논술이 생기는 등 입시 전형이 다양화될수록 그런 변화하는 제도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것 역시 돈 많은 집 아이일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엄마가 전업주부로 각 대학의 입시설명회에 참석하여 명문대의 입시전형을 줄줄이 꿰고 있으며, 유명하고 효과 좋은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집. 복잡한 입시전형을 혼자 찾아봐야하며 학원이나 과외도 어려운 집. 두 집의 아이 중 누가 서울대에 갈 확률이 높을지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2005년 12월 현재 전체 판사 2157명 가운데 91.1%와 검사 1501명 중 90.7%, 변호사 7691명 중 85.1% 등 법조계 인사의 90% 가까이는 상위 15개 대학 출신자로 채워졌다. 상위 15개 대학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은 판사의 65.7%, 검사의 49.5%, 변호사의 49.5% 등으로 다른 대학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 2005년 10월 현재 전국 185개 대학 총장도 서울대 출신이 49명(26.5%)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은 각각 13명(7%)으로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상장사 임원 8435명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이 1909명(22.6%)으로 가장 많았고, …7), 서울대 교수 10명 중 9명은 서울대 출신으로 나타났다.8) 어느 모로 보나 서울대 출신은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집단이다. 이렇게 서울대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위의 연구 결과들은 차라리 ‘그러니까 삼수, 사수 아니 그보다 더한 짓을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야한다’는 발언의 뒷받침으로 쓰기에 더 적절해보일 지경이다. 심리적인 것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서울대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학문, 언론 등 각 분야에서 독점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니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민적 정신병에 가까운 입시경쟁은 이러한 서울대의 위상과 그것들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회를 바라보는 상식적인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일상적 폭력에 관해 알고 있을 것이다. 교육이라기보다 차라리 집단 광란 상태라고 불러야 마땅한 그 도가니 속으로 자식을 보내면서 고민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9) ‘(그렇게 공부시켜서)엄마들은 행복해요?’라는 질문에 ‘너무 불행하죠. 완전히 공부 기계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엄마도 돌고, 애도 돈 상태예요, 지금.’10)

내가 겪어왔던 그 시절이나, 지금도 그러고 있는 주변의 친척 동생들 등을 조금만 둘러보면 공감이 안 될 수가 없는 이야기다. 딱히 과격하게 표현하려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이 사태는 국민적 정신병 수준인 것이다. 위 다큐는 인용은 짤막하게 하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고, 내용이 전체적으로 공감이 되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재능을 헛되이 수능문제집 따위에 낭비하고 있을지는 같은 국가의 시민으로서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다. 아직도 더 갈 곳이 남았는지 점점 더 치열해지기만 하는 입시경쟁은 이제 재수는 기본, 삼수가 옵션일 지경이다. 굳이 연구를 안 해봐도 당장 들어오는 내 대학 후배들 중 체감 상으로는 서넛에 하나 정도는 재수생이 껴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필자가 학교에 들어올 때 소속되어있던 40명 남짓한 신입생 그룹에 사수생, 삼수생에 재수생이 4명이나 있었을 정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학 이름 때문에 본인의 재능을 못 펼칠까. 얼마나 많은 재능이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결국 사회 나오면 별 쓸모도 없는 문제풀이 스킬만 늘리는 일로 죽어갈까. 이 괴물스펙시대에 정작 기업들은 인재가 없다고 투덜대는 것도 이해가 된다. 답 찍는 능력인 스펙과 실제 업무처리능력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우리나라는 인재활용의 사회적 비효율에서는 가히 최고봉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교육비라는 괴물

이렇게 우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전부시되다보니, 그를 향한 치열한 경쟁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고, 그 경쟁은 자연스럽게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지출로 이어진다. 사교육비 문제는 다들 알다시피 계속해서 이슈화되고 있고 그만큼 정말 커다란 사회적 문제이다. 왜 이렇게까지 사교육비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사교육비는 그 지출의 상한선이 거의 없다는 점에 그 무서움이 있다. 의, 식, 주라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들을 보면, 식비나 의복에의 지출은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금방 그렇게 많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집도 무리해서 큰 집으로 옮기려고 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지출요인이 되는 경우가 적다.

