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기타

<김예슬 선언>을 되새기며

참참. 2013. 5. 9. 16:53





* 이 글은 2011년 2월 22일에 쓴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kimjh620/20123097983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대학을 거부한 <김예슬 선언>을 되새기며

김진회

 

김예슬 씨가 대학 거부 선언을 한 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던 김예슬 양은 이미 기업에 인간부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된 대학과, 같은 트랙을 따라 무한의 경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담긴 대자보를 붙였다.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둡니다. 진리도 우

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기에’라는 피켓을 들고 마지막으로 교정에 서서 1인 시위도 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를 제 발로 걸어서 나갔다.

당시 이 일은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그 일이 그렇게나 이슈가 되었던 건, 그게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고, 우리 사회에선 믿기 어려운 결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삼 그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허나, 지금 김예슬과 그의 문제의식, 그 정신을 기억하는 이는 몇이나 될 것인가. 말로는 대학생이라고 하면서 이제 진정한 대학생이 된 그의 치열한 고뇌를 해본, 아니 들어보기라도 한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그가 대학을 거부하고 한번 계절이 모두 돌아 다시 봄이 옴을 기념하며, 대학 거부 선언이라는 큰 이슈 속에 가려진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그의 눈물을 눈물로 응원한다. 나 역시 나에게 걸린 수많은 기대들을 저버리는 것이 두렵다. 허나 그 기대들에 담긴 것이 진정 나에 대한 사랑이라면, 내가 진짜 삶을 찾아 행복해지는 것으로 용서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불안과 공포, 혼란과 상처가 있겠지만

, 진정한 자유와 진짜 내가 있는 진짜 나의 삶, 그렇기에 불안하고 혼란스럽더라도 더 행복하고 더 마음이 편안한 삶. 그걸 찾아 길이 없는 길을 걸으려 한다.

그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학 거부 선언을 하고 당당히 대학 문을 나섰지만, 고졸자 신분으로 돌아온 나 역시 막막하다. 집안형편은 어렵고 저금한 돈이 있을 리 없다. 나부터도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 혼란스럽기만 하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시간은 많아졌지만 불안하기만 하다. 나 또한 어찌 할 도리가 없어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버리는 건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생각할 틈도, 혼란을 겪을 틈도 없이 거짓 희망의 북소리에 맞춰 앞만 보고 진군하는 것이 훨씬 괴로운 것임을. 그리하여 지금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다른 길을 찾으라’는 고통스런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고통과 상처를 통해 분명 다른 희망의 길로 걸어갈 수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나는 젊음이라는 빛나는 무기 하나 믿고 위험한 길을 나서는 것이다. 거짓과 더불어 제 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친 듯이 사는 쪽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억압 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 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기꺼이 억압 받고, 상처 받고, 저항할 것이다. 나는 그 저항의 길을 내가 먼저 걸어갈 것이다. 멈추지 않는 작은 돌멩이의 외침으로!

 

그가 걸어가는 길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나 역시 그 길을 걸어가려하기에. 그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다른 방법으로 나만의 꿈을 찾아 나만의 길을 걷겠지만, 그 길은 우리가 그동안 뛰어온 ‘트랙’을 벗어나는 ‘길’이라는 점에서 그와 같다. 그리고 이 길이 더 길다운 길이 되려면, 더 많은 이가 함께 걸어주어야 한다. 한사람이 걸어간 곳은 길이 되지 않는다. 산을 깎고 도로를 낼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 지나다닌다

는 것을 알 수 있는 소박한 오솔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명문대 입학, 대기업 취직, 고시 합격, 자동차, 집, 더 좋은 차, 더 큰 집, 더 많은 돈, 내 자식의 명문대 입학. 이 경쟁의 트랙.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한 대학생들이여. 끝도 보이지 않는 트랙 말고 이런 삶의 오솔길들을 우리 함께 걷자. 함께 고통 받고, 상처 입고, 저항하며.




김예슬 선언

저자
김예슬 지음
출판사
느린걸음 | 2010-04-1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나는 大學 없는 대학을 거부한다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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