이와 달리 사교육비는 더 많은 학원, 더 좋은 학원, 과외, 과외 중에서 고액과외, 더 여유 있으면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는 식으로 끊임없이 올라간다. 더 좋은 학원을 못 보내주고 과외를 못 시켜주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미안해하기까지 한다. 교육비를 위해 일을 더 하고, 주부까지 아이와의 시간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드는 일이 자식교육을 위한 눈물겨운 희생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이니 가정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는 것이 당연하다. 더 무서운 건 그래봤자 해외연수 손쉽게 다녀오는 부잣집 자녀보다 들이는 돈이 적고, 결국 경쟁에서 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도 벌써 십년이 넘어가다보니 자식을 낳기 전부터 자식 키우려면 얼마가 드느니, 돈이 없어서 자식 못 낳겠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출산율이 세계 꼴찌를 달리는 것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사교육비를 쓰니 가정에서 다른 지출을 할 여유가 적다.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경제가 침체되는 것과의 연결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부모는 부모대로 자기는 자식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돈 버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자식이 공부 말고 다른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일라치면(정상적인 아이라면 그게 당연함에도) 서운하고 스트레스 받고 불안할 수밖에.

 

대학평준화라는 방법

지금까지 살펴봤듯, 대학서열과 입시 경쟁으로 인한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거의 모든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 뿌리 깊은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나,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이것이 문제이며,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만 확고하게 갖고 있다면 적어도 개선은 될 수 있다.

제도적으로 이런 과도한 입시 경쟁을 없애기 위한 가장 빠른 길 중 하나는 바로 고교평준화처럼 대학평준화를 실시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수능에서 절대평가로 몇 점 이상을 받아 자격을 얻기만 하면 어느 대학의 어느 과든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평준화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이들은 상상조차 가지 않을 것이나, 실제로 핀란드, 독일, 프랑스 등 대학이 평준화되어있는 국가들은 많다. 그런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딱히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인재를 키워서 누구보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는 나라. 청소년 학력수준이 OECD에서 2위이고 경제적으로도 대국인 나라.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거친 최고 학생들을 한 학교에 전부 몰아넣는 나라. 이런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그럼에도 그 대학이 세계적으로 그다지 유명한 대학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이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지 이야기해준다. 학생들이 보통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독일에 있는 여러 대학들과 서울대는 국제대학순위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위에서 대학평준화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는 순간, 여러분의 머릿속엔 그게 얼마나 말도 되지 않는 짓인지 수많은 반박들이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발생할 수 있는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할지, 유럽과는 확실히 다른 상황인 우리 사회에서 대학평준화를 어떻게 현실로 실현시킬지는 나름대로 꽤 연구되는 중이다. 2000년 출범한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가 그 선두에 있다. 그 결과들은 http://antihakbul.org에서 볼 수 있다. 이미 이 글을 읽었으며 위의 문제제기에 동의하신 분들이라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머릿속의 의문들을 정리하고, 대학평준화가 옳은 길인지 판단하기 위해 들어가 보시길 부탁드리는 바이다.

 

대학평준화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

물론 대학이 평준화된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문제가 짜잔-하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실 학벌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모두 끊임없이 물질을 추구하고, 경쟁에 매몰되어 승자가 모두 지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대학평준화가 된다고 해도(그럴 수도 없지만) 우리들은 금방 다시 무언가 경쟁할 만한 것을 찾아 어떻게든 남보다 뭔가 확보하려할 것이다.

허나,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학이 평준화됨으로써 적어도 가치관을 형성하는 어린 시기에 미친 경쟁을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위와 같은 의식들을 어릴 때부터 심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기대되는 것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덜 경쟁적인 아이들이 사회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점점 많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들이 우리 사회가 좀 더 살만한 사회가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대학평준화라는 제도적 방법을 지지한다.

그런데 위에서 짧게 언급했듯, 이러한 상태에서 갑자기 대학평준화라는 구조적 변화가 갑작스레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된다 해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다들 그런 경쟁 구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머리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마음으로는 너무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학평준화라는 멋진 제도를 소개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힘을 합쳐 널리 알리고 시위를 하자는 설득과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얼 할 수 있을까

사회의 변화는 한 명, 한 명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문제를 바꾸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스스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스스로부터 뿌리 깊게 박혀 있을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대학 서열에 대한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인의 삶 속에서, 나아가 자기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 잘못된 것을 현실과 불안감이라는 이유로 강요하거나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 후에 이게 문제라는 걸 주변에 조금씩 알려보자. 또, 선거에 참여할 때 이 부분의 공약을 잘 살펴보고 위 현실을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후보에게 부지런히 한 표를 던지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는)중1짜리 남자아이인데, 주변에서 이렇게 학원 안 보내면 인문계 고등학교도 못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런 걱정을 하는데 신랑하고 정말 얘 대학 안 보내도 그만이다. 얘를 인간성 버리게 해가면서까지 돌리지 않겠다. 그렇게 경쟁이 심하고 무섭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게. 근데 그렇게 한발 물러나도 굶어 죽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우리 세대가.11) 백번 옳으신 말씀이다. 절대 부자가 아닌 좌파 김규항 씨의 딸 김단 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본인의 길을 찾고 있다. 가난한 사회과학서점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씨의 아들도 대안학교인 삼각산 재미난 학교를 거쳐 제천 간디학교에 다니는 현재 대학엔 진학하지 않겠다고 한다. 김규항 씨는 학벌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식이 서울대가면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학벌없는사회 운동은 그 정당성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지만 현실적으로 공허할 수밖에 없다.12)고 비판했는데, 그 말이 맞다. 진정으로 학벌없는사회가 되려면, 학벌이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대학평준화라는 제도가 실현되는 것보다도 그 전에 내 자신부터 명문대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인식을 버려야만 하고, 내 자식부터 대학과 연연하지 않고 키워야할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서도 대학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찾아 할 수 있는 일은 찾아보면 꽤 있다. 사실, 많은 분야에서 오히려 대학을 굳이 가야할 필요가 없는데, 간판이라는 문제 때문에 졸업증만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학 나와서 전공에 상관없이 일을 구하는 사람도 많다. 같은 분야의 일을 할 때 대학을 나온 사람과 안 나온 사람은 실제 업무 능력에서 별 차이가 없다면 임금이나 승진 면에서 차별을 받을 것이다. 억울한 일이지만, 더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사정은 또 다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먹고살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이라고 생각되는 획일화된 길을 따라 편하게 가려한다. 워낙 불안하니까 뭐라도 확보해놓고 싶은 심리 때문에 오히려 입시라는 이름의 전쟁에 더 고통스럽게 휘둘리고, 상처만 입는다. 그 사람의 실제 능력은 별로 향상되지도 못하는 그 과정에서 말이다. 불필요하게 대학을 가야하는 그런 일을 없애기 위해서도 대학평준화는 필요하다. 반대로, 불필요하게 대학을 가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역시 현 교육체제를 바꾸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맹목적인 대학진학이나 명문대의 무의미함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될 테니까 말이다.

끝으로 우리의 이러한 의지를 가벼운 실천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잊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으면, 그리고 점점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정말 간단한 방법들로 두가지를 제안해본다. 첫째, 스스로 대학 이름으로 인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게 될 때마다 이건 옳지 않다고 깨닫고 본인과 타인 모두 좀 더 그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보려 노력하자. 둘째, 청소년에 속하는 사람에게 그의 꿈에 관한 대화를 하거나 그가 명확한 목표의식을 표현하지 않았는데 그저 무조건적으로, 지나가는 말로, 당연하다는 듯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잘못된 일을 잘못된 것이라 알고, 고쳐야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자신만의 길,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자. 그게 옳으니까 자기가 피해를 보더라도 그렇게 하자는, 소위 성자나 운동가가 되자는 게 아니다. 그것이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그걸 실천하는 개인의 행복한 삶을 만드는 데도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자는 거다. 그렇게 해서 행복해지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날 때, 진정으로 사회는 변화할 것이다. 그런 변화를 앞당길 수 있는 제도적인 길이 대학평준화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할 수 있는, 미래에 속박되지 않고 행복하게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조금이라도 빨리 올 수 있게 하는 방법 말이다.

교육과 의료라는 부분에까지 시장과 자본의 논리를 들이미는 건 이미 공화국이 아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그것만은 막아야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최소한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정말로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는 사회다. 더 이상 도망치지만 말고, 현실이라는 이름 뒤로 숨지만 말고, 우리 정치의 주인은 바로 우리라는, 우리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정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세상의 모든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씩 고쳐가는 것부터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 대학 서열이라는 이름의 괴물에 돌멩이를 던지자. 나부터, 내 자식부터 우리만의 행복을 찾아 떠나자. 그것이 우리의 미래, 그리고 진정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구하는, 또한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들을 구하는 길이다.


1) 홍세화, 2009, <생각의 좌표>, 한겨레출판

2) 김상봉, 2004, <학벌사회>, 한길사

3) 김예슬, 2010, <김예슬 선언>, 느린 걸음

4) 김규항, 2010,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알마

5) 김규항, 2010,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알마

6)『조선일보』, 2007년 4월 6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4/06/2007040600022.html

7)『세계일보』, 2006년 4월 11일, 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060411000569&ctg1=01&ctg2=00&subctg1

8)『경향신문』, 2010년 9월 14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9142212165&code=940401

9) 홍세화, 2010, <생각의 좌표>, 한겨레출판

10) KBS스페셜 행복해지는 법 1부 ‘대한민국은 행복한가?’, 2011. 1. 16방영, 방배동 학부모들과 인터뷰, KBS

11) KBS스페셜 행복해지는 법 1부 ‘대한민국은 행복한가?’, 2011. 1. 16방영, 방배동 학부모들과 인터뷰, KBS

12) 김규항, 2010,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